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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ul 15. 2020

무엇보다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

교회에 가는 게 먼저일까 

성경을 읽는 것이 먼저일까 


교회에 다니면서 성경도 읽으면 좋겠지만

선후관계를 정해야 한다면 성경이 우선이다. 


기독교의 텍스트는 성경 하나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다. 


이 하나의 텍스트를 가지고 별처럼 많은 목사들이 주말마다 설교를 쏟아낸다.

대부분 성경에 대한 목사들의 주관적인 해설이다.


여기에는 신이 아닌 사람의 의도가 담겨있다. 

그 어떤 목사라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 어떤 로우데이터(raw data, 원자료)도 편집이 가해지는 순간 의도를 담게 된다.  


극단적인 사례도 많다.  

가령 어떤 목사는 정부에 반하는 시위를 도모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한다. 

어떤 목사는 동성애 반대를 위해 성경을 이용한다. 

어떤 목사는 교회의 헌금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 성경을 이용한다. 

어떤 목사는 성경을 이용해 자신만의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낸다. 


성경 어디를 봐도 그런 변주가 일어날 맥락은 없는데도 말이다. 

성경의 핵심내용은 사랑이며 ‘하나님의 나라’다. 

그것이 성경을 읽으면 드러나는 가장 큰 맥락이다.


그런데 일부 교회에서는 주일마다 성경의 심각한 뒤틀림이 일어난다. 

그리고 불행히도 대다수의 교인은 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 

성경은 주일에만 먼지를 털어서 가져가는 액세서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래서 교인들은 성경보다 목사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이 그들의 신앙이 된다. 


성경의 핵심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이며 사랑이지만, 

그 핵심의 주변을 맴도는, 중심 맥락 바깥의 곁다리를 가지고 

자신의 비틀린 주장과 목적을 강화하는 근거로 삼는 

그런 목사들에게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영향을 받는다.   


십자군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

그 전쟁의 명분은 성경이 아니었다. 

성경을 근거 삼아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사람의 말이었다.

그 오만은 떼죽음을 불러왔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봐도 누군가를 혐오하라는 뜻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런 저열한 뜻은 담겨있지 않다. 

그것은 성경이라는 텍스트가 담은 맥락이 아니다. 

성경의 중심에는 사랑이 흐르고 있다. 오직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그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한다. 

어떤 것이 사람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인지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읽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구약은 비교적 굳건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별로 없다. 

예수님도 구약을 통해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그러니 그냥 읽어도 된다. 


그러나 신약은 불안정하다. 

가려 읽어야 한다. 신약의 저자는 굉장히 많다.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사람의 손을 탔고, 그 내용이 숱하게 바뀌었다.

특정 인간의 의도를 위해 수정된 부분도 많다. 

특히 신약의 많은 부분은 여성을 차별하고 가부장적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여러 번 개작됐다. 그 사이 예수님의 진정한 복음은 퇴색돼갔다. 


신약은 수백 년간 그저 교보재로만 쓰인 책이다. 

이 책을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신약에서 불완전한 부분이 어디인지 공부하고 가려 읽어야 

예수님의 참 복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그런 부분을 가려낼 수 있게 돕는 학자들의 책이 많다. 


당신은 기독교인인가?

당신은 성경을 읽는가?

이것은 기독교인에게 실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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