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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14. 2021

아재개그 넘버 원 BJ ‘임다’와 펀치라인 (20)

지금까지 재미를 만드는 첫 번째 원리인 '특이'를 다뤘다면, 이제부터 올릴 글들에서는 두 번째 원리인 '전의'를 설명하겠습니다. 아재개그와 힙합 펀치라인에는 전의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곧 출간되는 책 '재미의 발견'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어떤 단어의 의미를 바꾼다는 것은 곧 그 단어에 가진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질문: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은?”

답: “소”(小)

질문: “소고기가 실수를 하면?”

답: “미스테이크”

질문: “펜이 엄청 많으면?”

답: “싸인펜”

질문: “달이 지하철역에 있으면?”

답: “달력”

질문: “아빠가 빛이 나면?”

답: “광부”

질문: “아빠가 학습을 하면?”

답: “공부”

질문: “너, 일어나를 세 글자로 하면?”

답: “유인나” 


아프리카TV BJ ‘임다’의 방송에 나온 아재개그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아재개그는 “아저씨를 의미하는 ‘아재’와 ‘개그’가 합쳐진 말로, 썰렁하고 재미없는 말장난, 유행에 뒤처진 개그를 의미하는 데에서 생겨난 말”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재미없는’이라고 하기엔, 아재개그는 최근 몇 년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왜 갑자기 아재개그가 번성할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재개그는 딱히 새롭게 부상하는 유머도 아닙니다. 인기 코미디언들을 떠올려보면 아재개그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은 없습니다. 아재개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유행이었고, 변한 것은 방송 환경입니다. 오늘날 아프리카TV나 유튜브 등 플랫폼의 발달로 개인이 채널을 만들기 쉬워지면서 아재개그 역시 번성하는 것일 뿐이지요.      


아재개그는 줄곧 남에게 재미를 주려는 이들의 효과적인 도구였습니다. 아재개그에는 뜻밖의 의미 변화를 만들어 시청자를 당혹하고 집중하게 하는 전의(轉意 생각이 바뀜, 의미가 바뀜)의 원리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아재개그 예시에서 질문을 먼저 보는 대신 답을 먼저 보면 그 원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단, 맨 마지막 아재개그에서 ‘유인나’라는 답을 먼저 보면 연예인 유인나의 모습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이제 질문을 봅시다 “‘너, 일어나’를 세 글자로 하면?” 이 질문은 유인나라는 단어의 의미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즉, 연예인 유인나가 ‘유(You, 너) 인나(일어나)’로 변하는 거죠.       


‘전의가 있다’고 표현하는 대신 ‘전의의 원리가 담겨 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아재개그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줄곧 해온 말장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단어의 의미가 어떤 식으로 변할지 대부분 잘 알고 있기에 웬만한 아재개그로는 큰 당혹과 집중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한때 당혹과 집중을 일으켰던 플롯이 비슷비슷한 플롯의 콘텐츠들을 많이 보게 되면 클리셰라고 여겨지는 것과 맥락이 같습니다. 어쨌든 아재개그는 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전의의 원리가 담겨있기에 어느 정도 청중을 당황하게 하고, 집중하게 합니다. 아재개그를 잘 사용하는 사람들이 인기 있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주변인을 당황하게 하고 집중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한편, 힙합 래퍼들의 ‘펀치라인’의 원리도 아재개그와 비슷합니다. 펀치라인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힙합에서 동음이의어를 통한 중의적 표현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가사”이며 그 효과는 “펀치를 맞은 듯한 느낌”입니다. 즉, 그 원리는 전의이며, 그 효과는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 즉, 당혹과 집중이지요. 예를 들어 위의 아재개그 중 하나를 이용해서 썰렁한 펀치라인을 작성해본다면 “우리 아빠는 광부, 내 앞에선 늘 빛이나” 정도가 되겠지요. ‘광부’는 광산에서 광물을 채굴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光(빛날 광)에 夫(지아비 부)를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썰렁’도 당혹감의 일종입니다.       


아재개그와 펀치라인. 무언가가 유행이라면, 그 유행은 분명 대중을 당혹하고 집중하게 했을 겁니다. 무언가가 당신을 당혹하고 집중하게 한다면, 그곳에는 필시 특·전·격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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