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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23. 2021

코미디 대부의 영업비밀

책 '재미의 발견' 예약 판매 중 선공개 (25)

2018년 심형래 감독을 인터뷰했습니다. 뜻밖에 만난 거물에 저는 당황하며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비결, 재미를 만드는 비결이 있다면 뭡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심 감독은 망설이다가 영업비밀이라도 되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한 단어를 내뱉었습니다. 그것은 “기대 외 웃음”이었습니다. 그는 “일상적으로 기대되는 것들, 그 예상을 뒤엎는 행동을 함으로써 웃기는 거죠. 예를 들어서 길을 가다가 갑자기 벽에 손을 짚으면, 다른 사람들이 ‘왜 벽에 손을 짚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때 벽을 짚은 사람은 ‘벽이 무너질까 봐’라고 예상치 못한 발언을 하는 거예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야, 그냥 가 인마!’하고 그 사람을 끌고 갈 때 정말 벽이 무너진다면, 그때 더 큰 웃음이 터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어린 시절 가족들과 TV 앞에 앉아서 보던 영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이 “송영구”라며 출석을 부르자 “영구 없다~!”라며 얼굴을 내미는, 잘 걸어가다가 갑자기 벽에 부딪히거나 앞 사람을 때리려다가 뒷사람을 후려치는. 그런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행위에서 벗어난 행위들. 기대 역시 생각의 일종이라면, ‘기대 외 웃음’은 곧 그 생각을 바꾸는 전의(轉意)이기에 당혹과 집중을 일으킵니다.       


한편, 심 감독은 슬랩스틱의 대가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말이 아닌 몸으로 웃음을 끌어내는 코미디’를 뜻하는데요. 슬랩스틱을 구사하는 인물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큰 폭으로 다르게 행동합니다. 예를 들어 인사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45도 정도 숙인다면 슬랩스틱을 하는 사람은 120도를 숙이다가 넘어지는 거죠. 역시 ‘기대 외 웃음’입니다.      


슬랩스틱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코미디언 중에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대에서 벗어난 행동을 연출하며 ‘몸개그’라는 단어를 유행시켰습니다. 의자에 잘 앉아 있다가도 넘어지거나 날아오는 셔틀콕을 맨손으로 잡는 등 하늘이 도운 슬랩스틱도 보여줬습니다.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인터넷 방송에서는 슬랩스틱이 일반적인 기대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가령 아프리카TV BJ 철구는 먹방을 하며 ‘토컨’이라는 슬랩스틱을 만들었습니다. 토컨은 구토를 컨트롤(조절)한다는 뜻인데요. 그가 토컨을 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음식을 먹고 게워내고 다시 먹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는 과장된 행동이었지요. 철구가 아프리카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수년간 계속해서 ‘토컨’급의 ‘기대 외 웃음’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많은 인터넷 방송인들이 철구와 마찬가지로 ‘토컨’을 할 뿐 아니라 점점 더 자극적인 슬랩스틱을 하려 합니다. 그러나 결코 선을 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재미를 주고자 한 어떤 행위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고통을 준다면 윤리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특·전·격이 있더라도 그것이 불쾌한 감정을 유발한다면 재미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의 일부입니다. '재미의 발견'은 내달 26일 정식 출간되며, 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예약 판매 중입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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