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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Apr 19. 2024

내 남자의 불륜

매일 한 시간, 취미로 쓰는 초단편소설

  "세상에 무슨 저런 사람들이 있어, 결혼하고 20년이 됐는데도 아직 저렇다고? 어이, 잘생긴 영업맨, 저거 다 영업이지?" 

 

  TV에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대부분 아는 사랑꾼 커플이 닭살 돋는 애정행각을 하고 있었다.

  정민재는 소파에 누워 겨드랑이를 긁고 냄새를 맡는 아내 홍유리를 보다가 흐린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글쎄, 저런 사랑도 가능하지 않을까?"           


  "에이, 어떻게 가능해. 방송에선 사랑도 다 비즈니스지." 


  아내의 발가락에 머리를 맞은 정민재는 생각했다.


  '너하곤 불가능하겠지.' 


  이제 어느덧 결혼 10년 차, 시간이 흐를수록 홍유리는 그가 알던 조신하고 다정한 모습에서 멀어져갔다.


  '이건 사기다. 사기 결혼이다.'     


  "또 담배 피우러 가? 그놈의 담배 좀 그만 피워!" 


  홍유리의 구박을 뒤로 한 정민재는 집에서 나와 차 문을 열었다.


  차 시트 밑 깊숙한 곳에는 그가 내연녀 고미호에게 연락할 때만 사용하는 세컨 폰이 숨겨져 있었다.

  정민재는 폰의 전원을 켜고 메시지를 작성했다. 


  [방금 자기도 그 프로 봤어? 그 커플들 꼭 우리 같더라] 


  정민재가 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내연녀 고미호에게서 바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헐 대박, 지금 보고 있어? 대박이야] 


  [왜, 자기도 그런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아니 그게 아니라, 불륜이야! 불륜!] 


  고미호와 연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정민재는 턱이 떨어지다시피 입을 벌리고 있는 아내를 봤다.   

  "여보, 방금" 


  방송국이 해킹되기라도 했는지, 사랑꾼 커플의 닭살 돋는 애정행각을 끊고, 갑자기 그 영상이 등장했다고 했다.


  커플의 남편이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어떤 여자와 대화하는 영상이었다. 


  "내 와이프는 이제 나를 발로 막 밟아대. 밥 먹으면서 방구는 또 어떻게 그렇게 크게 뀌는지." 


  "그렇게 안 봤는데, TV에 나온 건 다 연기였어? 남편한테 어떻게 그래?" 


  둘은 아내를 한참 동안 씹더니 만취해 서로 껴안고 호텔로 들어갔다. 


  "우리 그때 참 좋았는데" 


  호텔 안 정사 장면도 전부 방영됐다.


  가족 예능 촬영 시간에 몰래 나눈 카톡 화면까지, 마치 바로 옆에서 남자의 스마트폰을 찍은 것처럼 공개됐다.


  카메라 감독이 이 영상을 평가한다면 아마 불륜을 가장 잘 보여주는 각도에서 촬영됐다고 평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불륜 장면만, 그 장면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식으로 편집된 영상이었다.  


  방송국에서는 모든 전파 송출을 막았지만, 미스터리하게도 사랑꾼 커플의 남편과 그의 내연녀가 저지른 불륜 전부가 계속해서 전파를 탔다.

  불륜 영상은 꼬박 일주일간 계속됐다.


  한데, 남편을 욕하는 여론이 반전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2일 오후 9시 10분, 49세 진주아의 영상이 공개됩니다.] 


  남편이 가장 최근에 저지른 불륜으로 추정되는 영상의 끝에, 이와 같은 예고 문구가 나왔고, 정확히 3일 뒤, 아내의 불륜 영상이 뉴스 화면을 끊고 등장했다. 예고한 대로였다.


  5년 전 필드에서 골프 강사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영상은 시작됐다. 남편이 골프채를 휘두를 때 둘은 남편 몰래 몸을 만지며 입을 맞췄다. 




  불행하게도, 세상을 놀라게 한 이 쇼킹한 사건은 이 부부만을 타깃으로 하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연예인, 일반인을 가리지 않았다.


  매번 주인공이 바뀌는 불륜 영상들은 마치 게릴라전이라도 하듯,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각종 방송사,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거의 모든 채널을 점령했다. 


  "보통 배우자를 욕하면서 불륜이 시작되죠. 배우자가 가지지 못한 점을 계속 추구하게 되고, 배우자와 반대 성향의 사람과 외도를 하게 되는데요. 굉장히 현명하지 못한 거죠. 사실 그 사람도 백 가지 단점이 있거든요. 보통 이런 사람들이 아주 철면피고, 공감 능력이 없고, 나르시즘이..."
   

  "네, 그렇죠. 그렇다면 불륜이 시작되는 장소는 주로 어디인가요?" 

