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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ul 16. 2020

알 수 없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나아간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전 델포이 신탁에서 한 무녀는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내가 지혜로워 이런 말이 나온 게 아니다. 단지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라고 답한다.      


문학과지성사가 최근 출간한 소설집 『소설 보다 여름』의 수록작 「희고 둥근 부분」(임솔아)의 주제는 무지(無知)에 대한 인지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많은 것을 모른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소설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해나가는 과정이다.       


#1

“왜 그때 병원에 데려갈 생각을 못 했을까.”

주인공 진영의 이모는 친구 인숙의 죽음을 안고 살아간다. 인숙은 마작을 하던 이모와 친구들에게 제초제를 물에 타서 마시고 왔다고 말했으나, 말도 또박또박 잘하고 패도 딱딱 잘 맞추고, 실실 웃었다. 그래서 이모와 친구들은 인숙이 멀쩡하다고 생각하고 그냥 계속 마작을 한다. 이튿날 인숙은 죽는다. 농약을 먹었다는 인숙의 말이 정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인숙을 살릴 수도 있었다.      


#2

계약직 교사 진영은 자꾸 손목에 상처를 내고 자신을 찾아오는 학생 민채에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회복하고 잘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른 해결책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채의 상황을 상담센터에 알리고, 전문가를 통한 치료를 진행하겠다고 통보하자 민채는 크게 원망하고 손목의 힘줄을 끊어 자살을 시도한다.      


“하는 척은 할 만큼 했다는 건가요?”

이것이 민채가 진영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 민채가 진정으로 필요로 한 것은 치료가 아닌 위로였을까. 진영이 민채를 판단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민채가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민채는 힘줄을 끊지 않았을 것이다.      


#3

지하철 자리 세 칸을 차지하고 누워버린 진영을 본 사람들은 헷갈려 한다. 눈을 뜨고 가만히 누워 숨을 쉬는 진영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인지, 단지 취객인 건지, 모르는 척하는 것이 맞는지, 돕는 게 맞는지 갈등한다. 그러나 진영은 그때 실신한 것이었다.         

“병은 아니고요. 말하자면 증상입니다. 확진을 위해서 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이고요.”


진영의 병명, 아니 증상명은 미주신경성 실신이었다. 이 증상은 의사조차 그 원인을 알지 못해 병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몸에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실신이므로, 당연히 치료법도 없다.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단어는 즉, 단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알 수 없는 비행물체에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 미확인 비행물체)라는 이름을 붙인 것처럼, 모르는 무언가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을 인지한 것이다.      


#4

소설은 이렇게 상징적으로 ‘무지’를 좇는다. 그것을 인지하기 위해서다. 소설의 제목인 ‘희고 둥근 부분’은 척추동물의 망막에 있는 ‘맹점’을 의미한다. 이 희고 둥근 부분에는 시신경이 밀집해 있어 아무 상도 맺히지 않지만, 인간은 맹점 그대로의 형태를 확인할 수 없다. 한쪽 눈만 뜨고 곁눈질했을 때에야 겨우 주변 이미지의 잔상으로 맹점이 메워지는 순간만을 목격할 수 있을 뿐이다. 그저 볼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진영과 그의 친구 로희는 땅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지도상에 점선으로 나타낸 경계선이 실제 위치한 곳을 탐방한다. 그 경계선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거기에 있음을 지도를 통해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무지를 인지할 수 있는 것처럼.   


#5

“‘보았다’라는 착각과 ‘알고 있다’라는 확증이 도처에서 발생될 때에, 인간을 둘러싼 삶의 조건이 지옥에 가까워지는 걸 느낄 때가 많잖아요.”

임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무지를 인지했다면 소설 속 인숙은 살았을지도, 민채는 자살 시도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인간의 맹점이 어떻게 인간다움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스토리텔링”이라고 설명한다. 독자는 자문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알 수 없잖아”      

영화 <벌새>에서 재개발 지역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말하는 주인공 은희에게 그의 소울메이트이자 한문선생님 영지는 이렇게 말한다.      


알 수 없잖아. 김보라 감독은 이 말을 “스스로 되뇌는 말”이라며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습관처럼 판단, 분별한다. 때때로 맞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틀린다. 나는 내가 틀릴 때, ‘거봐 틀렸잖아’ 하고 안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고 <한겨레> 칼럼에 썼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지를 인지할 때 당신은 더 지혜로워지고,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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