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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을녀 Nov 16. 2019

빈센트반고흐

여름의 화가

저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땀과의 전쟁을 싫어하기 때문인데요. 그렇지만 여름 하면 연상되는 것들 중에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살랑살랑 여름 바람. 푸르른 파도 넘실대는 바닷가. 시원한 그늘로 마음까지 식혀주는 계곡. 그중에서도 여름 하면 가장 많이 연상되고 떠오르는 것은  한 명의 화가입니다.


한국인이라면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화가.  억 소리 나는 그림 가격을 자랑하지만 살아생전에는 그림 한 점도 팔기 힘들었던 화가.
한 여름 정오의 햇살처럼 열정적이게, 오후  2시의 온도처럼 뜨겁게 살다 간 한 사나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그와 어울리는 화려하지만 슬픈 꽃 해바라기를 평생 그리며 산 화가, 그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1. 가난한 노동자, 그리고 화가


프랑스 화가로 알려져 있는 반 고흐는 네덜란드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종교적인 영향을 받은 그는 자연스럽게  신학자가 되기로 결심하는데요. 1879년 1월  벨기에 석탄 광산마을로 선교활동을 간 그는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사는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 관심은 곧  밀레와 같은 노동자 계급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답니다. 그 소용돌이에서 그는 27세에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림은 1885년 완성된 그의 첫 번째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입니다 노동자들의 거친 손마디처럼

투박한 이 그림은 감자를 나누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인데요. 고된 하루의 끝,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와 차를 권하는 손길에서 노동자를 보는 화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고흐의 초기 그림들은 이처럼 다소 어두운 색채의 스타일이었는데 당시 유행하는 화풍은 아니었기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이 그림은  농부 중 한 명에게 고소당하기도 한 비운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 이후 1886년 고흐는 프랑스 파리로 갑니다. 그곳에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의 스타일을 꽃피우게 됩니다.


2. 해바라기 꽃 피우다.


파리에서 인상주의에 매료된 그는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해갑니다. 감정을 강렬한 색채와 유화의 두꺼운 질감으로 표현한 스타일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열정 화가의 아이콘답게 파리에서의 약 2년 동안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1888년,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해바라기와 밤의 테라스가 탄생합니다. 그에게 태양의 화가라는 별명을 안겨 준 해바라기를 그리며 고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의 삶이 해바라기와 닮을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던 걸까요?
뜨거운 여름 가장 찬란한 순간을 해만 바라보며 죽는 해바라기는 그의 삶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그의 그림 해바라기가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1888년은 그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삶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 있던 해입니다. 바로 고갱과의 싸움으로 그의 귀가 잘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화가 공동체라는 꿈을 안고 아를지역에 온 고흐는 고갱과 잠시 함께 하는데요. 2달도 채우지 못한 1888년 10월 그 사건이 발생한답니다. 그 일 이후 이듬해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고갱은 떠나게 됩니다. 싸움 직후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 '귀에 붕대를 매고 있는 자화상'입니다. 고흐 스스로 귀를 잘랐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정확한 것은 이 사건 이후 고흐의 정신병이 심해지고 그의 후기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로 가게 됩니다.


3. 열정의 해바라기, 지상의 꽃이 되다.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는 고흐에 대해 이런 평가를 했습니다.
" 이 남자는 미치게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 가게 될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 불운의 사나이, 그의 마지막 그림들 감상하려 가볼까요?
불미스러운 사건 후 1989년, 정신병의  재발을 거친 고흐는 생 레미에  요양소에 머물게 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그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의 눈에 띄는 요소는 왼쪽 하단에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우울한 파랑, 희망의 노랑이예요. 밤하늘에 높게 솟은 나무는 기독교의 첨탑을 연상시킵니다. 신에게 닫기 위한 소망을 담은 첨탑처럼 높게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는 그의 염원을 담는 상징이 아닐까요?
그의 염원을 상징하는 나무, 희망을 상징하는 노랑, 우울을 상징하는 파랑은 그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이외에도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반 고흐의 자화상이에요.
그는 평생 40점이 넘는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아마도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의지를 한 그에게 모델을 쓸 돈은 사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돈 한 푼 들지 않는 자신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의 초상화는 일기 같은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일기에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듯이 그의 심정과 예술성이 그의 자화상에 녹아 있는 듯합니다.


1890년, 정신병 더욱 심해진 고흐는 5월 말에 오베르로 갑니다. 꺼지기 직전에 가장 밝은 촛불처럼 70일 동안 70여 점의 그림을 그릴 정도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렸지만, 결국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그의 유작으로 남았답니다.


4. 지상의 별이 된 해바라기

 고흐의 자살시도 후 동생 테오가 달려오지만  결국  37세의 나이로  짧은 숨을 거둡니다.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학계의 의견이 분분해요. 하지만, 그의 유언 “La tristesse durera toujours(고통은 영원하다)”는 그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추측하게 한답니다.

고흐가 사망하고 한 달 뒤,  그의 동생 테오 역시 시름시름 앓다가 6개월 뒤 숨을 거둡니다. 고흐를 안타까워한 테오의 아내와 테오의 아들 빈센트는 고흐의 그림을 알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10여 년의 노력 끝에 71점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은 너무나 늦게 세상의 빛을 봅니다.

카미유의 말처럼 시대를 너무 앞서 갔기에 비극적인 결말을 당했을지도 모를  화가 반 고흐, 그의 삶은 지극히 불행했지만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있답니다.   
" 신은 재능이 너무 넘치는 인간을 질투한다 "라는 누군가의 말을 생각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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