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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이 나도, 산산조각으로 빛난다

참 슬프고, 참 기뻤다.- 아버지와 함께한 가을 산책.

by 초록바나나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 정호승 [산산조각] 에서 -


1. 깨어진 조각 위에서

언제부터인지, 이 시가 자꾸만 마음을 맴돌았다. 낙상과 중환자실을 지나며 아버지의 일상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어디 아버지의 일상뿐인가! 엄마를 비롯해 자식들의 마음도 산산조각 나 있었다. 계획도, 기대도, 완벽했던 과거의 모습도 돌이킬 수 없이 부서졌다.


시인이 애지중지하던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황급히 순간접착제로 부치고 나니, 부처님이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신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우리 모두를 향한 그 따뜻한 쓰다듬음. 그 구절을 되뇌면 신기하게도 가슴속에 잔잔한 위로와 용기가 피어올랐다. 산산조각 난 절망과 불안은 오히려 우리가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순간이었다. 참된 쉼과 평화는 그런 순응 속에서 찾아왔다. 마치 잠시 걸음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 세상이 천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암과의 동행'을 선택한 우리 가족은 더는 어떠한 검사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암이 암의 일을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고, 추억을 나누며, 웃음으로 오늘을 붙잡는 일, 그렇게 병든 아버지의 산산조각 난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시인의 말처럼 그 부서진 조각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빛나는 순간들이 보였다. 그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순간 위에 여리고 고운 빛이 머물렀다. 빠져버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다듬던 언니의 미소 위에, 좋아하시는 반찬을 챙겨 오는 동생의 수고 위에, 변함없이 옆자리를 지키는 엄마의 60년 사랑 위에 그 빛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슬픔과 눈물의 조각들을 모으고 나니 그 자리엔 감사와 기쁨이 채워졌다. 더는 어제를 후회하지도, 내일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용기를 조금씩 되찾아갔다. 지금 이 시간에 마음을 다하며, 아버지가 남기고 가시는 삶의 온기를 조용히 받아 적어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길이었다. 아버지는 투병을 통해서 그런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고 계셨다.


2. 아버지의 뜻밖의 선물

돌아보면 선물 아닌 것이 없는 아버지의 삶이었다.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친구와 동료로, 공무원으로 받기보다 내어주는 것이 익숙했던 인생이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것들을 헤아려보니 크고 작은 물건부터, 격려나 위로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 참 다양했다. 양손에 들린 통닭 두 마리처럼 예고 없이 건네 주신 뜻밖의 선물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하게 된 것도 어쩌면 아버지가 주신 이런 뜻밖의 선물 덕분이었을 것이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초등학교 5~6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수십 권에 달하는 세계명작전집을 한가득 사서 집으로 들어오셨다. 사무실로 찾아온 방문판매원에게 월부로 구입한 책들이었다. 아버지는 종종 이렇게 물건을 덜컥 구입해 오곤 했는데, 알로에나 홍삼 같은 건강식품에서부터 소형 가전, 묶음으로 된 넥타이나 양말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중에는 쓰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도 적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의 이런 구매가 거절 못하는 성격 때문이라며 늘 못마땅해하셨다. 하지만 이 전집은 좀 특별했다. 집에 변변한 책이라고는 교과서가 전부였던 우리 집에 작은 도서관 하나가 들어선 것 같았다. 책장을 가득 채운 두껍고 번쩍이는 양장본들은 낯설고도 경이롭기만 했다.


제인에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죄와 벌, 모비딕, 위대한 게츠비, 데미안....


나와 형제들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고전들을 읽느라 많은 밤을 지새웠다.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즐거움과 뿌듯함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많던 이야기들 속에서 내가 만난 것은 부서지고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이었다. 부처님의 위로 같은 그들의 삶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진정한 사랑과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난 새가 아니다, 나를 잡아둘 그물은 없다"라고 외치던 제인에어의 당당하고 독립적인 모습에 기묘한 쾌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잃고도 끝내 다시 일어서려는 스칼렛 오하라의 강한 생명력에 열광했다. 모비딕을 찾아 망망대해를 헤매던 아합 선장의 광기 어린 집착은, 어둑한 새벽에 책장을 덮고서도 쉽게 잊히지 않았다.


시인의 노래처럼 그들은 산산이 부서진 파편으로도 아름답게 삶을 조각하는 인생의 마술사들이었다. 내 안에서 잠들어 있던 그 많던 장면들이 아버지의 투병과 함께 다시금 살아났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늙음과 질병으로 무너진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는 나의 언어가 되었다.


