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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Bigstar Sep 14. 2017

시인을 사랑하게 하는 것

영화 <시인의 사랑>


시인을 사랑하게 하는 것


아침 출근길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에 떠밀리고 흐르는 땀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하철 환승 구간과 목적지의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얼굴엔 감정이 없다. 그저 모두 억지로 끌려가는 미물의 상이다. 회사에선 밀려드는 일과 밀려드는 사람들의 말들에 파김치처럼 지친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뉴스를 보고 게임을 한다. 키득키득거리면서 TV 속 웃고 있는 사람들과 공감한다. 내일의 불안함과 거부감을 현실이라고 순응하며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지긋지긋하고 지치는 일상 속에도 누구에게나 정서는 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것들에서 느껴지는 감정들 말이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그 정서를 붙잡고 관찰하며 은유와 직유 등의 표현법을 가져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정해 내는 것이 시인이 아닐까 싶다. 정서가 있다고 다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시인이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일까. 누구에게나 있으나 그 정서를 이렇게 저렇게 표현해내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니고 그 서정에 모두가 공감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혼자 쓰고 혼자 듣고 혼자 느끼는 시간의 고독함을 측량할 수 있겠는가. 모두에 속하지만 모두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인 시인에게는 그렇기에 공감과 인정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반가운 정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시인의 심장박동을 뛰게 만드는 사랑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아내와 시인 택기


동복삼거리, 민방위훈련 때문에 정차한 차들,
시외버스 차창 밖 표정은 나른한 평화,
죽은 누이의 치마 같은 가을 햇볕   
_현택훈 시인의 <내 마음의 순력도> 중에서


제주도의 쨍하게 선명하고 시원한 풍경이 펼쳐지고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시를 읊조리는 시인 현택기(양익준)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영화 <시인의 사랑>은 그 순간 관객 모두의 정서를 일깨운다. 버스가 지나는 거리의 풍경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일상의 정서가 누구에게나 해당될 것처럼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리고 그것을 서정해 내는 시인의 삶도 시만큼이나 아름다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시인 택기의 갑갑한 일상이다. 시는 잘 써지지 않고 좀 써질 만하면 일상이 괴롭힌다. 시 구상의 아름다운 생각과 답답함이 혼재한 택기의 길에 오줌 쌀 뻔했는데 왜 늦게 오냐며 타박하는 아내(전혜진)는 산통을 깬다. 부질없이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고 라면을 먹어대는 일상 속에서도 자신이 남편으로서 변변치 못하다는 부담은 잊히지 않는다.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는 불혹임에도 여전히 변변치 못한 자신에게 아이를 갖고 싶다며 밀어닥치는 아내가 달갑지 않다.

시로 쓰고 싶은 정서의 새로움도 발견할 수 없고 인간으로서의 삶에도 흥이 나지 않던 택기에게 어느 날 아내가 물려준 도넛 하나는 순식간에 분위기를 새롭게 만든다. 좋아했었지만 잊고 있었던 도넛의 맛은 모든 게 시들했던 시인의 세포 어딘가를 깨워낸다. 그렇게 도넛을 좇던 중 택기는 자신의 정서를 일깨우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도넛 가게에서 일하는 소년(정가람)의 말, 소년의 움직임은 이제 시인의 모든 정서 세포를 깨워낸다. 그리고 택기는 시인으로서 그가 그러했듯이 그 대상에게 다가가고 관찰하고 함께 하는 시인의 일을 시작한다. 정서의 공감과 인정, 소통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일은 시인의 사랑이 되고 그 감정은 시처럼 또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 내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도넛 가게 소년과 시인 택기


시인과 도넛, 도넛 가게 소년


택기가 다시 시인으로서 서정하게 한 계기는 도넛과 도넛 가게의 소년이다. 도넛을 택기의 입에 물려줬던 아내 역시 그 도넛이 택기에게 변화를 일으키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내가 택기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래선지 아내는 택기의 일거수일투족을 그의 친구와 공유한다. 택기가 말도 꺼내기 전에 친구는 모든 것을 알고 훈수를 둔다.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인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는 친구들과 거드는 아내의 틈새에서 택기는 최소한의 공감과 이해도 얻어내지 못한다. 그저 숨이 막히는 현실의 순간일 뿐이다.

