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꽃이 되다

슬픔의 바다를 건너온 가장 눈부신 봄

by 초록바나나

1. 엄마의 눈물, 그리고...


아버지가 투병을 시작한 뒤, 나는 자주 이십여 년 전 어느 가을날을 떠올린다.


2001년, 둘째 아이 출산 휴가가 모두 끝나고 엄마가 어린 두 아이를 봐주고 계실 때였다. 퇴근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종종걸음으로 현관문을 들어섰다. 거실 한쪽에서 손장난을 치고 있던 큰아이가 반가운 얼굴로 달려 나왔다. 아이를 맞을 겨를도 없이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저 다녀왔어요"


그런데 엄마의 대답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웬일인가 싶어 기웃거리는데, 저만치 베란다를 향해 반쯤 몸을 돌린 채 소파에 앉아 계신 엄마가 보였다. 어두워지기엔 아직 아쉬운 듯, 붉은 해를 뒤로하고 가을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엄마를 다시 한번 부르려다가 나는 그만 멈춰 서고 말았다. 환갑을 바라보는 엄마가 울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서럽게. 서향이었던 우리 집 거실은 붉은 저녁해로 물들어 가고, 외투도 벗을 겨를 없이 눈시울을 붉히며 울고 있는 '어린 엄마'와 마주 앉았다.


"엄마,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래 엄마? 애들이 말 안 듣고 속 썩였어?"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엄마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엄마는 나를 보니 울음이 더 북받치셨는지 한참을 서럽게 울기만 하셨다. 그날 엄마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요즘도 가끔 엄마를 생각할 때면 그날의 아린 가슴이 엄마의 주름진 얼굴 보다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늦은 오후, 옹알대며 놀고 있는 손주들을 바라보시다가 문득 '나도 저렇게 걱정 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드셨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본 당신의 어릴 적 그림 속엔 철없는 아이만 덩그러니 혼자였다. 누구나 갖고 있던 젊고 예쁜 엄마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갑자기 울컥하더니 눈물이 났는데 도무지 그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고 하시는 것이다.


"왜 우리 엄마는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서 나를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었을까..."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엄마 앞에서,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 퇴근한 딸이 해 드릴 수 있는 건 어깨를 토닥이며 안아드리는 것뿐이었다.


엄마가 일곱 살 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야기는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책의 한 줄 기록처럼 감정을 넣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무색투명한 사실일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 또한 엄마가 되었지만, 내겐 언제나 "엄마~" 하고 부르면 만사 제쳐 놓고 달려와주는 이가 있었서였을까. 엄마의 슬픈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엄마를 부르며 목 놓아 울고 있는 이는 나의 엄마가 아닌, 엄마 잃은 가여운 일곱 살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엄마라도 되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2. 엄마의 숨은 그림자


자식들이 엄마의 그런 슬픔을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엄마는 강한 분이셨다. 누구보다 생활에 열심을 내셨고, 무슨 일을 하건 남보다 잘해야 직성이 풀리시곤 했다. 엄마가 키운 딸기는 유독 크고 맛도 좋았고, 엄마의 나뭇짐은 항상 우뚝 솟아 다른 아줌마들의 두 배는 족히 되었다. 무엇이든 엄마 손을 거치면 쓸모없는 것도 돈이 되고, 쌀이 되고, 옷이 되었다. 거기에다 넉넉지 않은 시골 살림에 여섯 자식을 거두시느라 꾸밀 새도 없었건만, 누구보다 고운 우리 엄마는 늘 내게 자랑이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의 뒷모습 속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눅이 들어 기를 펴지 못하는 '엄마 잃은 아이'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엄마 없이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더 씩씩하고 억세게 살아왔을 엄마의 세월이 터져버린 둑마냥 강물이 되어 내게 쏟아져 들어왔다. 반세기가 넘도록 꼭꼭 숨겨왔던 서러움이 그 세월을 이기지 못해 늦은 오후의 눈부신 햇살 아래 울음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엄마가 너무 가여웠다. 일곱 살이면 철없이 엄마에게 매달리며 떼를 써야 할 나인데, 갓 시집온 큰올케 눈치를 보며 늘 배가 아팠다는 어린 해춘이는 얼마나 슬펐을까. "꿈속에서라도 엄마를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다"던 독백 속에 그 배 아픈 아이가 울고 있었다. 본인은 가질 수 없었던 젊고 예쁜 엄마가 되기 위해, 더 밝게 웃으며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씩씩한 해춘 씨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엄마라도 된 양 가슴이 저려왔다.


