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꽃밭 애서(愛書) : 사랑愛 편지書
우리 엄마, 海春 씨.
바다 위에 봄을 띄운 이름.
봄이 바다처럼 생명을 품는 이름.
엄마의 이름은 '해춘(海春)'이다.
바다 해(海), 봄 춘(春).
바다처럼 깊고 넓으며, 그 위에 봄을 띄워 다시 생명을 살리는 이름이다.
아주 오래전, 엄마의 결혼식 사진첩에서 ‘해춘’이 아닌 ‘예순’이라는 이름을 발견한 적이 있다. 고운 한복 위에 소담한 면사포를 쓴 엄마는 아버지와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꾹 다문 입술과 굳은 얼굴엔 긴장이 역력했다. 그 비장한 결혼식 안내판에, 엄마 이름이 다르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작고 흐린 글씨였다.
"엄마, 결혼식 사진에 이름 잘못 적힌 것 알고 계셨어요? 여기 좀 보세요."
인생의 중요한 날의 기록인데도, 엄마는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빨래를 개며 바쁘게 손을 놀리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셨다.
“해춘이라는 이름이 너무 촌스러워서 일부러 그렇게 써 달라고 했지. 하하하”
철없는 행동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귀엽기도 해서 한참을 같이 웃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결혼식에서 이름을 바꾸어 버리다니! 샘도 많고, 매사 열정이 넘치고, 감성까지 풍부한 우리 엄마, 엄마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결혼식 날을 제외하고, 엄마는 단 한 번도 해춘(海春)이 아닌 적이 없었다. 일렁이는 바다처럼 넘치는 열정으로 삶을 사랑했고, 그 삶에 봄처럼 꽃을 피웠다. 나는 엄마가 꼭 그 이름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화초를 정말 잘 가꾸신다. 엄마의 손이 닿는 것들은 풀이든 꽃이든 채소든 신기하게도 살아나 꽃을 피운다. 메마른 흙에서도 싹을 틔우고, 한철로 끝날 것 같던 식물은 해를 넘겨 열매를 맺는다. 엄마의 베란다에는 채송화, 맨드라미, 분꽃 같은 작은 꽃들은 물론 희고 푸른 수국과 붉은 장미까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넘실댄다. 상추와 고추, 부추 같은 채소들 또한 싱싱하게 자란다.
도시 아파트의 작은 베란다를 풀밭, 꽃밭으로 물들이는 비법을 나는 도무지 따라 할 재주가 없다. 사람들은 흔히 엄마의 꽃밭을 보며 “손이 야무지다”고 감탄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엄마에게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엄마의 굽은 손에는 타고난 재주보다 때를 아는 기다림, 요령보다 부지런한 살핌이 주름져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식물을 대할 때 결코 성급하지 않다. 싹이 나지 않는다고 흙을 헤집거나, 꽃이 피지 않는다고 물을 더 주지 않는다. 대신 햇볕이 드는 시간을 가늠하고, 바람이 센 날에는 자리를 옮긴다. 물을 주는 날보다 주지 않는 날을 더 오래 기억하는 엄마는 늘 넘치지 않게 돌본다. 잘 자라는 순간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저 곁을 지킨다. 사랑으로 눈을 맞추고 다정히 말을 걸기도 한다.
부지런함 또한 요란하지 않다. 새벽에 일어나 분무기로 잎을 적시고, 시든 꽃은 말없이 떼어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흙 속을 먼저 살피고, 계절이 바뀌면 화분의 자리를 바꾼다. 다음 해 거름을 주기 위해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챙기는 수고를 한해도 거르지 않는다. 그렇게 쌓인 작은 손길들이 모여, 엄마의 베란다에 계절을 불러온다. 엄마의 굽은 손에는 그래서 요령보다 시간이, 재주보다 마음이 남아 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살던 젊은 날에도, 엄마는 그 손으로 집안을 살뜰히 가꾸셨다. 부족한 살림 속에서도 시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셨고, 하나뿐인 시누이와는 평생 자매처럼 지내오셨다. 여러 해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고모를 유별나다 싶을 만큼 챙기는 엄마를 볼 때면, 인생의 한 축을 잃어가는 황혼의 쓸쓸함에 서글퍼진다.
고모에 이어 아버지마저 암진단을 받으셨으니, 엄마가 느꼈을 충격과 상실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투병 이후, 가장 많이 부서진 사람은 당연히 엄마였다. 60년을 함께 산 반려자이자 삶의 동지였던 아버지가 급격히 무너지며, 엄마의 삶도 산산조각이 났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암 진단과 수술, 항암 치료, 그리고 뇌출혈까지... 노년의 문턱에서 연달아 몰아친 사건들은 거센 폭풍처럼 엄마를 휘감았다. 그럼에도 엄마는 그 무너진 어둠의 자리에서 다시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버지가 요양병원으로 옮긴 뒤, 엄마는 눈물을 훔쳐내고 모든 일상을 아버지에게 맞추셨다. 식단도, 수면도, 심지어 사는 곳까지. 간병인의 돌봄을 잠시 받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낯설어하며 불편해하자 엄마는 보호자 간병이 가능한 병실을 선택했다. 그리고 유쾌하게 선언하셨다.