그런 택기에게 도넛은 삶에 단맛을 발견하게 하고 도넛 가게의 소년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대상이자 그의 정서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떠오른다. 도넛 가게 앞을 지나가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를 보며 소년이 읊조리는 한마디는 택기에게 그대로 시가 되어 돌아온다. 학교를 그만두고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며 어머니의 섬세한 보살핌 없이 살아가는 소년의 현실도 택기에게는 달달한 도넛과는 다른 방향에서 시인의 정서를 깨우는 대상이 되었으리라. 택기는 소년을 동정심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깨어난 시인의 정서가 좇는 시인의 일로 다가간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면서 택기의 시도 아름다움만을 그리는 틀을 벗어나 현실의 아픔을 담았다는 새로운 변화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소년은 택기의 아내는 공유할 수 없었고 공감하지 못했던 부분의 허기를 채워주는 존재로서 시인인 택기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


시인과 시인의 아내


시인의 아내와 도넛가게 소년의 만남


정서의 공감과 인정, 소통이 가능한 존재를 발견한 시인의 선택은 비로소 불혹의 나이다운 단호한 결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결정은 다시 시가 아닌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택기를 붙잡고 싶은 아내는 예전에 택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따라가면서 느꼈던 것을 소년에게 이야기한다. 천천히 걸으며 사물을 한참 바라보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모습이 시인의 모습이라고 느꼈다는 것이다. 자신과는 다르지만 택기를 시인으로 인정하고 소통했던 감정을 뒤늦게 상기한다.

소년은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도움을 줬던 택기와 함께하는 새 삶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 갖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치심도 모르는 듯 상스럽게 욕을 하는 어머니에 맞서 줬던 시인이라는 존재가 더 필요한 사람은 자신보다 시인의 아내라는 생각을 했나보다. 무너진 부모의 자식으로 사는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에 어리지만 내민 양보였을 것이다.

불혹의 단호한 결정을 내렸던 택기는, 하지만 여전히 본인보다는 상대방의 판단과 결정, 그것이 주는 정서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시인이 된다.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이 정리된 듯 편안하게 보이지만 남는 것은 쓸쓸한 감정이다. 제주도의 풍광과 시를 읽는 시인의 목소리로 깨어난 관객의 정서는 도넛을 입에 물고 활기를 찾고 소년을 만나면서 공감의 환희를 만나는 시인의 정서처럼 다각도로 깨어난다. 그러나 그 끝에 남는 정서는 늦가을 스산한 공기처럼 쓸쓸하다.

시를 쓰며 시인은 눈물을 한 방울 흘려보낸다. 남을 위해 울어주는 것이 시인이라고 했던 택기, 자신의 감정이 내놓은 눈물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그마저도 남을 위해 울어주는 시인의 눈물이라고 한다면 그 눈물은 이제 시인이 소년과 함께 했던 자신을 남처럼 저 멀리 보내는 의식처럼 느껴져 더욱 쓸쓸해 보인다. '아무 때나 나는 눈물 흘리지 않는다'는 시의 구절이 그렇게 반어적으로 마음에 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제주에 사는 김양희 감독은 그곳에서 만난 시인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저런 동화 속에서 사는 듯한 시인에게 강렬한 사랑을 선물하고 그가 어떻게 변해갈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부터 이 시나리오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양희 감독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핵심만 정확히 전달하는 대사를 모든 인물에게 부여한다. 상황에 대한 세세한 전후 묘사가 없어도 인물의 대사 한마디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위트까지 있어서 보면서 피식피식 웃게 만든다. 최근 들어 충무로에서 만들어진 영화 중 이렇게 대사의 간결한 맛이 빛났던 작품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번뜩 떠오르는 작품이 없을 지경이다. 그 대사의 맛을 온전히 살려내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양익준, 전혜진, 정가람 배우 모두 연기를 보면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양익준 배우는 엄청나게 몰입해야 나올 법한 연기를 힘 하나 주지 않고 보여준다. 올해 가장 연기를 잘한 남자 배우를 거론할 때 양익준 배우가 그 후보로 떠오르리라고는 영화를 보기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말 놀랍도록 현택기에 몰입한 양익준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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