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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10. 2021

아무것도 안 해야 더 재미있다 (16)

<PMC: 더 벙커>와 <더 테러 라이브>

*제가 문화부 기자일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이 곧 출간됩니다. 어떤 콘텐츠가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해, 재미를 만드는 핵심 원리를 밝히는 내용을 책에 담았습니다. 책의 일부를 출간 전 공개합니다.



[<PMC: 더 벙커>와 <더 테러 라이브>, 같은 감독 같은 배우, 다른 재미]


PMC: 더 벙커, 더 테러 라이브


 <PMC: 더 벙커>와 <더 테러 라이브>, 한 감독의 두 영화, 주연까지 하정우로 같습니다. 그런데 관객 수는 다섯 배 가까이 차이가 났습니다. 어떤 영화가 더 많은 관객을 유혹했을까요?     


<PMC: 더 벙커>는 일단 화려합니다. 남한과 북한, 미국의 용병들이 땅굴 안에서 총격전을 벌입니다. 이들은 복잡한 국제 관계에 의해 얽혀 있습니다. 액션은 화려함 일색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올 법한 신무기도 등장합니다. 반면, <더 테러 라이브>는 영화가 진행되는 1시간 37분 동안 카메라가 대부분 방송국 안을 비춥니다. 영화는 오로지 앵커 하정우가 폭탄테러범과 통화하는 장면만을 보여줍니다.      


이 두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이러한 설명만으로 <PMC: 더 벙커>가 더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섯 배 많은 관객이 찾은 영화는 <더 테러 라이브>였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이 영화가 특이(特異)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달리 <더 테러 라이브>는 정적인 장면만을 통해 관객의 심장을 뛰게 했습니다.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면 이런 영화가 아주 드물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특히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일반적으로 화려한 액션신과 여러 장소에서 벌어지는 굵직굵직한 시퀀스들로 관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더 테러 라이브>는 방송국 앵커와 테러범의 전화 통화만으로 그러한 당혹감을 일으켰습니다.      


<더 테러 라이브>와 비슷한 영화로는 <폰 부스>(2002), <맨 프럼 어스>(2007), <베리드>(2010), <터널>(2016) 등이 있습니다. 이 영화들에서 카메라는 제한된 공간만을 비췄습니다. <더 테러 라이브>가 방송국이었다면 <폰 부스>는 공중전화 부스였고, <맨 프럼 어스>는 거실, <베리드>는 관, <터널>은 터널이었습니다. 모두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이 한 장소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아주 화려한 영화들 못지않은 당혹감을 이끌어냈습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대사처럼 “그 어려운 걸 해냈”기 때문에 이 ‘특이한’ 영화들에는 호평이 쏟아졌고 더 많은 관객의 시청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PMC: 더 벙커>는 화려했지만 ‘그래서 뭐? 뻔해, 새로울 게 없어’ 같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영화 자체는 화려하지만, 화려한 상업영화는 흔하기 때문입니다. 영화계에 화려함이 흔하다면 화려함은 ‘보통’의 범주에 있습니다. 통상적인 화려함을 넘어선 화려함을 주거나, 그러한 화려함만큼의 당혹감을 일으키는 ‘안’ 화려함을 생각해야 특이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편, 평범한 화려함 속에서 <PMC: 더 벙커>는 그 플롯 역시 클리셰였습니다. 의도치 않게 함께 역경을 이겨내야 했던 적대적인 두 등장인물(남한과 북한)은 역경 속에서 결국 친구가 됩니다. 영화는 결말이 뻔히 보이는 만화영화처럼 예상 가능했습니다.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급격하게 변해도 그 격변이 클리셰라면 특이하지 않습니다.      


영화에는 관객이 한 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을 만큼의 끊임없는 특·전·격이 필요합니다. 하정우라는 대배우를 등장시킨 것은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배우가 좋아도 배우 혼자 오롯이 영화가 지향해야 할 수많은 특·전·격을 짊어질 수는 없습니다. “저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라는 황정민의 말처럼 영화는 혼자만 잘해서는 안 되는 축구 경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메시가 2부 리그 팀에서 뛴다면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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