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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Bigstar Sep 18. 2017

나는 매혹당하지 않았다

1971년작에 비해  심심한 2017년판 <매혹당한 사람들>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

나는 매혹당하지 않았다

1971년 돈 시겔 감독의 <더 비가일드>에 비해 심심한 2017년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



남성이 파괴한다면 여성은 결합한다. 남성이 자폭하며 무너진다면 여성은 우아함으로 곧게 선다. 남성은 대립하며 전쟁을 일으키고 여성은 대립을 품고 둥지를 지킨다. 소피아 코폴라의 <매혹당한 사람들>을 본 후 느껴지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이다. 

토머스 컬리넌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1971년 돈 시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으로 먼저 만들어졌던 <더 비가일드>와 비교할 만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전쟁과 성적 위협이라는 남성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스스로 통제하고 엄격한 규율을 내세워 유지되던 여성 집단이 끝내 집단행동으로 저항하며 파격적인 엔딩에 이르는 이야기는 동일하다. 1971년작 돈 시겔 버전은 근친상간, 노예 윤간 등의 플래시백을 보여주고 인물의 내레이션을 넣어 욕망을 표현하고 계급의 문제를 다룬다. 반면 2017년작 소피아 코폴라 버전은 성적 욕망과 시기, 질투를 가슴속에 꾹 눌러 담고 둥지를 지켜내며 연대하는 여성의 주체적인 모습에 집중한다. 큰 이야기의 틀과 몇몇 대사까지 동일하지만 돈 시겔 버전에 담겼던 몇몇 요소를 제거하고 단순화시켜 걸림돌 없이 매끈한 이야기로 가다듬은 것이 소피아 코폴라 버전의 2017년 작이다. 그 덕에 화려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 인물들에게 시선이 가지만 돈 시겔 버전이 지녔던 다층적인 매력은 떨어져 나갔다. 날이 선 칼날 같았던 1971년작에서 알맹이가 빠지고 강렬한 시선도 사라진 채 우아하고 예쁘장하게 우뚝 섰지만 무뎌진 칼날 같은 느낌이 2017년판 <매혹당한 사람들>이다.


<매혹당한 사람들> 판스워스 기숙 학교의 기도 시간


1864년 미국 남북전쟁의 막바지, 전장에서 극심한 상처를 입고 탈출한 상병 존 맥버니(콜린 패럴)가 숲 속에 은둔해 있다. 버섯을 따러 나왔다가 존을 발견한 소녀 에미미(우나 로렌스)는 그를 마사 판스워스(니콜 키드먼)가 운영하는 기숙학교로 데려온다. 전쟁 통에 모두가 떠나고 마사와 선생 에드위나(키얼스틴 던스트), 그리고 알리시아(엘르 패닝)를 포함한 다섯 학생이 머무는 기숙학교에 나타난 남성의 존재는 그곳에 머무는 여성 모두를 사로잡고 마음속 욕망을 다양한 모습으로 끄집어내게 한다. 존의 환심을 사려고 자신을 꾸미고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행동은 본능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그것을 즐기고 이용하며 생존해내려는 것은 존의 입장이다. 남성의 환심을 사려는 7명의 여성, 그 여성들의 관심을 즐기며 생존하려는 남성의 입장은 결국 충돌하고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는 결말에 이른다. 


1971년작 <더 비가일드>와 2017년 작 <매혹당한 사람들> 속 마사와 존 (이미지출처 : IMDB)


1971년 작과 2017년 작의 차이 

1971년 작 <더 비가일드>는 상황과 캐릭터가 강렬하고 진한 색깔로 묘사된다. 오빠와 근친상간하는 마사(제랄딘 페이지)의 과거와 존(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육체를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은 종교적 엄숙함을 내세워 기숙학교 학생을 통제하는 이중적인 모습과 겹치며 그녀를 욕망 덩어리로 강렬하게 그린다. 존의 폭력성이 드러나는 순간에 흑인 노예를 강제로 유린했던 마사 오빠의 과거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그녀들에게 남성을 억압과 폭력을 가하는 위협적 존재로 나타내기도 한다. 도와주겠다는 것을 빌미로 밤에 기숙학교에 찾아와 음흉한 시선을 보내는 아군의 모습은 바깥에서 전쟁을 벌이는 남성이라는 존재를 피아 가릴 것 없이 여성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 요소들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엔딩에 이르렀을 때 판스워스 기숙학교의 여성들의 연대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절박한 선택으로 이해하게 된다. 


