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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찾아온 봄의 선물

희망과 소망 그 어디쯤

by 초록바나나

네잎클로버


우연히 내게로 온

작은 풀잎 하나

두 손에 소원을 담아

꼭 쥐었습니다.


희망일까, 소망일까

그 사이 어디쯤

가만히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했어요.


이 소원, 바람결 따라

당신께 닿기를.

희망을 넘어

소망으로 피어나기를.


하얀 벽을 마주하며

두려움을 견뎌낸 당신.

"괜찮다" 웃어주던

따뜻한 눈빛


그 마음 위에

햇살 하나

살포시 내려앉기를

조용히 빌었어요.


기적의 한 잎을 더한

네잎클로버,

행운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어요.

소망의 시작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병실 문을 나서는

당신의 걸음마다

내 마음 풀잎에 담겨

기적을 불러오는 노래가 되길


그리고 부디

조금 더 가벼운 걸음으로

희망도, 소망도

함께 하시길



1. 기적의 한 잎


아버지께서 퇴원을 하시게 되었다. 위 절제 없이 우회술만 하신 아버지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회복하고 계셨다. 수술이 아주 잘된 줄로만 아시고, 기분도 한결 밝아지셨다. 같은 날 수술한 옆 병실 환자보다 컨디션이 좋다며 묘한 자신감까지 느끼고 계셨다.


빨리 회전해야 하는 대학병원 시스템에 따라, 주말에 이미 퇴원 오더가 내려왔다.


일요일, 남편과 함께 퇴원을 준비하는 아버지를 뵈러 가기로 했다. 마침 남편이 활동하고 있는 마라톤 동호회 단합대회가 근처에서 있어, 잠깐 들렀다 가게 되었다.


처음 만나는 이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햇살이 내리쬐는 초록 잎사귀엔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웃음소리가 상쾌하게 반짝였다. 군살 없는 날렵한 몸매처럼 군더더기 없는 그들의 친절은 부담 없이 담백했다. 잠시 시름을 잊고 그 즐거움에 동화되어 가던 순간, 한 회원분이 다가왔다.


"오는 길에 이걸 찾았어요. 오늘 처음 오신 분께 드리고 싶은데..."


그분의 손에는 작은 네잎클로버 한줄기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고 어리둥절했다.


"정말요? 이런 귀한 걸 절 주셔도 돼요? "


그분은 시들지 말라고 종이컵에 물을 담아와 넣어주기까지 하셨다.


"딱 뵈었는데... 그냥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행운이 찾아올 거예요. 분명히."


내게 인력(人力)으로 어찌할 수 없는 행운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분은 어떻게 아셨을까! 너무 신기하고 고마워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아무런 이유도, 인연도 없는 낯선 이가 건넨 작은 초록 잎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로와 용기를 전해 주었다. 마치 하늘이 잠시 열려 "이제 괜찮을 거야"하고 속삭이는 기도의 응답 같았다.


종이컵의 물이 한 방울이라도 땅에 떨어질까 조심하며, 두 손에 소중히 품고 아버지를 뵈러 갔다. 아버지는 수술 전보다 훨씬 좋아 보이셨다. 네잎클로버를 받아 들고 평소보다 더 환하게 웃으셨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행운이 우리 아버지께 쏟아지길 기도했다.


다음날, 아버지는 그 네잎클로버를 손에 들고 병실을 나서셨다. 하얀 복도에 햇살이 길게 스며들고 있었다. 조금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 나가시는 아버지.


그날의 봄빛이 아버지의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잘 이겨내실 거라고, 희망과 소망 사이 어디쯤, 스스로 길을 만들고 계신다고 믿고 싶었다.


2. 속초 여행


퇴원 후, 아버지의 하루는 흐림과 맑음, 비바람과 햇살이 엎치락뒤치락 반복됐다. 당뇨 조절이 안돼 요양병원에 잠시 입원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삶의 의지를 보이시며 일상을 향해 몸을 일으키셨다.


