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재미의 발견' 출간 전 연재. '프롤로그'부터 읽으면 더 좋습니다.
‘까꿍’
사실 사람들은 대부분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미의 기본 원리를 배웁니다. 즉, 당혹과 집중을 만드는 특·전·격을 배웁니다. 바로 ‘까꿍놀이’를 통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까꿍놀이는 만으로 한 살 내외의 아이에게만 통합니다. 태어난 지 1년이 지나버리면 아이는 더 이상 이 단순한 놀이에 당혹 및 집중하지 않습니다. 생후 1년이 안 된 아기가 당혹한 이유는 엄마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순간, 눈앞에 있던 엄마의 얼굴이 아예 다른 차원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대상이 언제나 동일한 차원에 존재한다는 ‘대상영속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가 드러냈을 뿐이지만 아이는 엄마가 아예 다른 차원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황당해하며 집중하는 것입니다.
까꿍놀이를 감상한 아이의 얼굴이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해보세요. 갑자기 사라졌다가 ‘까꿍’ 하고 다시 나타난 엄마. 아이의 입은 살짝 벌어집니다. 눈은 동그랗게 떠 엄마를 멀뚱멀뚱 보고 있지요. ‘당혹’과 ‘집중’입니다. 그리고 엄마의 웃는 얼굴에 아이는 곧 까르르 웃게 됩니다.
“있다 없으니까~” 씨스타의 노래를 읊어봅니다. 아이에게 엄마의 얼굴은 노랫말 그대로 있었다가 없어졌다가, 다시 웃으며 나타납니다. 이때 아이는 마치 눈앞에서 만리장성을 뚫고 지나가 버린 데이비드 카퍼필드를 보는 느낌입니다. 특·전·격. 아이에게 엄마의 상태는 갑자기 심하게 변했고(격변), 그 상태는 보통 상태와 비교해 두드러지게 달랐습니다(특이). 그것은 또한 엄마가 눈앞에 있을 거라는 당연한 생각이 바뀌는 일(전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까꿍놀이에 당혹하고 집중한 것입니다.
꺄르르 웃는 건 엄마가 웃어서 아이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재미의 메커니즘을 기억하시나요? 재미있는 모든 것은 일단 보는 이를 당혹하고 집중하게 하고, 그것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게 합니다. 엄마의 까꿍놀이는 아이에게 재미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다른 까꿍놀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아기들은 하나같이 이 놀이에 매혹됩니다. 당혹하고, 집중하고, 꺄르르 웃습니다. 특·전·격의 효과는 만국 공통, 아니 전 인류 공통입니다.
[특·전·격은 과학입니다]
‘까꿍’
특·전·격이 일어나면 우리는 특·전·격을 일으킨 대상에 당황하고 집중합니다. 가령 당신이 카페에 앉아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어깨를 툭툭 치며 아주 반갑게 인사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당신은 전혀 모르는 상대를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쩔 줄 몰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당혹과 집중에는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 의식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꼬치꼬치 따지고, 계산하고, 머리를 굴리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현재의식과 정서, 충동, 본능을 주관하는 잠재의식. 예를 들어 시험기간에 현재의식은 공부해야 할 과목과 공부하지 않으면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지만, 잠재의식은 다 포기하고 잠을 자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고 싶어 합니다.
현재의식은 늘 여러 가지 이성적인 생각들로(마치 게임의 패시브 스킬처럼) 우리를 지키지만 그리 강하지는 않습니다. 시험기간에 공부해야 할 과목이 남았는데도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버린 적이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식이 먼저 나가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의식은 체계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지나치게 사용하면 피로해집니다. 그래서 비합리적이고 단순하며, 사소한 일에도 호들갑을 떠는 잠재의식에 쉽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특·전·격은 나약한 현재의식이 받아들이기 버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특·전·격이 일어나면 우리 의식은 말 그대로 백지상태가 됩니다. 백지상태. 어떤 방어적인 의식들이 모두 날아가 버린 상태. 더 정확히 말하면, 특·전·격에 의해 현재의식이 과부하 돼 수용적인 잠재의식이 무방비하게 노출된 상태입니다.
전에 없던 일과 마주해 그저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해버린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군 훈련소에서는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높이 11m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 교관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마디 하고 뜁니다!”하면 평소 과묵하고 내성적인 사람들도 다리를 덜덜 떨며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꺼내게 됩니다. 땅 위에서 같은 말을 들었을 때와는 굉장히 다릅니다. 11m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가 방어적인 현재의식을 날려버려 잠재의식만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복싱으로 치면 강제로 가드가 내려간 것입니다. “고객님, 당황하셨나요?” 보이스피싱범들이 사용하는 기술의 원리도 이와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 가족이 직접 겪은 일이기도 합니다만, 어떤 보이스피싱범들은 군대에 간 아들이나 손자가 다쳤다는 거짓말로 현재의식을 날려버린 후 “얼른 돈을 보내세요. 그래야 수술할 수 있어요” 같은 말을 따르게 합니다.
현재의식이 특·전·격에 의해 과부하 돼 소위 ‘랙’이 걸려버리면 잠재의식은 그저 특·전·격을 만들어낸 대상에 당황하고 집중하게 됩니다. 특·전·격은 이렇게 재미의 기본인 당혹과 집중을 만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