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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을녀 Feb 29. 2020

르네 마그리드

르네 마그리드

혹시 마술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어릴 때 행복이 가득한 놀이동산에서 보는 마술쇼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요. 여기서 사라졌다 하면 저기서 다시 나오고 커다란 모자에서 토끼들이 계속 나오는 신기한 마술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였답니다.


이렇게 쾌청한 날씨의 두근두근 신기한 마술쇼 같은 그림이 있는데요. 바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드의 작품들입니다. 사라졌던 동전이 엉뚱한 곳에서 다시 나오고 상자 안에서 반으로 잘린 미녀가 다시 등장해서 셀렘과 신기함을 주었던 마술처럼 르네 마르드의 작품들도 엉뚱한 상상력과 재치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


그는 데페이지 망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여 일상 속의 사물을 낯설게 보이게 만들었는데요.
이것은 어떤 물체의 위치를 뜻하지 않은 장소에 두는 기법입니다. 일상적인 물체를 그렸지만, 그 물체의 질서를 거부하고 뜻하지 않은 새로운 장소에 물체를 둠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겨울비입니다. 곧 떨어져서 차가운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릴 신사들이 다소 슬프게 느껴지는
이 그림은 산업화된 사회의 개성이 죽어버린 사람들이라는 해설 등을 대표로 해서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그림입니다. 그 이야기 중 개인적인 감상은 겨울비는 결국 떨어지고 소멸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개인의 고독을 보여주는 그림인 것 같아요. 모든 개인이 다 비슷해 보이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입니다.  결국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도
다르고 빗방울로 떨어져 소멸할 때의 고통도 각자의 무게인 것이죠. 즉, 다 같이 있는 것 같지만 사람은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어갑니다. 그렇기에 각자의 인생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은 제목 겨울비처럼 고독하고 쓸쓸합니다.


얼굴은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창이자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잘 보이는 부분입니다. 사람의 얼굴에서는 그 사람의 인격과 마음 그리고 개성이 드러나게 마련인데요. 그런데 이 엉뚱한 화가는 얼굴에 매끈한 몸을 그렸습니다. 매끈한 몸이 얼굴인 이 사람에게는 마음, 인격 , 개성 등을 찾아볼 수 없는데요.
단지 예쁜 몸만 있어 보이는 그림 "강간"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인격과 마음보다는 외적인 것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요즘 시대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몸매를 대표로 그 사람의 외적 조건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게 되는 시대. 더 핫한 몸매 더 날씬해 보이는 몸매를 추구하는 시대 누구나 한 번쯤은 몸매나 조건만으로 사람을 평가한 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 그림은 누구나 가진 그런 경험들을 반성하게 하는 그림입니다.


외모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행위는 이 작품의 제목처럼 평가받는 이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이런 몸매를 가진 여성이 아니라면 아름답지 않다는 우리의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여자는 이런 몸매여야 해 또는 남자는 이렇게 행동해야 해 하는 등의 폭력을 일상화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조금 통통한 것조차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인식과 함께 정해진 미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이 이 그림이 이야기하는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영화 김지영 씨가 생각납니다. 여성에게 여성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와 사람들이 겹쳐집니다.
여성뿐 아니라 김지영 씨의 남편인 남성조차도 남성의 역할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상처 입는 모습들이 못내 안쓰러웠던 영화였는데요.

아름다운 몸매로 정해진 미의 기준을 강요하고 여성에게는 여성의 역할을 강요하고 남성에게도 남성의 틀을 강요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시선, 그 폭력적인 시선과 이 그림의 이미지 그리고 강간이라는 제목은 우리 사회에 해결해야 한 부분을 얘기해주는 것 같은 그림입니다.


르네 마그리드의 작품들은 제목과 함께 보면 더 깊이 있는 상상을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이 작품은 제목과 이미지의 조화가 좋은 그림이랍니다.


이 그림의 제목 회귀는 한 바퀴 돌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인데요. 작품 속의 새는 낮을 품은 채 밤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옵니다. 이 새가 있는 곳은 낮이 되고 지나간 자리는 다시 밤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낮이 되고 밤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밤과 낮의 교차는 시간의 흐림을 의미할 수 있답니다.


시간의 흐림은 곧 세월을 의미할 수도 있고요.
더욱이 이 새의 아래쪽의 알은 새로운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 그림은 새로운 생명들이 떠나는 장면을 그려 넣습니다. 그리고 회귀라는 이름을 지어서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세월의 흐름을 겪은 생명이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돌아온 생명은 새로운 알을 낳고 그 생명 또한  다시 떠난 후 돌아온다는 내용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 그림은 자연의 순환을 나타낸 그림인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낮이 갔던 자리에 밤이 차오르고, 밤이 있던 자리를 낮이 대신합니다.
자연의 일부인 동물들 또한  세월이 흐른 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회귀 본능이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연어입니다. 죽을 것을 알고도 회귀해 알을 낳는 연어의 본능과 그림 속의 새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답니다.

마지막 그림은 그의 유명한 그림 연인들입니다.
하얀 천을 뒤집어쓴 연인이 키스를 하고 있는데요.  매우 숨 막힐 것 같은 그림입니다. 이 그림 속의 연인들은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천 뒤에 있는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한 채 서로 사랑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랑이란 착각은 애초에 이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요?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 많이 알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모습을 더 많이 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서로의 진짜 얼굴을 볼 용기가 용기가 없어서 하얀 천위에서 키스를 하는 행위는 결국에는 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인듯합니다.

또는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진짜 사랑한 것은 내가 상상한 상대방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연인의 외모, 직업, 같은 외적 조건을 상대방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중에 어떤 것이든 천을 뒤집어쓴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닌 듯합니다. 모든 관계의 진짜는 상대방의 선을 넘어야 시작할 수 있듯이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맨 얼굴을 당당하게 바라 볼 용기와 
상대방이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을 때의 

실망감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진짜 사랑은 용기 있는 행동이며 상대방을 포용하는 자세에서 시작하는 듯합니다. 이런 용기와 포용력은 쉽게 행동으로 하기 어려운 것들이기에 결국 많은 사람들이 진짜 대신 사랑이라는 착각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한 편의 마술쇼 같은 르네 마그리드!  그의 작품의 매력은 다양한 해석에 있습니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기에 창의력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는 이미지입니다.


마술사의 큰 모자에서 뭐가 나올지 몰라서 두근두근한 했던 기억처럼 재미있는 기억을 선사하는 그림이 되기를 바라면서 르네 마그리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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