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일 Feb 11. 2021

‘관종’… 특이해야 산다 (17)

*제가 문화부 기자일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이 곧 출간됩니다. 어떤 콘텐츠가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핵심 원리를 밝히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책의 일부를 출간 전 공개합니다. 프롤로그(1)부터 순서대로 읽으면 더 좋습니다. 



언제부턴가 일반명사로 굳어진 ‘관종’. 이들은 관심에 갈급합니다. 누가 봐도 특이하다 싶은 튀는 행동이나 말을 통해 대중이 자신에게 당혹하고 집중하게 합니다.      


사실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모두 관종의 시기를 거칩니다. 미치 프린스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임상심리학과 교수의 책 『모두가 인기를 원한다』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보상에 반응하는 뇌의 ‘복측 선조체’가 유독 청소년기 사회적인 보상을 경험할 때 활성화됩니다. 따라서 청소년기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과도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SNS만 보더라도 청소년들이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혹은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요. 그러니까 관종은 하나의 특이한 ‘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거치는 시기인 셈입니다.       


인터넷 방송인 중에 30대가 넘어서 방송을 시작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간혹 있긴 하지만, 이들 역시 10대나 20대 방송인들처럼 관종 방송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던가요. 생물학적으로 타인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10대 20대 방송인들과 그렇지 않은 30대 이상의 방송인들은 애초에 ‘관종력’ 자체가 다릅니다.     


그런데 개인방송을 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은 사실 관종이 돼야만 합니다. 인기 아이돌 그룹처럼 대형 기획사가 알아서 그들을 홍보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혈혈단신 자신을 알려야 합니다. 사람들의 당혹과 집중을 끌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TV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BJ들이 시청자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데, 남들과 다른 특이한 행동과 말을 하지 않으면 이 무한경쟁의 플랫폼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방송 플랫폼들은 시청자 수가 많은 순으로 사이트에 노출하는데 평범한 채널들은 아예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기 방송인들이 얼마나 능숙하게 ‘특이’를 만들어내 시청자의 이목을 모으는지 보면 그 천재성과 노력에 감탄이 나옵니다.         


물론, 유튜버 제이플라뮤직(1,690만, 이하 2021년 2월 11일 기준 구독자 수)의 제이플라나 기타연주가 정성하(660만), 뷰티 유튜버 포니 신드롬(583만), 춤을 가르치는 웨이브야(372만)처럼 남들이 가지기 힘든 독보적인 예체능 능력으로 특이점을 만드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같은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예체능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돼있기 때문입니다. 상향 평준화된 능력들을 넘어서서 ‘특이’를 일으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가령 유튜브에는 노래나 악기 연주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상을 올리지만 이 채널들은 대게 구독자 수 100명을 넘기지 못합니다.      


반면, 관종 행위로 ‘특이’를 일으키는 일은 한결 수월합니다. 관종 행위는 상향평준화되지도 않았으며, 관종 행위를 하는 이들 자체가 드뭅니다. 따라서 무엇이든 ‘보통’이라고 판단되는 범위에서 벗어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일단 타인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유튜버 <에나스쿨>이 훌륭한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인터넷 방송인들이 특이(特異)를 만들어내려는 노력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컨대 저는 ‘먹방’이라고 쓰고 ‘과도하게 많이 먹기’라고 읽습니다. 먹방 방송인들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많이 먹는 것입니다. 이들은 평균적인 사람들이 먹는 양보다 몇 배는 더 먹습니다. 이것이 먹방의 가장 큰 특이점입니다. 특별히 먹는 모습이 복스럽거나, 말을 잘한다거나 하는 것은 부차적입니다. 물론, 아주 자극적이거나 기괴한 음식, 굉장히 비싼 음식, 새로 나온 음식을 먹는 것도 먹방의 특이점이 됩니다.      

  

실험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들이 선택하는 주제는 학교 과학 시간에 하는 지루한 과학실험이 아닙니다. 콜라가 가득 담긴 욕조에 멘토스를 집어넣거나, 콘센트에 쇠젓가락을 꽂아 고기를 굽거나, 과자봉지로 배를 만드는 등 보통 사람은 생각조차 안 하는 일들입니다. 이른바 ‘정의 구현’ 유튜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보통 사람은 참고 넘겼을 불편한 문제들을 통쾌하게 해결합니다. 예를 들어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윗집의 윗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사기를 쳐서 돈을 갈취하는 사이비 종교를 찾아가 바른말을 하는 식입니다. 없는 상품을 파는 중고차 딜러에게 장난 전화를 하는 것도 정의 구현의 일종입니다.      


꼭 어떤 ‘행동’만이 관심을 끌지는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트리머 중에 웹툰 작가 이말년이 있습니다. 늘 앉아서 방송하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위 ‘마가 뜨는’ 장면들이 많고, 자극적인 말도 잘 하지 않지만, 그는 트위치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가 찾는 스트리머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콘텐츠 중에는 ‘~월드컵’이라는 콘텐츠가 가장 인기 있는 축에 속합니다. 그저 사진을 보고 아무 말이나 하는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과거 그의 만화는 그 전개가 ‘기승전병(맛)’이어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의 말도 그런 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통 사람은 하지 않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한편, ‘특이’를 만들되 결코 선을 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일부 방송인들은 선을 넘습니다. 패륜적인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관심을 끌려 합니다. 남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거나, 범죄를 묘사하거나, 가짜 뉴스를 진실인 양 떠벌리기도 합니다. 이들은 늘 논란의 중심에 섭니다. 고소·고발당하거나, 계정이 정지당하는 일도 빈번합니다. 이런 방송인 중에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전·격이 불쾌하다면 그것은 재미있을 수 없습니다.        


‘선을 넘는’ 관종이 늘어나는 사회는 왠지 씁쓸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들도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행위를 하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일부 인터넷 방송인들이 선을 넘는 이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처지가 나아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러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래퍼 에미넴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라며 수많은 욕이 담긴 랩을 뱉었던 것처럼요. 우리는 선을 넘는 관종들을 비판함과 동시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 살지 못하고, 가진 자는 별 노력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더욱더 잘 사는 사회 역시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그것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지라도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안 해야 더 재미있다 (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