담당 의사는 '컨디션이 연세에 비해 양호하고, 체력도 좋은 편'이라며 종양내과 전원을 결정해 주었다. 항암을 견딜 수만 있다면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말도 건넸다.




종양내과 진료를 앞두고,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더 더워지기 전에, 항암을 시작하시기 전에,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기분을 환기시켜 드리고 싶었다.


육 남매는 물론, 직장에 다니는 큰 손주부터 재수를 하고 있는 우리 집 막내까지 스무 명이 넘는 대가족이 함께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투병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회합이었다.


급하게 잡힌 일정이었기에 숙소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스무 명이 넘는 가족이 한꺼번에 묵을만한 곳을 구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과제였다. 장소는 어디라도 상관이 없었다. 온 가족이 함께 머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지인의 지인 찬스까지 모두 동원한 끝에, 다행히 속초의 한 리조트에서 방 세 개를 구할 수 있었다. 방 하나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창 너머로 울산바위가 묵직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능선 위로 부드러운 바람이 흘러가고, 여름을 재촉하는 잔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단하게 젖은 하루에 나직하게 쉼이 스며들었다.


아버지께서는 무척 좋아하셨다. 빗길을 달리던 그 밤은 투석이 끝난 직후였지만, 피곤한 기색이 없으셨다. 먼저 도착한 가족들에 둘러싸여 환영받는 모습이 꼭 통닭 두 마리를 양손에 들고 퇴근하시던 수십 년 전 월급날 같았다. 우리가 기다린 것이 통닭이었는지, 아버지였는지 헷갈리던 철부지 시절이었다.


어쩌다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기름이 밴 누런 봉투를 들고 오시는 날은 신기하게도 골목 어귀에서부터 고소한 통닭 냄새가 퍼져왔다. 우렁차게 우리를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눈치 빠르게 후다닥 뛰어나와 아버지를 맞이하면, 통닭에 이어 용돈까지 덤으로 따라오는 운수 좋은 날이 되었다.


통닭 몇 마리에 흥분하던 어린 시절은 저 멀리 사라지고, 이젠 아버지만 계시면 모든 게 선물이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 옛날 아버지에게 자식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전엔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이런 가족 여행을 자주 다녔었다. 주로 커다란 펜션을 통째로 빌리고, 온 가족이 함께 하는 1박 2일 여름휴가였다. 각각 일정을 맞추고, 장소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이런 번거로운 행사가 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생신과 겹쳐 빠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준비하는 과정은 어려웠지만, 막상 모두 모여 고기를 굽고, 수박을 자르며, 아이들 장기자랑까지 겸하다 보면 '모이길 참 잘했다'는 뿌듯함을 안고 헤어지곤 했다. 그렇게 다져진 가족애가 있었기에 갑자기 추진된 이번 여행도 빈틈없이 꽉꽉 채워졌다.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아버지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3. 전복죽을 끓이며


하지만, 마음과 달리 아버지의 몸은 편안하지 않으셨다. 손발이 퉁퉁 붓고, 밤새 배앓이를 하셨다. 2시간 넘는 여행길이 무리가 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버지 옆에서 밤을 지샌 엄마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다행히 간절히 기다렸던 아침이 밝아오자, 밤새 내리던 비가 개이고, 아버지의 복통도 진정되기 시작했다.


큰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다. 메뉴는 전복죽과 야채찜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깬 부엌에선 부지런한 언니들의 대화가 소곤소곤 아침을 깨웠다.


어젯밤에 미리 손질해 놓은 전복에서는 벌써 바다의 기운이 느껴졌다. 냄비에 쌀과 참기름을 넣고 볶다가 쌀이 투명해질 때 즈음 전복살을 넣었다. 고소하면서도 구수한 향이 돌더니 잠시 후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맛있는 죽을 먹으려면 불을 줄이고 은근하게 오래 끓여야 한다. 쌀알이 터지고 뭉근해질 때까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깊은 맛을 낸다.


