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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12. 2021

힙한 갬성

*제가 문화부 기자일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이 곧 출간됩니다. 어떤 콘텐츠가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해, 재미를 만드는 핵심 원리를 밝히는 내용을 책에 담았습니다. 책의 일부를 출간 전 공개합니다.



‘힙하다’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어느 순간부터 젊은 세대에서 일상어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보면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 “영어 단어인 힙(hip)에 ‘하다’를 붙인 말로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을 의미한다”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호한 뜻풀이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겁니다.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정민주(배우 이레)는 드라마에서 “(‘힙하다’는) 안 평범해서 좋다는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사전의 뜻풀이보다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함으로부터 멀어지면 그건 ‘힙’입니다. 즉, 힙한 것은 특이(特異)이고 그 힙한 어떤 것은 따라서 사람들을 당혹하고 주목하게 합니다.      


‘갬성’은 힙하다보다 좀 더 모호합니다. 아무리 사전을 찾아도 그 의미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나, 인스타그램에는 ‘갬성’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글만 대략 100만 개가 넘게 있습니다. 이 단어의 사용량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면 2016년 말부터 그 사용량이 마치 지수함수 그래프처럼 급증했습니다.      


이 단어는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이 단어를 검색해 나오는 사진들을 보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진들은 하나같이 작품 사진처럼 분위기가 있고, 느낌 있고, 감성적입니다. ‘갬성 사진’에는 그냥 사진에 없는 공들인 연출이 더해집니다. 특별한 느낌이 나는 필터는 기본,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를 찾고, 사진이 잘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사진이 잘 나오는 렌즈를 장착하고, 조명을 치고, 예쁜 물건들을 배치하고, 마치 모델이나 배우처럼 자세를 잡고 찍은 사진입니다. 즉 갬성은 ‘그냥 사진’이라는 보통의 범주에서 멀어지려 노력한 결과물입니다.      


언젠가부터 갬성 카페, 갬성 식당, 갬성 술집, 갬성 전시회 등 갬성 사진 마케팅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그냥 사진이 습작이라면 갬성 사진은 공들인 작품이기 때문에, 멋진 사진을 위해 대신 공들여 드리는 마케팅인 셈입니다.      


사진기가 흔하지 않던 10년 20년 전과 비교해 평범한 사진은 이제 너무도 흔합니다. 더 이상 이목을 끌지 못합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영화를 찍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해 누구나 ‘보통’ 사진은 찍을 수 있기에 사람들은 이제 공들인 연출로 갬성 사진을 찍는 겁니다. 이렇게 힙과 갬성의 근원에는 ‘특이’를 좇는 욕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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