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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24. 2021

“끊임없이 의심하라” 미스터리 스릴러의 ‘전의’

'재미의 발견' 예약 판매 중 선공개 (26)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하나요? 어두침침한 배경에서 범죄가 일어나고, 범인이 누군지, 그리고 어째서 범죄를 저지르는지를 계속 쫓아다니는.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불리는 콘텐츠들이 워낙 각양각색이기에 무엇이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는 한 가지 큰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스터리 스릴러는 범인이 누군지, 그리고 도대체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를 찾는 장르이며, 이 두 가지를 알아야만 끝나는 장르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그래서 미스터리 스릴러를 하나의 서사 방법(이야기를 특정 방식 혹은 순서로 구성하는 방법)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스터리 스릴러를 서사 방법의 관점에서 볼 때 자주 쓰이는 표현이 ‘후더닛’(영어로 Who has done it? 즉, 누가 저질렀느냐?)입니다.      


마피아 게임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후더닛은 ‘범인 찾기’라는 큰 줄기에서 비롯한 연속적인 의심과 그러한 의심의 해소를 만드는 장르입니다. 즉, 시청자의 끊임없는 생각의 변화(전의)를 이끌어내는 장르입니다. 후더닛 콘텐츠는 계속해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을 바꿔가며 시청자를 당혹과 집중 상태로 몰아갑니다.      


좋은 미스터리 스릴러는 극이 끝날 때까지 시청자가 의심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최근에 재밌게 봤던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나 영화를 떠올려보길 권합니다. 극 초반에 ‘범인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배우가 후반부까지 범인일 것이라고 느껴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아마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콘텐츠는 재미없었을 것입니다. 좋은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범인이라고 의심되는 인물은 끊임없이 바뀝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시청자에게는 당혹과 집중이 일어납니다.      


처음에 살인범으로 보였던 A가 이제는 살인범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평범해 보였던 B가 새롭게 의심을 사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조승우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검사로, 배두나가 열혈 형사로 나오는 드라마 <비밀의 숲>의 초반부에서 시청자는 범인을 조승우라고 의심합니다. 조승우가 감정이 없으니, 검사인 동시에 살인마일 가능성도 있다고 의심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감독이 초반에 조승우를 ‘범인스럽게’ 연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드라마가 전개될수록 시청자는 조승우에 대한 의심이 풀리고, 이제 비열한 검사 역을 맡은 이준혁으로 의심의 표적을 옮겨갑니다. 감독이 이준혁이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야비함을 부각하는 연출로 시청자의 의심을 사기 때문입니다. 이준혁이 범인이라는 시청자의 예상이 굳어져 갈 때쯤 다음으로 의심을 사는 이는 신혜선입니다. 신혜선이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하는 장면 위로 의심스러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깔립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음은 유재명, 그다음은 이규형, 다시 유재명으로… 의심의 표적이 수시로 바뀝니다. 극 중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돌아가며 시청자의 의심을 삽니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등장인물들조차 말이지요. 이러한 전의의 연속에 시청자는 계속 당혹하고 집중하며 채널을 돌리지 못합니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계가 암흑기를 맞은 2020년을 제외하고 2018, 2019년을 돌아보면, 추천할만한 미스터리 스릴러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폴 페이그 감독의 <부탁 하나만 들어줘>가 있습니다. <버닝>은 그저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규정해버리기에는 아까운 예술적인 영화이기에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부탁 하나만 들어줘>를 2018, 2019년 최고의 미스터리 스릴러로 꼽겠습니다.      


이 영화는 계속해서 관객을 속입니다. 등장인물 세 명이 폭탄을 돌리듯 번갈아 가며 완벽하게 범인일 것이라 의심받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의심과 의심 해소의 반복이 전부가 아닙니다. 영화는 마치 세련된 현대미술관을 거니는 듯한 감각의 미장센을 쉬지 않고 펼쳐놓습니다. ‘스릴러도 밝고 산뜻하고 세련되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려준 ‘특이’한 작품입니다. 관객은 완벽한 후더닛에 당혹하고 집중했으며 세련된 미장센에 감탄했습니다.       


한편, 관객에게 스릴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인 스릴러는 크게 미스터리 스릴러와 서스펜스 스릴러로 구분됩니다. 후더닛 구조를 갖춘 미스터리 스릴러와 달리, 서스펜스 스릴러는 범인이 누구인지 관객에게 미리 보여줍니다. 가령 영화 <추격자>의 하정우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영화 초반부에 관객에게 공개됩니다. 이렇게 범인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것의 효과는 ‘불안정성’을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추후 설명할 특·전·격의 효과를 증폭하는 요소입니다.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의 일부입니다. '재미의 발견'은 내달 26일 정식 출간되며, 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예약 판매 중입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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