 

 "보통 무언가를 공유하는 장소, 가령 추억을 공유하는 동창회나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에서..." 


  이렇게 말하던 이혼 전문 변호사의 얼굴 위로는 이 변호사가 호스트바에서 눈을 뒤집고 젊은 남자들의 가슴을 만지는 외도 장면이 전파를 탔다.     


  "아마도 딥페이크 같습니다."라는 말로 얼버무리던 변호사는 방송이 끝나고 잠적했다.  


  영상은 매일 수십 개씩 쏟아졌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불륜 영상들이 찍혔고, 도대체 어떤 원리로 방영이 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영상들은 편집되고 재생산돼 하나같이 유튜브 실시간 급상승 영상이 됐다.


  깻잎을 떼어주는 것 같은 사소해 보이는 행위도 등장했기에 '새우 논쟁'이나 '깻잎 논쟁' 같은 유명한 논쟁들은 종결됐다.

  이혼하고 헤어지는 커플이 속출했다.

  어떻게든 영상의 송출을 막아보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불륜을 저질렀다고 오해받았다. 

  "불륜 공화국!" 

  간통법 부활을 외치는 시위가 일었지만, 국회의원 다수가 외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그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심지어는 오히려 불륜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본능이라는 말도 나왔다. 

 



  "데오드란트에, 향수에, 새 속옷도 사고... 이거 다 외도 전조라는데." 


  정민재는 아내가 아침에 혼자 중얼거리던 말을 떠올렸다. 곰처럼 둔한 아내가, 그 앞에서 늘 웃기만 하던 아내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정민재는 아내가 그를 의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방송에서 온통 불륜 이야기였으니 그럴만했다. 


  "외도 사례가 가장 많은 직업군 중에는 영업사원이 있습니다. 직업 특성상 거래처 사람의 마음을 훔쳐야 하기 때문에..." 


  아내는 언젠가부터 TV를 잘 틀지 않았다. 정민재는 아내가 TV를 볼라치면 전전긍긍하다 밖으로 나와버렸다.


  요즘 그는 자신의 벌거벗은 몸이 적나라하게 방영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장면이 나오는 악몽을 자주 꿨다.

  악몽은 늘 아내의 이혼 통보로 정점을 찍고 정민재는 식은땀을 흘리며 깼다.   


  불륜 사실이 들통나면 창피를 당하고 온갖 욕을 먹을 건 둘째 치고, 아내가 바로 이혼하자고 할 게 뻔했다.

  가슴이 뛰는 사랑은 식은 지 오래지만, 좀 변하긴 했지만, 막상 이혼을 생각하니 정민재는 홍유리가 너무 아까웠다.


  홍유리는 그가 누구보다도 공을 들여 쟁취한 여자였다. 숱한 연애 경험을 통해 가장 좋은 여자를 골랐기에, 그동안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이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민재는 먹다 남은 된장국, 반찬들을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아까운 건 음식 솜씨만이 아니었다. 홍유리는 정민재보다 돈을 잘 벌면서도 언제나 깔끔하게 집을 청소했고, 집안일에는 손도 못 대게 했다. 밖에서는 예쁘다는 소릴 자주 들을 정도로 외모도 훌륭했다. 처가도 잘 살아서 목돈이 필요할 땐 빌려 쓰곤 했었다.

  아내의 장점은 단점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무엇보다 둘 사이에는 이제 갓 두 살이 된 아이도 있었다.   




  포장마차,

  만취한 정민재가 대학 동창 박한정 앞에서 한탄했다. 


  "용서해달라면 봐줄까? 아 이제 진짜 어떡하지?" 


  "이거 이거 학교 다닐 때부터 월화수목금토일 요일별로 여자를 바꿔 만나고 다니더니...  나이 먹고 결혼하고도 그랬냐? 내 언젠가 크게 데일 줄 알았다. 그동안 안 걸리고 산 게 다행이지." 


  "야 이것도 업무의 일환이야... 아 영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이 쓰레기 새끼, 그래서 실적이 그렇게 좋았냐? 그래서 여자 과장 있는 거래처만 다녔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정민재가 울먹였다.


  "하... 된장찌개가 너무 맛있어... 우리 애도 있는데..." 


  "야 이 새끼야 어차피 영상 뜨면 제수씨가 이혼하자고 할 게 뻔한데... 무조건 영상 뜨기 전에 이혼해야 돼, 이혼하면 영상 안 뜬다는 말이 있어. 더 이상 불륜이 아니니까." 


  "하... 그게 진짤까? 아 이혼하기 싫다고오..." 


  "요즘 영상 안 올라왔는데도 이혼하는 부부들 늘고 있는 거 보면 모르겠냐? 영상 뜨고 니 몸 전 국민이 다 보고 개쪽팔릴래?" 


  "..." 


