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이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어느 후보를 선호하는지는 알 수 없다. 내부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지도 불분명하다. 다만, 최근 워싱턴과 베이징의 전문가들은 중국이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원하고 있다는 분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쉬운 상대'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트럼프는 '거래 가능한 사람'이라는 게 중국의 평가다. 그의 관심사는 중국이 농산물과 에너지 등 미국산 상품을 얼마나 사는지에 집중돼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관심 가진 홍콩과 대만 문제 등 정치·인권·지정학적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하다. 트럼프는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신장자치구 위구르족 인권 탄압 등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제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내지 않는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016873?lfrom=kakao
2.
다. MBC는 KBSㆍEBS에만 돌아가는 수신료를 나눠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고, KBS는 40년째 2,500원에 묶여 있는 수신료 '현실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재 가구당 2,500원씩 걷는 수신료는 공영방송인 KBS와 EBS가 97대 3의 비율로 나눠 가진다. MBC가 수신료를 배분받으려면 공영방송이 돼야 한다. 당초 민영방송으로 출발한 MBC는 언론통폐합 과정을 겪으면서 공익재단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지분 70%를 지녔지만 재원 대부분은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준공영'이라는 애매한 정체성을 갖게 됐다.
MBC 측 논리는 공직선거법이나 정당법, 매체 균형 발전을 위한 광고 결합판매제도 등에서는 공영방송으로 묶여 규제받는 반면, 공적 지원에서는 민영으로 분류돼 배제되는 차별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KBS는 수신료, 방송발전기금, 국고 보조 등으로 2018년 한 해에만 6,726억원을 지원받았지만 MBC에 대한 지원은 전무했다는 것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도 "현재의 방만한 구조를 유지한 채 수신료를 나눠 달라, 현실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져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며 "경쟁력을 키우려는 자구 노력과 광고 비율을 줄이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15277?lfrom=kakao
3.
“알 수 없잖아.”
영화 <벌새>에서 재개발 지역의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말하는 주인공 은희에게 한문 선생님 영지는 이렇게 말한다. 알 수 없잖아. 이 말은 늘 스스로 되뇌는 말이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정원과 그림자가 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날마다 새롭게 나를 감격하게 한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습관처럼 판단, 분별한다. 때때로 맞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틀린다. 나는 내가 틀릴 때, ‘거봐 틀렸잖아’ 하고 안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04844
4.
가축을 몰고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에게 고양이는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다. 쥐로부터 지킬 곡물 창고가 없을뿐더러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옮겨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중세 초 터키계 유목민인 오구즈 족이 살던 카자흐스탄 남부 잔켄트 유적지에서 완벽하게 보존된 고양이 유골이 발견되면서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를 둘러싼 역사가 새로 쓰이게 됐다. 이 고양이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지만 사람의 돌봄 덕분에 생존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이 마을 사람들은 이전의 초원 사람들과 애완동물을 보는 시각이 달랐다. 그들은 동물이 죽을 때까지 정성껏 돌봤고 좋은 먹이를 주고 치료를 해 줬다. 이 작은 고양이는 결국 실크로드 최초의 고양이가 됐을 뿐 아니라 유목민과 도시민 사이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증명해 주고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닭이나 토끼 등도 애초 가축이 아니라 신기한 애완동물로 교역의 대상이 됐고 나중에 가축화했다고 알려진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04814?lfrom=kakao
5.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고용시장의 이중구조와 결합돼 불평등 완화에 뚜렷한 한계를 보인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고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는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에도 안정적으로 가입해 노후와 실업에 대비할 수 있다.
반면 정작 이런 보호가 더 절실한 비정규직, 영세업체 노동자들은 낮은 소득과 불안정한 고용 탓에 지속적인 가입이 어렵다. 나이가 들거나 일자리를 잃어도 혜택을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규직의 국민연금, 고용보험 가입률(2019년 8월 기준)은 각각 87.5%, 87.2%다. 비정규직은 37.9%, 44.9%에 그친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을 상상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어쩌면 기본소득론자 필리프 판파레이스가 말했던 ‘만인의 실질적 자유’, 즉 개인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 사회에 부족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무리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고 일하는 환경이 열악해도 생계를 위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가 강제돼 있는 현재 복지 시스템에서는) 신체 건강한 실업자가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지독하게 치사한 고용주가 지독하게 지저분한 일자리에 지독하게 낮은 임금을 주는 일이 사라지지 않게 된다.”(필리프 판파레이스·야니크 판데르보흐트 지음, <21세기 기본소득>)
충분한 액수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기본소득이 제공된다면 이런 일자리를 거부하기가 조금은 쉬워질지 모른다. 이제 고용주도 일자리를 ‘매력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판파레이스 등은 “기본소득은 모든 이들이 굳건히 자기 발로 설 수 있도록 튼튼한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모두에게 ‘발판’이 있다면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와 불균형이 조금은 평평해질지 모른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04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