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일 Jul 16. 2020

2020.07.16. 오늘의 기사

1.


흔히 형제 중 첫째가 가장 눈치가 없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고 약하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회의 주류, 이성애자, 남성, 특히 중년 이상의 남성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약자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눈물을 흘린 주제에 대해 모르고 대충 들어는 봤어도 논쟁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도 스스로를 의심해 봐야 한다.


약자들은 매일 강자들과 부대끼기 때문에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쉽게 받아치고 꺾을 논리가 잘 쌓여 있다. 물론 그게 강자, 주류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약자들은 쉽사리 품 안의 칼을 꺼내지 않는 훈련이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류인 당신이 그들을 우습게 보고 어설픈 논리로 대수롭지 않게 그들을 공격하면 그들은 칼을 꺼낸다. 그들의 칼은 오랜 세월 눈물과 고통으로 갈고 닦여 강하고 날카롭다.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716030004&cp=seoul&wlog_tag3=kakao_share


2. 


물은 평소에는 안전하지만 초고압으로 분사되는 워터젯은 쇠도 자른다. 염산도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이름이 아니고 그 농도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16438


3.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유혈이 낭자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과 연관되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그림이다. 


절대적으로 불평등한 남성 중심적 사회체제와 성문화 속에서, 젠틸레스키는 성범죄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재판 과정에서 육체적 고문과 부인과 검사까지 받는 수모를 겪었다. 한편 가해자인 타시는 여성의 정조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에 편승하여 젠틸레스키가 헤프고 문란한 여자라고 주장하며 판결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려 했다. 당시 여론 역시 실제로 두 사람 사이에 성폭행은 없었으며 젠틸레스키의 동의하에 성관계가 이뤄졌다는 견해로 흘러갔다. 우여곡절 끝에 타시의 유죄가 인정되었으나 그는 형을 살지도 않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반면, 젠틸레스키는 도시 전체에 소문이 난 성 스캔들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어 쫓기듯 로마를 떠나야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16359


작가의 이전글 평화의 시기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