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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04. 2021

봉준호와 빌리 아일리시의 특이점 (10)

*책 '재미의 발견' 출간 전 연재. '프롤로그'부터 읽으면 더 좋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술가는 누구일까요? 2020년 기준 빌리 아일리시라고 해도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아일리시는 2020년 미국 최고 전통의 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드에서 39년 만에 주요 네 개 상을 거머쥔 가수입니다. 수많은 쟁쟁한 가수들이 2001년생인 그의 노래를 커버하고 동경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온몸에 거미를 두르고 심지어 그 거미를 우아하게 입 안에 넣었다가 빼는 ‘you should see me in a crown’ 뮤직비디오를 시청해보길 권합니다. 아일리시는 불구경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특이하게 만들어낼 줄 압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장 원초적인 특이점인 불구경으로부터 벗어나 좀 더 세련된 특이점로 나아가겠습니다.


“저는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어떤 장르로 분류(카테고라이즈)되지 않는 음악을 만드는 게 늘 쉽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제가 시도하고 있는 모든 것은 제가 하는 음악이 특정 장르로 분류되지 않게 하는 거예요. 제가 하는 음악은 팝도 아니고 얼터너티브도 아니에요. 저도 제가 하는 것이 뭔지 몰라요. 저는 제가 하는 음악을 ‘얼터너티브 트랩’으로 불러요.” (빌리 아일리시 MTV 인터뷰)     


아일리시가 말했듯, 그의 노래는 현대의 장르로는 분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특이’합니다. 어떤 음악이 특정 장르에 속한다는 의미는 그 음악이 해당 장르에 속하는 수많은 음악이 가진 평균적인 분위기와 비슷한 특성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그 장르 음악은 보통 이런 식이야.” ‘보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어떤 음악을 그 어떤 장르로도 분류할 수 없다면, 그것은 ‘보통’을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봉준호 자체가 장르다.” 

64년 만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 수상한 봉준호. 

영화 평론가이기도 한 후배 송석주 기자는 “봉 감독의 영화는 단일한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한 영화에 다양한 장르가 내재해있는 특성을 보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자의 말처럼 봉 감독의 영화는 코미디나 스릴러, 판타지, 액션 등 어느 한 장르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어떤 장르로 흐르는 듯하다가도 좀처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장르적 클리셰를 부숴버립니다. 어떤 장르로도 구분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기생충> <옥자> <설국열차> <마더> <괴물>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영화의 큰 특징을 몇 가지 뽑아봅시다. 극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대부분 주류 사회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조금만 밀면 나락으로 떨어질, 마치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듯한 이들입니다. 영화는 어두운 스릴러인 듯하지만, 시종일관 유머를 놓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코미디나 액션 영화라고도, 블랙코미디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장르로 규정될 수 있는 임계점 앞에서 영화는 툭툭 꺾여버립니다. 결말은 완벽한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닙니다. 늘 찝찝하고, 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이렇게 그 특유의 특징들이 섞여 다른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누군가 “이 영화 장르가 뭐야?”라고 묻는다면 그저 “스릴러도 아니고, 코미디도 아니고... 그냥 봉준호야”라고 대답할 수밖에요.   


어떤 것이 재미있다면 그것은 때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말들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봉준호의 영화와 아일리시의 노래가 카테고라이즈가 쉽지 않은 것처럼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특이(特異)에 시청자는 당황하고 집중합니다.      


저는 당신이 빌리 아일리시의 공연 실황을 찾아봤으면 합니다. 관객이 아일리시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가 추는 독특한 춤을 황홀하게 쳐다보는 장면을 살펴보시길. 바로 그 장면이 빌리 아일리시가 만드는 불구경에 빠진, 그리고 어떤 장르로도 분류되지 않는 아일리시 노래의 특이점에 빠진 관객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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