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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ul 16. 2020

평화의 시기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 여호와께서 지켜보고 계시는 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못된 짓만 일삼았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n년 동안 이스라엘을 00 사람들의 손에 넘겨 고통당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을 이끄는 민족 지도자 ‘사사’들의 일대기를 기록한 사사기에는 이와 비슷한 문장들이 반복된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화가 지속되자 느슨해지고,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주변에 일부러 멸족시키지 않으시고 놔둔 다른 민족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배당하고 고통받게 하신다. 벌을 내리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벌을 내리심과 동시에 사사들을 세우신다. 

사사들은 독립운동 지도자와 같은 이들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무력 투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한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      


여담이지만 신약성서에는 없는 여성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가령 예언자이자 사사였던 드보라는 이스라엘을 20년 동안 심하게 억압한 가나안 왕 야빈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야엘도 야빈 왕 밑에서 군대 사령관 노릇을 하던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인다.        


드보라가 이끈 승리와 독립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40년간 평화를 누린다. 그러나 그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다시 못된 짓만 일삼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을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넘겨 7년 동안 고통받게 하신다.      


이때 다시 세우신 사사가 기드온이다. 기드온에게는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이 생기는데, 이는 바알에 맞선다는 뜻이다. 그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바알 제단을 허물어버리고 아세라 상을 허물어버렸기 때문이다. 둘 다 존재하지도 않는 우상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화의 시기 섬기기 시작한 신들이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미디안 사람들에게 대항한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디안 군대를 이길 수는 없었다. 

기드온이 확인한 적의 진지는 이랬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랙 사람과 동쪽의 사막에서 온 사람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마치 메뚜기 떼가 온 땅을 뒤덮고 있는 것처럼 넓은 평원을 뒤덮고 있는 게 아닌가! 또 낙타 떼도 얼마나 많은지 바닷가에 널려 있는 모래알처럼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기드온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민병대를 조직해서 미디안 사람들을 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기드온아! 너를 따르는 민병대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내가 미디안 사람을 그 민병대의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 만일 내가 미디안 사람을 너희 민병대의 손에 넘겨준다면 이스라엘 민병대가 이길 것이 뻔하지 않느냐? 그러면 자기들이 싸움을 자래서 이긴 줄 알고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를 것이 아니냐?”     


그리고 기드온에게 민병대 규모를 대폭 줄이라고 명하신다.      


기드온이 하나님 말씀대로 민병대에게 “누구든지 싸움터에 나가 싸우기가 두려운 사람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좋으니 길르앗 산에서 내려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자 2만2천 명이 집으로 돌아간다. 남아 있는 사람은 1만 명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신다. “아직도 민병대의 수가 너무 많다.” 기드온은 결국 300명만 남기고 나머지 민병대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당연하게도, 메뚜기 떼처럼 많은 적을 상대로 기드온이 이끄는 300명의 민병대는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기드온의 이러한 승리는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3만2천 명의 민병대의 승리와 300명의 승리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도 이순신 장군이 단 열두 척의 배로 승리한 사실을 들을 때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는가.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일삼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해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신 것이다.      


그 카타르시스의 목적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상기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먼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평화로운 나날들이 지속되면 점점 하나님을 잃어버린다.

배부르고 방 따수우니 

기도는 느슨해진다.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 서로에 대한 사랑도 사라진다.

혐오하고, 싸우고, 갈등하고, 반목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게 될 때는 

우리가 고통받을 때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야 우리는 하나님께 절실하게 매달린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평화로울 때조차 하나님의 나라를 기억하라.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    

너희들은 모두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자녀이니 

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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