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문화부 기자일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이 곧 출간됩니다. 책의 일부를 출간 전 공개합니다. 프롤로그(1)부터 순서대로 읽으면 더 좋습니다. 이 글은 앞글(장르를 깨라, 무한도전 김태호와 크리스토퍼놀란)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무한도전>은 괜히 종영한 게 아닙니다. 김태호 PD는 그 종영 이유에 대해 ‘시장의 변화’(플랫폼의 다양화로 인한 시청률 하락)를 지적했지만, 콘텐츠적인 면에서 <무한도전>이 종영하게 된 이유는 특이성의 상실에 있습니다.
<무한도전>이 장르적 파괴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평균 이하’의 멤버로 팀을 꾸린 것이 주효했습니다. 멤버들은 어떤 장르를 던져줘도 그 장르적 특성에서 멀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들이 ‘평균 이하’를 표방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장르를 던져주든 멤버들의 말과 행동은 일반인에게서 ‘보통’ 기대되는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것이 연출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사실 주말 황금시간대 공중파 예능에 나오는 코미디언들을 평균 이하라고 부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멤버들은 서로의 단점을 적극적으로 깎아내리는 등의 행위로 자신들이 평균 이하임을 적극적으로 표방했고, 제작진의 연출과 편집, 자막 또한 멤버들을 평균 이하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무한도전>의 쇠퇴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멤버들이 매회 더 큰 인기를 얻고 부를 얻으면서 누가 보더라도 ‘평균 이상’이 되어갔기 때문입니다. <무한도전>은 무려 13년 동안 멤버들을 계속해서 평균 이하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멤버들은 이제 누가 봐도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속된 말로, 깔 것은 외모밖에 없었습니다. 멤버들은 건물을 몇 채씩 사들이는 큰 부자가 돼 있었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로 포털의 실검에 오를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이 생겼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집을 샀으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결혼을 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어느 건물을 샀고 몇억을 벌었다더라, 회당 출연료가 얼마라더라, 방송을 몇 개 한다더라 등의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멤버들의 개인사업도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겁 많고 허약했던 유재석이 멋진 잔근육으로 무장한 ‘런닝맨’이 된 것처럼요. 그러니까 그들은 이제 누가 봐도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그건 <무한도전> 제작진의 연출로도, 멤버들의 연기로도 가릴 수 없었습니다.
평균 이상이 하는 도전은 더 이상 장르적 특이점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무한도전>은 무모한 도전에서 그냥 ‘도전’이 되어버렸습니다. 파괴됐던 장르가 복구된 겁니다. 단적인 예로 <무한도전>이 자랑하던 콩트는 더 이상 옛날 같은 재미를 주지 못했는데요. 더 이상 서로 비하할 게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자랑하고 칭찬할 일밖에 남지 않게 됐습니다. ‘못친소’ 특집은 더 이상 멤버들을 평균 이하로 보이게 하기 어려워지자 결코 평균 이상이 되기 어려운 멤버들의 외모를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모 비하를 코미디의 주요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좋은 특집이라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2016년 두 번째 ‘못친소’ 특집이 끝나고 2년 동안 <무한도전>은 그렇다 할 눈에 띄는 특집 없이 ‘노잼’ 소리를 듣다가 막을 내립니다. 더 이상 멤버들이 평균 이하임을 연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무한도전>이 장르적 파괴를 만들기 어렵다는 말과 동일했습니다.
멤버들 자신도 그 사실을 인지했을 겁니다. 아마 더 이상 예전처럼 평균 이하를 내세우며 웃기지 못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더 이상 길바닥 출신이 아니라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게 된 노홍철이 초창기 ‘길바닥 개그’를 계속해서 해낼 수 있었을까요. 눈치 없다고 욕먹고 존재감 없던 정형돈이 돈가스 사업을 해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고서도 계속 눈치 없음을 연기할 수 있었을까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겠다는 부담감, 평균 이하인 척 시청자를 속인다는 자괴감 등이 멤버들을 짓누르지는 않았을까 합니다.
잠깐 옆길로 새서, <무한도전>이 2015년 ‘식스맨’ 특집에서 다른 후보들을 제쳐두고 광희를 새로운 멤버로 받아들인 이유는 뭘까요. 저는 식스맨 특집을 할 당시 ‘내가 무한도전 PD라면 누굴 뽑을까’ 하는 내기에서 이겨서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요. 광희의 쾌활한 성격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제가 광희라고 생각한 진짜 이유는 광희가 후보들 중에서 가장 ‘평균 이하’라는 콘셉트에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몸이 약하다 못해 종잇장처럼 흔들리는 광희는 초창기 평균 이하를 표방한 멤버들과 가장 비슷했으며, 따라서 ‘무모한 도전’을 만들어내기에 가장 적합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후보로 강균성, 최시원, 홍진경, 유병재, 서장훈, 전현무, 장동민이 있었는데요. 이들은 모두 당시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따라서 ‘무모한 도전’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광희 역시 아이돌 출신으로, 엄밀히 말해서 평균 이하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요. 한편, 2019년 시작한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광희는 다시 한번 김태호 PD에게 선택받아 유재석과 호흡을 맞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