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enBigstar Sep 26. 2017

사운드 좋은 극장을 찾아서

<베이비 드라이버> 귀가 즐거운 영화



사운드 좋은 극장을 찾아서

귀가 즐거운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찾아가기 수월한 위치이거나 멤버십 포인트가 쌓이고 있는 곳이거나 선호하는 팝콘을 판매하는 곳이거나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전처럼 특정 영화를 특정 극장에서만 봐야 하는 환경이 아닌 멀티플렉스의 시대이니 영화에 따른 극장 선택이라기보다는 극장을 먼저 선택하고 해당하는 영화를 보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또는 분기에 몇 번은 영화에 따라 극장을 선택하는 기준이 정해진다. 반드시 아이맥스 화면으로 봐야 하는 영화라든가, 반드시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시스템이 제공되는 상영관에서 보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물론 화면비율에 따라 완벽하게 상하좌우 화면 마스킹을 해주는 극장은 모든 영화를 볼 때 기본적으로 선호하는 극장이다. 

당장 지난 겨울에는 아이맥스와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 모두를 찾아보게 했던 <라라랜드>가 있었고, 여름에도 <덩케르크>를 레이저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기 위해 예매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그리고 가을의 시작에 다시 한번 영화에 따라 극장을 선택하게 하는 영화가 나왔으니 그것은 바로 <베이비 드라이버>다.


음악에 맞춘 자동차 추격신과 액션신이 끝내준다는 입소문을 듣고 기대감에 부풀어서 개봉하자마자 가까운 극장에서 관람했다. 역시나 오프닝부터 귀와 눈을 즐겁게 하고 그 감동이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 기어이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시스템을 제공하는 극장에서 2차 관람을 했다. 1차 관람이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이 작품은 돌비 애트모스 상영관에서 봐야만 그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귀가 그렇게까지 섬세하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돌비 애트모스 상영관에서 한번 더 보기로 한 결정은 후회 없는 선택이 되었다. 오프닝 장면부터 왠지 1차 관람 때는 선명하게 들리지 않았던 미세한 사운드까지 나의 귀에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명하면서도 깔끔하게 전달되는 음악과 대사의 맛은 영화를 더욱 가까이 느끼게 해주었다. 


https://youtu.be/6XMuUVw7TOM

<베이비 드라이버> 오프닝 클립 / 출처: 'ColumbiaPicturesPhils' YouTube



극장을 골라가면서 2차 관람을 하게 한 <베이비 드라이버>의 매력은 단연 음악과 장면의 기가 막힌 조화에 있다. 음악과 영상의 완벽한 합이 떨어지는 기쁨을 이미 <라라랜드>를 통해 맛봤던 관객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만한 선물과도 같았다. 타이틀 자막이 떠오르기 전 프롤로그처럼 등장하는 장면에서 BluesExplosion의 'Bellbottoms'가 흐르고 주인공 베이비(안셀 엘고트)와 은행을 터는 일당의 모습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듯 펼쳐진다. 마치 뮤지컬의 주인공처럼 음악에 립싱크를 하는 베이비와 잘 짜인 뮤직비디오의 장면처럼 은행을 털고 엄청난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며 도망치는 일당의 모습이 'Bellbottoms'의 흐름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라라 랜드>의 'Another Day of Sun' 장면의 완벽함에 못지않은 프롤로그가 끝나면 관객이 숨도 돌릴 틈도 없이 또 하나의 완벽한 뮤직비디오 같은 오프닝 시퀀스가 시작된다. 베이비가 커피를 사러 가는 길과 커피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 펼쳐지는 유려한 시퀀스는 The Rolling Stones의 'Harlem Shuffle'이 귀를 즐겁게 한다. 그 길에서 데보라(릴리 제임스)를 스치듯 처음 본 베이비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 속 하트의 컬러가 회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는 섬세함까지 신경 쓴 장면이 펼쳐진다. 프롤로그부터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까지 이 영화가 얼마나 작정하고 음악과 영상의 합을 맞췄는지를 선명하고 강렬하게 느끼게 한다.

