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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04. 2021

“불구경,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어?” (8)

*책 '재미의 발견' 출간 전 연재. '프롤로그'부터 읽으면 더 좋습니다.



우리 인생을 긴 다큐멘터리라고 할 때, 하루 분량의 전개에서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일어나는 횟수는 평균적으로 몇 번일까요? 혹은 불구경이나 싸움구경은 하루에 몇 번이나 일어날까요? 보통 많아야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불구경이나 싸움구경을 할까 말까 하니 0.00547번(2/365) 정도일 겁니다. 이때 이 0.00547이 바로 ‘보통’이며, 하루에 불구경이나 싸움구경이 일어나는 횟수가 이 ‘보통’에서 크게 벗어났다면 특이(特異)입니다.        

‘화르륵’      

누군가 푸드트럭에서 불 쇼를 벌입니다. 요리대가 이연복입니다. 그가 커다란 중식용 프라이팬에 기름을 뿌리자 큰불이 붙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눈과 귀는 자연히 이연복 쪽으로 쏠립니다. 그 눈과 귀가 이연복이 불 쇼를 벌인 목적이었습니다.        


‘퍽, 퍽, 퍽’

갑자기 고성이 나고 욕설이 들리더니 투닥거리는 싸움이 시작됩니다. 국회의원들입니다. 한 의원의 턱에 스트레이트 펀치가 꽂힙니다. 채널을 돌리려던 리모컨 위에서 손이 멈춥니다. 뉴스가 예능보다 시청률이 높아집니다.        


“불구경,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어.”     


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부터 이 말을 듣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구경, 싸움구경을 할 때 우리는 입을 헤~ 벌리고, 눈은 동그래진 채 당황하고 집중했을 것입니다.      


지금 책을 읽는 공간에서 10m 떨어진 곳에서 불이 난다고 상상해보세요. 혹은 근처에 있는 어떤 남자가 갑자기 다른 남자의 머리채를 잡았다고 상상해보세요. 현실에서는 절대로 불이나 나거나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불이 나거나 싸움이 시작되면 매일 똑같았던 ‘보통’의 일상에는 확실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똑같은 등굣길, 출근길,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상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던 특이점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의 현재의식은 잠시 날아가 버리고, 잠재의식만이 남게 됩니다. 따라서 넋을 놓고 불과 싸움에 집중하게 되지요. 아주 일시적이더라도 말입니다. ‘특이’의 효과입니다.       


현실에서 불과 싸움은 부정적인 감정을 남길 가능성이 높기에 재미로 귀결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저 여기서는 현재의식을 치우고 잠재의식만을 남겨서 사람들의 온 신경을 잠시 붙들어놓는 ‘특이’의 효과에만 주목해주길 바랍니다. 보통 것이나 보통 상태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다름으로 인해 일어나는 당혹과 집중이 바로 재미의 뿌리니까요.   


크리에이터에게는 불구경과 싸움구경이야말로 가장 쉽고 단순하게 당혹과 집중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입니다. 실제로 많은 프로듀서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불구경과 싸움구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중에 싸움구경이 없는 프로그램이 존재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예컨대 시청률 30%에 달했던 <미스터트롯>의 중심을 이루는 전개는 라이벌 구도에서 펼쳐지는 경쟁입니다.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서로를 유쾌하게 비하하거나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며 싸웁니다. <라디오스타>는 김구라를 중심으로 게스트를 깎아내리고, 게스트가 그 도발을 받아치는 데서 재미를 찾습니다. <런닝맨>에서는 싸움이 추격전 형태로 일어납니다. <아는 형님>에서는 게스트와 출연진의 신경전이 텃세를 부리는 학생들과 그에 도전하는 전학생 사이의 대결 형식으로 펼쳐지지요. <알쓸신잡>에는 미묘한 ‘지식 대결’의 기류가 흐릅니다. <짝>은 짝을 찾기 위한 경쟁이며 <불타는 청춘>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힐링을 내세운 예능에서조차 크리에이터들은 미묘한 싸움구경을 만들어냅니다. 가령 <도시어부2>에서 이수근은 이렇게 말한 바 있지요. “여기는 낚시 안 하면 싸우고 있더라고.”      


어느 나라 예능이든 싸움구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외국 예능에서는 실제 싸움을 붙이기도 합니다. 길거리에서나 일어나는 그런 지저분한 싸움을 말이지요. 그 싸움구경이 시청자들을 당혹하고 집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에 ‘싸움’이라고만 검색해도 어마어마한 동영상이 나오고 대부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TV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BJ 철구의 유튜브 영상 중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은 부부싸움 영상입니다. ‘철구 부부싸움’이라고 검색하면 각기 다른 부부싸움 영상이 수십 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조회수가 많은 것은 600만 회가 넘습니다. 일부 영상 플랫폼에서는 폭력적인 성향의 방송인들이 심한 욕설로 서로를 비방하는 것을 콘텐츠화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폭력을 자행하고 현피에 살해 협박까지 일삼아 경찰서를 들락거립니다. 애꿎은 사람들에게 일부러 시비를 걸기도 하지요. 싸움구경을 보기 위해 모인 시청자들은 더욱 자극적인 싸움을 부추기며 후원을 하기도 합니다.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방송인들은 더 크고, 더 잦은 싸움구경을 만들수록 더 많은 수익을 얻습니다.        


한편, 싸움구경의 원조는 스포츠입니다. 가령 UFC 같은 격투기, 축구나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등 스포츠도 따지고 보면 싸움구경입니다. 길거리 싸움과 다른 점이 있다면 까다로운 규칙을 정해놓았을 뿐이지요. 사람들은 이러한 싸움구경을 더 가까이서 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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