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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04. 2021

'특이·전의·격변'은 당혹하고 집중하게 한다 (3)

*책 '재미의 발견' 출간 전 연재. '프롤로그'부터 읽으면 더 좋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대체 언제 지나갔는지 궁금하게 만들 정도의 영화, 종영이 다가오는 것이 아쉬웠던 드라마, 나도 모르게 구독 버튼이 눌러지는 유튜브 영상…


재미있는 콘텐츠는 공통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거기에 특·전·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특이(特異) : 보통 것이나 보통 상태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다름

전의(轉意) : 생각이 바뀜, 의미가 바뀜

격변(激變) : 상황 따위가 갑자기 심하게 변함      


특·전·격은 시청자를 당혹하게 하고 거기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 당혹과 집중의 강도는 나른한 오후에 마시는 쨍한 아이스커피 이상입니다. 막 이사한 집에 왕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를 상상해보면 딱 맞겠습니다. 저는 대학 때 자취방에서 잠이 막 들기 시작할 때쯤 가슴에 뭔가가 툭 떨어져서 봤더니, 검지만 한 바퀴벌레였습니다. 그 바퀴벌레는 제 가슴을 사사삭 기어 목 쪽으로 넘어오더니 턱에 닿고 어디론가 숨어버렸고, 그래서 결국 저는 친구 집에 가서 자면서도 계속 그 바퀴벌레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기생충>의 초반부에 왜 송강호가 앉아있는 식탁에 곱등이가 앉아 있었을까요? 식탁에 곱등이가 앉아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보통 상태와 비교해 두드러지게 달랐기(‘특이’였기에)에 관객을 순식간에 영화에 당혹하고 집중하게 했습니다.       


재미에 있어서 당혹과 집중 이후에 형성되는 감정은 부차적입니다. 즉, 재미에 있어서 특·전·격은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눈물 콧물 짜내는 슬픈 영화를 봤을 때, 감동적인 영화를 봤을 때, 배꼽 빠지는 코미디 영화를 봤을 때, 소름 돋는 공포·액션영화를 봤을 때, 각각의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당신의 표정은 영화마다 달랐습니다. 각각의 콘텐츠가 일으키는 감정이 제각기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면 특·전·격(당혹, 집중) = 재미인가요?      


아직 끝이 아닙니다. 한 가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 화재나 교통사고 등 안타까운 장면을 접했을 때도, 고어 영화 같은 혐오스럽고 매스꺼운 콘텐츠에도 우리는 당혹하고 집중합니다. 그런데 그런 콘텐츠를 접하고 대부분은 재미있다고 말하지 않지요. 그런 콘텐츠들은 당신을 당혹하게 하고 집중하게는 했으나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제가 천장에서 떨어진 바퀴벌레를 재밌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그렇다면 ‘재미있다’에는 당혹과 집중이라는 요소 외에도 무엇이 더 추가돼야 할까요? 추가돼야 할 것은 없고 덜어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특·전·격에는 반드시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요소가 삭제돼야 합니다. 재미있는 무언가는 우리를 당혹하고 집중하게 했고, 우리는 그것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고통을 준다면 그 콘텐츠는 재미있는 콘텐츠가 아닙니다. 크리에이터로서 우리는 항상, 늘, 반드시 타인의 고통에 예민해져야 합니다. 강호동은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미난 비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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