급히 서두르면 금세 눌어붙는 죽처럼, 우리의 삶과 인생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가 기적처럼 하루아침에 나아지기만을 바라는 조급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은근히 곁을 지키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왜 잊고 있었을까!


인생의 죽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끓여야 했다. 성급한 기대나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었다. 다그치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뭉근하게 희망을 익혀야 한다. 아버지의 오늘을 따라 걸어가는 일도 그랬다. 잠시 불을 줄이듯 마음을 낮추고, 기다림과 인내로 함께하는 느린 여행이 되면 좋겠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언니가 끓인 전복죽은 정말 맛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부드럽게 아침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가족의 날을 열었다.


4. 우리의 특별한 하루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산책을 하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차도 마셨다. 바다 향기가 물씬 나는 해변을 걸으며 사진도 찍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버지가 앉아계신 카페의 커다란 창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우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눈에는 행복이 어렸다. 점심엔 맑고 담백한 하얀 순두부, 저녁엔 삼겹살에 시원한 냉면을 먹었다. 아버지께서는 많이 드시지는 못했지만 즐겁게 자리를 지켜주셨다. 어제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잔잔했고, 평화로웠다.


밀물처럼 덮쳤던 두려움과 슬픔이 썰물과 함께 저 멀리 흩어졌다.


모든 것을 덮고 있던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비로소 드러난 갯벌의 진실처럼 마음속이 선명해졌다. 그 고요함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니 작은 생명의 흔적 같은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모래 위, 잔잔하고 섬세한 물결을 닮은 엄마의 헌신과 사랑도 보였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아버지의 오늘을 지켜내고 있는 형제들의 기도도 들려왔다. 속초의 둘째 날 밤이 조용히 깊어갔다.




아버지께서는 편안하게 잘 주무신 후, 전날처럼 따끈한 전복죽을 드셨다. 딸들의 손맛이 입에 딱 맞는다며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셨다.


아침을 먹자마자 집에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차가 막히기 전에 출발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다르셨다.


" 이대로 헤어지기는 서운하구나. 아버지가 너희들 밥은 한 끼 사줘야지"


가족들이 모일 때면 늘 무언가 해 주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다. 돌아가는 길은 나중에 걱정하기로 하고, 그 말씀을 따라 다 함께 물회를 먹으러 갔다. 수술하신 아버지가 드시기엔 거친 음식이었지만, 이 또한 아버지의 뜻이었다. 속초까지 왔는데 물회를 안 먹고 가면 되겠느냐고 농담까지 하셨다.


아버지가 사주신 물회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맛있었다. 후끈 달아오른 초여름의 더위를 모두 날려주는 맛이었다. 달콤, 새콤, 매콤한 국물, 싱싱한 해산물, 넉넉한 인심에 아버지의 사랑이 더해져 세상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시원한 맛을 선물했다.


아버지가 계시기에 가능했던 그 맛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옛날 어린 우리들을 흥분으로 몰아넣었던 기름 젖은 통닭에 비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뒷자리에 앉으신 부모님께선 별스럽지 않았던 여행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셨다. 무엇이 그리 좋으셨는지 웃고 또 웃으셨다. 염려와는 달리 고속도로도 아버지의 웃음처럼 상쾌하게 뚫렸다. 차창에 부서지는 6월의 햇살이 눈부셨다. 맑게 개인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아름다웠다. 시원스럽게 달리던 그 길에 기적이 펼쳐지고 있었다.


너무도 우연히 내 손에 쥐어졌던 네잎클로버.

행운을 가져다준다던 초록 잎의 기적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웃음 속에 들어 있었다.

주어진 삶의 자리를 기쁨으로 물들이며, 그 기적의 길을 열고 계셨다.

희망과 소망이 맞닿는 그 어디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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