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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ul 27. 2020

하나님의 큰 그림, 삼손

성경에서 삼손의 이야기는 마치 무협지를 한 편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일 정도로 센 힘을 주시는데 

이 힘으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노예 삼던 블레셋 민족을 혼자서 쓸어버린다.      


그런데 삼손이 블레셋을 쓸어버리는 계기가 한결같다. 

그것은 바로 블레셋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삼손은 이 사랑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고, 그 곤경의 결말은 늘 블레셋의 처단이다.      


한 여자에게 사랑에 빠져서 곤경에 처하고 결국 악을 쓸어버리는 이야기. 

삼손의 이야기는 다른 많은 이야기들의 원형이 됐다.      


가령 이병헌 주연의 <달콤한 인생>(2005)이나 <해바라기>(2006), 영화 <아저씨>(2010)가 그 변형이다.       


<달콤한 인생>에서 보스의 여자를 사랑했다는 죄로 죽을 위기에 처한 선우는 가까스로 살아나 보스에게 묻는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그리고 홀로 조직을 쓸어버린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해바라기>의 오태식은 감옥에서 나온 자신을 받아준 가족이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에 상처 입고 살해당하자 역시 조직을 쓸어버린다.      


“충치가 몇 개냐? 나 전당포 한다. 금이빨도 받아.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 먹어줄게.” 국군정보사령부 요원인 <아저씨>의 차태식은 유일하게 친했던 소미가 납치당하자 마찬가지로 혼자서 피비린내를 일으킨다.(공교롭게도 두 영화 주인공 이름이 태식으로 같다.)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다. 

그리고 이 세 영화 모두에서 결국 악은 통쾌하게 처단되고 평화가 회복된다.

그것이 감독의 큰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삼손에게서 큰 그림을 그리셨다. 

삼손이 처음으로 블레셋 여자를 좋아해서 그 부모에게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조르는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삼손의 부모는 삼손이 이렇게 졸라대는 것이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치려고 구실을 마련하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큰 그림. 

그래서 나는 삼손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무력감을 느낀다.

인간은 감독의 큰 그림 속에서 움직이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움직인다.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고 이뤄질 일들은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큰 위안을 얻기도 한다.  

블레셋을 쓸어버리고 이스라엘에 평화를 가져왔던 삼손의 이야기처럼, 앞의 세 영화에서 결국 악이 척결되고 선이 회복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게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오리라는 

그런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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