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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Apr 16. 2021

차(茶)를 ‘읽다’… ‘대만차의 이해’ 리뷰

얼마 전 기자 시절 수화기 너머로 자주 소통하던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구 팀장님을 만나 닭갈비를 먹었다. 


‘재미의 발견’을 드리고, 얼마 전 출간된 ‘대만차의 이해’를 받았다. 두 책 모두 코로나19라는 역경을 뚫고 만났다.  

대만차 전문가 왕명상이 대만의 우롱차, 홍차, 녹차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이 담긴 책으로, 정승호 한국티협회 회장(티소믈리에연구원장)이 감수하고, 구 팀장이 제작했다. 티소믈리에연구원의 책들은 대부분 이렇게 차에 정통한 저자의 글이 정승호, 구 팀장의 ‘장인정신’을 거쳐서 세상에 나온다. 출판은 돈이 안 되고 코로나로 인해 출판사를 접을까 몇 번 고민했을 정도로 더욱 힘들지만 매번 책이 나온다. 그래서 티소믈리에연구원의 책에는 늘 좋은 책을 내려는 고집이 서려있다. 


과거 티소믈리에연구원으로부터 책을 받을 때마다 나는 보통 ‘정보’ 위주로 기사를 쓰곤 했다. 가령 ‘이 책에는 차를 어떻게 고르는지, 우리는지, 차의 종류는 무엇이 있는지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는 식이었다. 당시 나는 일에 쫓겨 차에 관한 책은 정독하려 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모든 책이 정보 전달 목적의 실용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용서가 맞기는 하다. 그러나 책 한 권에 집중할 시간을 갖게 되니 차에 관한 책에는 단순한 정보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특히 나처럼 보통 ‘차=싸구려 티백 우린 물’인, 애써서 좋은 차를 구해 맛보지 않는 이에게는 말이다. 


둥굴레차 티백 우린 물을 마시며 책을 숙독하니 뭐랄까, 신기하게도 한 번 마셔본 적이 없는 대만차의 맛과 향이 났다. 그렇다. 이 책은 느껴본 적 없는 대만차의 그것을 상상하게 했다. 소설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시공간을 떠올리게 하듯이 말이다. 


책은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다. 예컨대 녹찻잎에서는 신선한 향기인 초본향이 난다. 녹차가 부분 산화 작용으로 변화하면 우롱차라고 부르는데 산화 정도에 따라 맑은 꽃향 혹은 숙성된 꽃향이 나고, 청과류 및 농익은 과일류의 향인 과실향이 난다. 녹찻잎이 완전히 산화된 홍차류에서는 ‘산화향’과 함께 ‘향신료향’이 진하게 풀린다. 차의 쓴맛, 떫은 맛, 단맛에도 정도와 깊이, 그리고 그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있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 나는 그 맛과 향을 느끼게 됐다. 이름을 불러주면 비로소 그것이 꽃이 되듯 말이다.  


비단 차가 물에 우러나는 순간만이 아니라, 흙에서 차나무가 자라고 ‘차청’이라 불리는 신선한 찻잎이 채엽되고, 고유한 과정(위조, 낭청, 유념, 정치, 살청 등의)을 통해 각기 다른 맛과 향이 나는 차로 건조되기까지.  

한 잔의 찻잔에 든 찻물의 색과 향에 차나무, 테루아, 장인정신, 그리고 고유의 문화 양식이 섞이는 그 모든 ‘차의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좋은 차를 마시는 기분이었는데, 덤으로 내 앞에는 아는 게 많은 재미난 친구도 하나 있는 듯했다. 그 친구는 주저리주저리 흥미로운 상식을 풀어냈다. 예컨대 와인이 달콤한 동시에 시고 떫은 중후한 바디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포도나무가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곤충이 좋아하지 않는 타닌 성분을 포도 껍질에 담아내기 때문이다. 즉 와인의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깊은 맛은 포도나무가 역경을 견뎌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포도나무와 차나무가 비슷한 식물이란다. 차나무의 1차 대사산물인 테아닌과 당류에서는 단맛이 나고 팩틴 성분은 목넘김을 부드럽게 한다. 반대로 곤충으로부터 잎을 보호하기 위해 내놓는 2차 대사산물인 ‘티 폴리페놀류’는 떫은맛을 내고 테인은 쓴맛을 낸다. 그 친구는 와인도, 차도, 인생도, 마냥 달고 부드럽기만  해서는 깊어질 수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차는 마실 수도 있지만, 읽을 수도 있다. 차를 좋아한다면, 혹은 나처럼 싸구려 티백을 우려내며 '차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면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의 책들을 추천한다. 물론, '재미의 발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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