3. 흔들리는 걸음, 소중한 동행

아버지의 섬망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안정되어 갔고, 더디지만 뇌출혈의 흔적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여러 번 저혈당 쇼크가 찾아와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염려했던 암성 통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몸속에서 잠시 졸고 있는 암덩어리가 이대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영역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의 삶은 충분히 감사로 가득 찼다.


그 사이 가을은 멈추지 않고 오고 있었다. 형제들은 서로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겹치지 않게 각자의 일상을 쪼개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 큰언니는 주로 주중 낮에, 병원 가까이 사는 다섯째 동생은 매일 저녁 퇴근하면서 아버지를 뵈러 갔다. 작은 언니와 나는 주말을 아버지께 드렸다.


주말이 오면 우리는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 근처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널찍한 산책로와 미술관이 있고, 호수를 바라보는 작은 카페도 있는 곳이었다. 말은 산책이었지만, 매번 적지 않은 준비가 필요했다. 언니와 시간을 맞추고, 간식과 물, 가벼운 담요와 모자도 챙겼다. 무거운 휠체어를 차에 싣고 내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언니와 내가 양쪽을 붙잡고 힘을 모아야만 겨우 옮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일은 휠체어 앉기를 자꾸만 마다하시는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내가 왜 이걸 타야 하냐. 걸을 수 있어.”


아버지는 늘 그랬듯 단단히 버티셨다. 여러 번 권하던 엄마에겐 버럭 화도 내셨다. 스스로 걷는 일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 여기시는 듯했다.


"날이 얼마나 좋은데! 방안에 우두커니 누워있느니 휠체어를 타고 바람을 쏘이는 것이 더 낫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지팡이 없이 걷기가 힘든 엄마의 설득엔 이유가 충분했다. 아버지께서도 두 다리가 예전 같지 않음을 스스로 더 잘 알고 계셨다. 몇 걸음만 떼어도 주저앉는 일이 반복되자 결국 휠체어를 받아들이시게 되었다. 휠체어를 탄 모습은 낯설고 가슴 아팠지만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할 또 다른 과정이었다.


길을 나서기까지는 여러 작은 사건들이 기다렸다. 갑자기 찾아온 저혈당 때문에 급히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고, 몇 분 걸었을 뿐인데 아버지의 얼굴이 창백해져 놀란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모든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그저 사랑스럽고 고맙기만 하다. 마치 삶이 선물처럼 남겨준, 흔들리고 불안정한 우리 가족의 조각들 같았다.


가을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오던 어느 날, 호수로 이어진 팔각정자에서 함께 마신 커피는 시원하면서도 달콤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듬뿍 넣은 엄마의 커피, 젊은이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택한 아버지의 커피는 상큼하고 향기로웠다. 가져간 귤과 떡까지 곁들여 풍성하게 즐긴 그 가을 소풍은, 호수에 비친 푸른 하늘처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아버지는 간식을 드시고는 팔각정 둘레를 두 바퀴나 도셨다. 느리고 힘든 걸음이었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행여나 넘어지실까 그 뒤를 따라 걷는 언니와 내게 애틋함과 감사가 함께 밀려왔다.


바람은 선선했고, 햇살은 부드러웠다. 위태롭긴 했지만 아버지의 그림자는 여전히 곁에 있었다.


참 슬프고, 참 기뻤다.


문득, 이게 우리가 선택한 ‘동행’의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완전해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는 이렇게, 작고 흔들리는 걸음으로 다시 가르쳐 주고 계셨다.


어린 시절 밤을 새워 읽던 책들이 떠올랐다. 그 이야기들은 언제나 참혹한 시련이 지나면 새로운 장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주곤 했다. 이별의 아픔 끝에 다시 사랑을 찾은 제인 에어처럼, 내일의 태양을 믿으며 꿋꿋이 일어섰던 스칼렛처럼, 깊은 죄책과 방황 끝에 구원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 라스콜니코프처럼, 수많은 주인공들이 흔들리면서도 결국 다음 페이지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지금, 아버지는 휠체어 위에서 자신의 새로운 장을 꿋꿋이 넘기고 계셨다. 부서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우리 가족의 삶, 조각난 날들 속에서도 햇살은 은은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아버지의 숨,

아버지의 눈빛,

아버지를 감싸는 가을바람,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우리의 손.


아버지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가을 햇살이 참 좋구나!"


눈부신 가을햇살도 푸른 호수 위에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부서진 뒤에야 세상을 더 환하게 밝히는 햇살처럼, 아버지의 남은 삶이 더 빛날 수 있기를.

아버지와 함께 이 아름다운 날들을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한 기도드렸다.

< 엄마가 직접 그린 아버지와 함께한 가을 산책>


산산조각 /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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