그 정성으로 딸들이 아이를 낳을 때마다 무조건 삼칠일 산후조리를 소명으로 아신 엄마였다. 자식들이 부르기만 하면 충청도 부여에서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안양으로, 안산으로 한걸음에 달려오시곤 했다. 보따리 보따리마다 김치며 고추장, 된장을 이고 지고 들어서는 엄마의 억척스러운 모습 속에 저 눈물이 숨어 있었다는 걸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엄마를 다 이해했다고 말하기에는 소견 좁은 자식이지만 그날 그 순간만큼은 오로지 엄마 잃은 일곱 살 아이를 어르며 함께 아파하고 울었다.


저녁해가 다 사라져 어둠이 도둑처럼 찾아온 뒤에야 그 울음을 거두고 밥상을 차렸다. 목에 넘어가는 것이 밥인지 눈물인지 서걱댔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눈물을 찍어내며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씻겼다. 울어서 기운이 다 빠진 엄마의 이부자리를 펴며 '꿈속에서는 울지 마시라'고 기도했다. 아마도 이렇게 여섯 자식 잘 키운 막내딸을 만나시면 외할머니께서 "장하다, 내 딸아. 사랑한다" 안아주시지 않을까. 그 꿈에 할머니가 꼭 찾아오시길 빌었다.


3. 풀꽃처럼 고운 그대


사실 늘 강하고 억척스럽던 엄마에게서 익숙하지 않은 하늘하늘한 감성을 느끼기 시작한 건 훨씬 전이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였다. 담장 밖에 있던 조그만 화단에 소꿉놀이처럼 부추며 상추가 자라고 있었다. 호미로 흙을 다독이며 풀을 매시던 엄마가 화단 한쪽에서 풀을 뽑다 마시고 동그랗게 상추 사이로 길을 내고 계셨다.


"엄마, 여긴 왜 풀을 안 매?"


내가 쪼그리고 앉아 묻자, 엄마는 싱긋 미소를 지으셨다.


"여기 봐라, 참 이쁘지 않냐? 이 작은 것이 꽃을 피웠구나"


가만 보니 애기 손톱보다도 더 작은 꽃이 상추 사이에 피어 있었다. 그 작고 여린 꽃 한 송이를 지켜주시려고 호미로 길까지 내며 경계를 만들어 주시던 엄마는 갈래머리 소녀보다 더 낭만적이셨다.


그때는 몰랐다. 소녀처럼 감상에 빠져 풀을 매던 손을 놓으신 엄마가, 그 여린 꽃에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계셨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엄마는 그 이름 모를 작은 꽃처럼 누군가가 울타리를 만들어 지켜주기를 어린 시절 내내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꽃을 어루만지던 엄마는, 그때도 울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 가을날 오후처럼.


엄마 가슴속에 숨어 있는 그 모성을 향한 그리움이 엄마로 하여금 잡초에 지나지 않는 작은 풀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꾸게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뜰히 자식들을 사랑하게 하셨다. 그 슬프고 고운 감성이 엄마의 사랑이 되고 기도가 되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키우셨다.


그리고 이제 긴 세월을 넘어 예기치 못한 선물처럼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다시 엄마 품에 돌아왔다. 공책 가득 삐뚤삐뚤 적어 놓은 엄마의 시 속엔 그 삶의 이야기들이 정답게 손을 잡고 노래한다. 엄마가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운 꽃밭에는 형형색색 고운 빛깔에 크고 작은 꽃들로 가득하다. 지금도 엄마는 시들만한 꽃들이 있으면 물을 주고, 더디 피는 듯하면 쉼 없이 기운을 북돋고, 모두들 탐스런 열매를 맺으라고 한 시도 기도를 거르지 않으신다. 엄마는 알고 계신 것이다. 세상 끝날까지 엄마는 엄마라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위대한 모성으로 모성의 결핍을 극복하고, 일흔을 넘어 여든의 나이에도 일곱의 티 없는 마음을 간직한 엄마는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시다. 나는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여전히 그 단단하고 따뜻한 모성을 본다. 당신이 받지 못했던 온기를 평생토록 남편에게, 자식에게, 그리고 작고 여린 생명들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나의 엄마.


엄마의 겨울이 따뜻하길 기도한다.

성탄의 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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