반면 2017년 작 <매혹당한 사람들>에는 <더 비가일드>에 담긴 이런 요소들이 모두 제거되었다. 흑인 노예도, 마사의 오빠도, 기숙학교 여성들의 마음속 목소리도 제거된다. 밤에 기숙학교를 찾아온 아군의 모습도 온전히 음식을 요청하는 모습으로 순하게 다뤘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만 사는 기숙학교에 등장한 단 하나의 남성 존재와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의 충돌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최후의 사단으로 이야기가 단순화되고 그 덕에 흐름도 매끈해졌다. 결국 <매혹당한 사람들>의 여성들은 서로 환심을 사려던 남성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상황이 꼬여버리게 되자 서로를 향하던 시기와 질투와 견제하는 마음을 마음속에 묻은 채로 둥지에 위협을 가하는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 연대하는 서늘함으로 끝을 낸다. 같은 과정과 같은 엔딩이지만 배경은 사라지고 심리상태만 남아 둥둥 떠다니듯 알맹이가 빠진 모양이 <더 비가일드>에 비교되는 <매혹당한 사람들>의 모양이다.      


1971년 작 <더 비가일드>의 저녁 만찬
2017년 작 <매혹당한 사람들>의 저녁 만찬


더 우아하고 더 주체적으로

1971년작에 비해 알맹이가 약해 보이고 덜 강렬하지만 여성을 주체적인 입장으로 놓은 것은 아무래도 2017년 소피아 코폴라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존의 거취에 대한 마사의 입장이 두 영화에서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었는지 보는 것으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더 비가일드>의 마사는 정원 관리하는 일을 제안하며 존이 학교에 남아주기를 제안한다. 반면 <매혹당한 사람들>에선 떠날 것을 종용하는 마사에게 반대로 존이 정원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좀 더 머물고 싶다고 제안한다. 두 영화의 마사는 모두 존을 욕망하지만 <더 비가일드>의 마사에게 존이 소유하고 의지하고 싶은 대상이었다면 <매혹당한 사람들>의 마사에게 존은 스쳐 지나가는 욕망의 대상으로 보인다. 판스워스 학교의 여성들을 이끄는 마사 선생의 입장이 이렇게 두 영화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만큼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그 톤을 이어받는다. 결국 존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두 영화 속 에드위나 선생을 비롯한 기숙학교의 학생들을 비교해봐도 더 쿨한 쪽은 21세기 영화 속 여성들이다. 이런 요소가 마지막에 존을 향한 살기의 결과는 같아도 그 결을 상당히 다르게 만든다.  


2017년 작 <매혹당한 사람들>의 존과 알리시아 


한편 두 영화에서 모두 의아한 것은 그 누구도 알리시아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계기는 존과 알리시아의 관계에 있다. 이상하게도 두 영화 속에서 모두 남성의 시선을 끄는 매력으로 거짓말과 위선을 일삼는 그녀를 탓하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남성 무리에 이런 캐릭터가 있었다면 추방당했거나 제거됐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 무리에서 알리시아는 시기의 대상이 될지언정 제거되거나 추방되지 않고 굳건히 존재한다. 알리시아 캐릭터야말로 남성 집단과 여성 집단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캐릭터로 보인다. 


2017년 작 <매혹당한 사람들>의 마사와 존


우아하고 세련되어졌지만 여러모로 1971년작에 비해 심심하고 단순화된 <매혹당한 사람들>은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이 제시되었다는 점 외에 영화적으로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 작품으로 올해 칸 영화제 감독상의 주인공이 된 소피아 코폴라. 칸은 그녀의 작품에 매혹당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혹당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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