어릴 적 겪은 사고로 인해 귀울림증이 있는 베이비는 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아이팟에 연결된 이어폰을 꽂고 생활한다. 엄마에게 처음 선물 받았던 구식 아이팟을 시작으로 갖가지 아이팟을 갖고 있고 생활 속에서 인상적인 대화를 녹음해서 그걸로 자신만의 믹스테이프를 만드는 취미를 갖고 있다. 베이비의 캐릭터가 드러날수록 음악과 영상이 합을 맞추는 설정이야말로 <베이비 드라이버>를위해 존재하는, 더없이 적합한 설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프닝 이후에도 영화는 노래를 타고 흐른다. 베이비가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로 The Commodores의 'Easy'를 사용하고, 데보라와의 알콩달콩함이 시작되는 빨래방 장면에선 T.Rex의 'Debora'를 사용한다. 무기밀매상과의 대립 장면에선 Button Down Brass, Ray Davies의 'Tequila'가 흐르고, 버디(존 햄)와 베이비가 각자의 질주 송에 대해 이야기할 땐 Queen의 'Brighton Rock'을 들려준다. 마지막 계획을 진행하던 차에 벌어지는 경찰과의 추격전에서는 Focus의 'Hocus Pocus'가 총소리와 달리는 발동작에 맞게 쿵쾅거린다. 음악을 빼놓고는 영화가 진행될 수 없고 관객이 느끼는 것이 불가능한 음악과 영상의 완벽한 합을 멈추지 않고 뽑아낸다. 



배우들의 색다른 면모도 충분한 볼거리가 되어준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해 보여서 베이비라는 닉네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안셀 엘고트는 순둥이 같으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의 미소를 지닌 고전적인 할리우드 스타를 떠올리게 한다. 큰 눈이 매력적인 데보라 릴리 제임스와 실제 연인처럼 보일 정도로 잘 어울린다. 증권사에서 일하다 인생이 꼬여서 은행털이나 하면서 사는 거 아니냐는 말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존 햄의 기존 이미지를 입힌 버디 캐릭터와 그와 완벽한 커플 연기를 보여주는 달링(에이사 곤살레즈)의 조화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악하고 제멋대로인 악역 뱃츠(제이미 폭스)와 베이비에게 고리 하나를 걸고 놓아주지 않으며 은행털이를 계획하는 박사 케빈 스페이시도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 배우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한편 감독 에드가 라이트에 대한 언급을 빼놓을 수 없다. 독특한 캐릭터의 활용과 독특한 설정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내는 감독 에드가 라이트가 오랜만에 제대로 멋들어진 영화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작 <새벽의 황당한 저주>부터 독창성을 인정받았던 그는 배우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와 함께 하며 독특한 똘끼로 무장한 괴짜 같은 영화들을 만드는 감독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베이비 드라이버>는 취향을 많이 탈 것 같았던 전작에서 탈피하여 좀 더 많은 대중과 접점을 찾을 법한 세련된 작품으로 완성됐다. 사이먼 페그가 없는 에드가 라이트의 작품을 보니 이후 그 둘이 다시 만나게 될 영화도, 아니면 각자가 작업할 영화도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질 지 궁금해진다. 

 음악과 영상의 완벽한 합으로 보는 내내 짜릿함을 주는 영화이기에 마지막엔 조금 심심한 감이 남기도 한다. 프롤로그와 오프닝에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였던 에너지가 마지막까지 이어지긴 한다. 그러나 오프닝에서와 같은 완벽한 음악과 영상의 조화는 엔딩에서는 만날 수 없다. 에필로그처럼 뮤지컬 같은 마무리를 지어줬다면 극장을 나오기 전에도 짜릿함을 느끼면서 나올 수 있었을 것 같다. 처음에 밀어붙인 에너지에 비해 조금은 심심한 엔딩이 아쉬웠다면 아쉬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매혹당하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