“방 한 칸 얻어 이사 온 셈 치자.”
그날부터 병실은 엄마의 또 다른 집이 되었다. 엄마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아버지의 이불을 바꾸어 드리는 일이었다. 병원에서 준 침구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침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버지에게 조금 더 가볍고 포근한 숨결을 느끼게 해 드리려는 마음이었다.
집에서 하던 것처럼 함께 밥을 먹고, 일일드라마를 보고, 저녁이면 빠짐없이 함께 기도와 예배를 드렸다. 병실 한 칸에, 엄마와 아버지의 일상이 그대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일상은 아버지를 다시 살려내고 있었다. 중환자실의 악몽을 지나 휠체어를 타야 했던 아버지의 다리에, 조금씩 힘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는 걷지 못하실 것 같던 절망 속에서,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하셨다.
“기적이야. 얘들아, 기적이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 기적은 바다처럼 아버지의 하루를 품고 그 위에 봄꽃을 피운 엄마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아버지의 회복이 더디게 이어지던 시간 속에서, 엄마는 자신만의 숨 쉴 틈을 찾아냈다. 병실의 하루는 길고 반복되었지만, 엄마는 그 틈새에 색연필과 종이를 놓았다. 아버지가 투석을 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점심과 저녁 사이의 느슨한 오후,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에 엄마는 조용히 도화지를 펼쳤다. 창틀에 올려놓은 꽃 한 송이, 떨어지는 붉은 단풍, 추억 속에 손짓하는 고향집이 도화지에 곱게 자리를 잡았다.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불안도 걱정도 잠시 멀어진다고 했다. 마음이 어지러울수록 손을 움직이면 차분해지고, 복잡하던 생각이 잠잠해진다고도 했다. 아버지를 돌보며 쌓였을 긴장과 염려는 그렇게 색과 선 사이로 흘러나갔다. 누군가를 살피느라 늘 바깥을 향해 있던 마음이, 그 시간만큼은 엄마 자신에게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그림은 엄마에게 쉼이었고, 다시 돌볼 힘을 건네는 작은 우물 같은 것이었다.
엄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몇 해 전부터였다. 주로 색연필이나 단조로운 물감 몇 가지를 가지고 꽃이나 추억 속에 남아 있던 옛 풍경들을 그렸다. 엄마의 꽃밭처럼 수수하고 정겨운 그림들이, 화려한 기교 하나 없이 도화지를 채워 갔다. 그러다 문득 그림 옆에 짧은 글귀를 적기도 하고, 한 줄의 시나 기도문을 덧붙이기도 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색과 글 사이에 고요히 머물렀다.
그림들은 하나같이 곱고 부드러웠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오래 들여다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마치 엄마의 꽃밭을 마주했을 때처럼,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도 자연스레 걸음을 멈추고 감탄했다. 그저 예쁜 그림이라기보다, 오래 돌보고 기다려 온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풍경들이었다.
재작년, 그렇게 쌓인 그림들을 모아 엄마를 위한 작은 전시회를 열어 드렸다. 장소는 내가 일하는 요양원의 로비였다. 작은언니와 함께 액자를 고르고, 그림의 순서를 정하며 여러 날을 분주하게 보냈다. 전시회를 찾아와 준 분들을 위해 무시루떡도 맞추고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엄마의 친구들, 요양원 어르신들, 직원들과 보호자들이 관람객이 되었다.
팔순을 맞이한 할머니 화가였지만, 엄마는 소녀처럼 설레고 기뻐하셨다. 엄마가 가꾸어 온 꽃들이, 이번에는 종이 위에서 또 한 번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요즘도 엄마는 작은 병실 테이블 위에 색연필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린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가을 산책길, 형부가 사다 준 작은 화분 하나, 소담하게 담긴 홍시 몇 개. 그림 속엔 늘 삶의 따뜻한 조각들이 담긴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들은 하나둘 병실 벽에 걸렸다. 삭막한 병실에는 정말 엄마와 아버지의 삶과 이야기가 꽃이 되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늙은 어머니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나는 병든 아버지의 오늘은 그래서 덜 아프고 덜 외롭다. 봄처럼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엄마의 사랑이 거센 풍랑 앞에 선 아버지를 바다처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해춘(海春)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병상 위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늘도 엄마는 아버지의 이불을 정리하고, 식사를 챙기고, 물을 건네고, 다시 그림을 그린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엄마는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 꽃을 가꾸던 기다림과 정성으로.
집안을 돌보고 일으키던 엄마의 살림은 결국 사그러져가는 아버지의 하루를 살리는 '살림'이 되었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자주 생각한다.
사랑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말없이 곁을 지키며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떠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병실 한 칸에 피어난 엄마 해춘(海春)의 봄은, 지금도 조용히 꽃을 피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