  정민재는 박한정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변에서도 갑자기 별 이유 없이 이혼한 부부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하기사, 넌 잘생기고 몸도 좋아서 거시기 공개돼도 쪽팔리지는 않으려나? 어? 자신있냐?" 


  박한정이 낄낄거렸다.  


  "...이 새끼가 니 일 아니라고 말 쉽게 하네." 


  정민재가 발끈하자 박한정이 장난스럽게 몸을 뒤로 뺐다. 정민재의 얼굴에 피가 쏠려 붉어져 있었다. 


  "야 근데, 남편 뺏는 여자들은 정작 남자가 이혼하면 마음 식는다더라. 어떡하냐, 자식도 아내도 처가 재산도, 불륜녀도 다 잃게 생겼네?" 


  이죽거리는 박한정에 정민재가 정색했다. 


  "야, 내가 병신 같이 당하고 사는 거 봤냐? 나 정민재야. 정민재라고오!" 


  "그래 정민재지, 불.륜.남. 정.민.재." 




  모텔방,

  내연녀는 침대에 누워서 담배 연기를 뿜는 정민재의 슬픈 얼굴을 쓰다듬으며 애틋하게 바라봤다.


  "잘생겼어." 


  정민재는 괜히 담뱃갑을 이리저리 돌리며 만져댔다. 


  "나 이혼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 말에 내연녀가 침대에서 번쩍 상체를 일으켜 정민재를 쏘아봤다. 


  "그럼 안 할 거였어?" 


  "..." 


  "무조건 이혼해야지! 내가 불륜녀가 되는데! 나는 당연히 이혼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내 벗은 몸이 방송 타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 됐고! 영상 나오면 우리 관계도 끝이고, 나도 회사 못 다니는 거야!" 


  "아, 아니 회사는 왜?" 


  "당신 같은 남자는 괜찮겠지, 나는 상간녀 낙인찍히고 쪽팔려서 못 다닌다고!" 


  정민재는 몸부림을 치며 분노하는 내연녀를 끌어안았다. 


  "당, 당연히 이혼할 거였지... 내, 내 말은... 그러니까... 내 말은..." 


  "내 말은 뭐?" 


  "아니이... 이혼해도 이전처럼 나를 사랑해 줄 거냐, 그 말이었지..."   


  여자가 한동안 잠잠하더니, 정민재의 가슴을 살짝 밀어내고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연하지... 이렇게 잘생겼는데..." 


  둘은 키스를 하고 뜨거운 정사에 돌입했다. 


  사십 분이 넘는 정사를 끝낸 정민재가 말했다. 


  "자기가 마지막이야." 


  "응?" 


  여자의 말에 정민재가 이마에 키스했다. 


  "니가 내 끝사랑이라고." 


 



  내연녀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민재는 며칠째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다시 아내에게 할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화는 많이 내겠지만, 영업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무릎꿇고 빌면... 용서해 주지 않을까... 자식도 있는데... 요즘 불륜은 흠도 아닌데...' 


  아내가 밥상머리에서 방귀를 뿡 뀌는 바람에 생각에 잠겨 있던 정민재는 화들짝 놀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정민재에게 아내가 말했다. 


  "요즘 불륜 영상 뜨면 이혼해도 한 푼도 못 받는데. 여론이 그렇게 됐다네?" 


  "그, 그래?" 


  "난 당신 믿어... 당신 불륜하면 알지? 바로 이혼인 거?"   


  아내는 다시 방귀를 분출했다. 한데, 이번에 정민재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내의 등 뒤로 켜진 TV에서 불륜 영상이 끊기고 예고 문자가 떴기 때문이다.  


  [4일 오후 9시 30분, 39세 정민재의 영상이 공개됩니다.]  


  막상 자신의 차례가 닥치니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풀어졌다. 벗은 몸과 성기가 덜렁거리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낄낄거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내가 이혼하자고 외치는 모습도.  


  동공이 흔들리는 정민재를 보고, 홍유리가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정민재가 홍유리를 멈춰 세웠다. 


  "야 홍유리!" 


  홍유리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낸 정민재를 쳐다봤다. 


  "우, 우리 이혼해!" 


  홍유리는 놀라서 벙찐 얼굴이 됐다.   


  "뭐?" 


  정민재가 빠르게 말을 뱉었다. 


  "난 니가 밥상머리에서 방구 끼는 것도 싫고, 시도 때도 없이 트름하는 것도 싫고, 겨드랑이털 안 깎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 


  "뭐, 뭐?" 


  "이, 이건 사기 결혼이야, 내가 알던 홍유리는 이제 없는 거 같아. 입, 입냄새도 심하고, 발냄새도 나고, 나, 난 이제 너하고 모, 못 살아, 더 이상." 


  홍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민재를 쳐다봤다. 


  "너, 너, 당신, 설마...!" 


  등 뒤 TV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홍유리를 막아보려다가 정민재는 식탁 위에 고꾸라졌다. 


  "아, 안돼..." 

 



  정민재는 잠긴 대문 앞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빌어댔다.

  닫힌 철문 너머로 노발대발하는 아내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영상 공개될 때까지 이혼은 절대 안 해! 당신한테는 한 푼도 없어! 평생 재준이도 못 보고 살 줄 알아!" 


  "미안해... 유리야... 미안해..." 


  "소용없어!" 


  "내, 내가... 그 여자들하고... 다 정리할게... 정말 미안해... 정말..."


  정민재의 말을 끊고 집 문이 발칵 열렸다. 홍유리가 열이 뻗친 표정으로 정민재를 쏘아봤다. 


  "그... 여자들?" 


  "아, 아니, 아니, 그 여자, 그 여자아!" 


  "몇 명... 인데?" 


  "아, 아니이... 영업상... 그게... 영업상... 비즈니스..." 


  "아 말하라고오!" 


  "그, 그게에..." 


  "몇 명이냐고오!"  


  "네... 네명..." 


 



  "쟤가 내 친구지만 너무 순진했지이! 아 결국 불륜 영상도 공개되고 내연녀들도 싹 정리돼 버렸네? 이제 곧 이혼도 할 걸?" 


  호프집, 박한정은 직장 동료들과 낄낄댔다. TV에는 정민재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쟤가 내 친구라고, 친구, 저번에 말한, 그, 잘생긴. 저 자식 별명이 옥토퍼스였다고, 옥토퍼스. 매일 여자를 바꿔서 만난다고. 생일에 선물을 여덟 개를 받았잖아..." 


  친구라는 말에 직장 동료들이 놀랐다. 특히 여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정민재는 숱한 불륜남들 중에서도 유독 화제가 되고 있었다.

  영상에 등장하는 내연녀들이 네 명이나 됐고, 무엇보다 그가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그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몇 주째 머무르고 있었다. 


  박한정은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며 정민재가 창피당하는 모습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지금까지 줄곧 정민재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학창 시절 그는 정민재보다 공부를 잘했지만, 외모 때문에 정민재보다 연애도, 취업도, 결혼도 못했었다.

  그가 제일 부러운 건 잘 사는 정민재의 처가였다. 그놈의 외모 때문에 박한정은 모든 것이 정민재 아래였다.

  그랬던 그가 드디어 결국 정민재보다 위에 서게 된 것이다. 


  "으하핫, 오늘 저녁은 제가 쏩니다!" 


  4주째 쉬지 않고 이어진 '정민재 영상'은 어느덧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불륜한 날짜가 최근으로 추정됐다. 


  한 여자 동료가 박한정에게 물었다. 


  "저건 어디 거예요?" 


  "뭐?" 


  "저 면도기요." 


  "아, 저거? 저거... 야 저 새끼 돈 없다고 나한테 밥 얻어먹는 놈이 꼴에 비싼 거 썼네.... 헤르비뇽 꺼잖아. 명품 면도기." 


  "아, 체크." 


  "왜?" 


  "아니, 남자 친구 사주려구요." 


  다른 여자 동료가 맞장구를 쳤다. 


  "저도 얼마 전에 정민재가 입은 구찌 티셔츠 사줬는데 잘 어울리더라구요." 


  남자 동료가 끼어들었다. 


  "나도 얼마 전에 정민재가 쓰는 스킨 샀잖아. 피부 좀 좋아지려나?" 


  박한정의 눈에 정민재가 입은 속옷과 시계가 들어왔다. 


  "쟤는 할 때도 메리야쓰 입고 시계도 차고 하네..." 


  '그러고 보니.'


  박한정은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그러고 보니. 


  정민재가 입고 사용한 모든 것들이 새것이었고, 화면에는 브랜드 로고가 보였다. 마치 PPL 광고라도 하는 것처럼. 


  영상에서는 사십 분이 넘는 정사를 마친 정민재가 숨을 헐떡이며 내연녀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자기가 마지막이야." 


  "응?" 


  정민재가 여자의 이마에 키스했다. 


  "니가 내 끝사랑이라고."  


  이후 정민재는 초코바 하나를 까더니, 


  "정력을 썼을 땐 핫브레이크만한 게 없더라고."라고 말하며 초코바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길고 길었던 정민재의 불륜 영상은 그가 핫브레이크를 오물거리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 


  박한정은 정민재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물었다. 


  "야 너 설마..." 


  "응, 뭐가?" 


  "...너 그럼 이혼은?" 


  정민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잘 풀어봐야지... 나 이제 부자야." 


 전화를 끊는 박한정의 손이 떨렸다. 그날 포장마차에서 정민재가 한 말이 귓가에 울렸다. 


  "내가 병신 같이 당하고 사는 거 봤냐! 나 정민재야! 정민재라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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