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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Bigstar Jan 16. 2022

스필버그<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61년 원작과 다른 점

영리하게 정돈되고 변경된 시나리오의 힘!

(좌) 2021년 작 포스터 (우) 1961년작 포스터



2021년 작 스필버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1961년 작 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의 원작과 어떻게 다른가?


역시는 역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뮤지컬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스필버그의 영화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여전히 관객에게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체험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어김없이 느끼게 한다.


1957년 브로드웨이 초연에 이어 1961년 로버트 와이즈와 제롬 로빈스의 공동 연출로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을 포함한 10개 부문 상을 수상한 걸작이다. 뉴욕 어퍼 웨스트사이드 지역에서 일어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청년 조직인 샤크파와 미국인 청년 조직인 제트파의 대립과 폭력이 만든 비극을 다룬다. 익히 알려진대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원안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는 마치 신화처럼 그 자체의 이름으로, 아니면 변주된 이름으로 여러차례 만들어졌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도 녹아들었다. 수없이 재생됐던 이야기를 또 한번 되풀이하는 이유는 그 메시지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누군가는 힘주어서 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립하는 제트파 리더 리프와 샤크파 리더 베르나도

살찌운 인물의 서사, 그것으로 설득력을 지니게 되는 이야기!

<뮌헨><링컨>등에서 스필버그와 작업한 토니 쿠슈너 시나리오의 힘!


스필버그의 2021년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발렌티나 캐릭터의 등장이다. 제트파와 샤크파의 공동 아지트 같은 드럭스토어를 운영하는 닥 아저씨의 자리를 닥 아저씨의 아내인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발렌티나로 대체한 것이다. 이는 61년작보다 메시지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인 청년들에게 바른 이야기를 해주고 이해하고 품어주고 기도하는 어른이 극 안에 더 또렷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발렌티나를 연기하는 배우는 놀랍게도 리타 모레노다. 61년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아니타를 연기해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배우를 2021년작에서도 만나게 된 것이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로서 뉴욕에서 뿌리를 내린 발렌티나는 묘하게도 60년 전 아니타가 자신이 지나온 삶의 슬픔과 사랑의 아픔이 후대에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1년작에 녹아들었다.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 발렌티나를 연기한 리타 모레노


뮤지컬 넘버 Somewhere는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 후 마리아와 토니가 사랑을 확인하며 둘만을 위한 도피처가 있으리라는 심경을 담아부르는 노래였다.

그런데 21년작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건 마리아와 토니가 아니라 발렌티나다. 같은 노래를 누가, 언제 부르게 하느냐에 따라서도 이야기의 방점이 달라진다. 그저 사랑에 눈 먼 청춘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가 치유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는 걸 보여주는 변형이다. 스필버그와 <뮌헨><링컨>을 작업한 토니 쿠슈너의 영리한 각색이다.

마리아가 사랑받는 자신을 행복하게 표현하는 I feel pretty의 배치도 61년작과 다르다. 원작에선 이 노래 후에 마리아와 토니가 그들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One hand, One heart 넘버로 이어진다.

그런데 21년작에선 I feel pretty를 부른 후 마리아가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61년작에서 비극적인 결투 뒤에 침착하게 행동하라며 제트파가 부르는 넘버 Cool은 21년작에선 결투를 취소하라고 말리는 토니와 리프를 필두로 한 제트파가 옥신각신 하는 상황의 넘버로 변경됐다.

이런 변화는 각 인물의 서사를 살찌우는 것은 물론이고 총,칼이 어떻게 그들의 손에 쥐어지게 되는지를 이해시키는 영리하게 정돈된 시나리오의 결과다.


제트파를 함께 결성했던 친구 사이인 리프와 토니. 그러나 지금은 샤크파와 패싸움을 취소하라며 대립하는 사랑에 빠진 토니와 제트파의 리더인 리프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에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제트파와 샤크파의 대립을 중심에 두어 혐오와 증오가 부른 비극을 다루는 것에 초점을 둔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 때도 그랬고 지금은 더 극심해진 그 문제 말이다.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시작된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그 대립이 낳은 비극의 한 부분일 뿐인 것이다. 61년작에서도 그렇고 스필버그의 21년작에서도 마찬가지로 토니와 마리아의 매력이 약해보이고, 그들보다 리프와 베르나도, 제트파와 샤크파, 아니타와 발렌티나에 더 눈과 마음이 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열정적인 사랑은 언제나 인류에게 희망인데, 그러니 우리가 주목하고 풀어야 할 과제는 사랑보다는 혐오와 증오로 인한 대립과 폭력에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그저 사랑하게 놔두면 될 일이지만, 증오와 혐오는 나서서 말리고 중재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America를 부르는 아니타와 베르나도,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 / 샤크파의 군무 시퀀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나 안무와 음악이다.

발레와 현대무용으로 단련된 육체가 보여주는 61년작의 안무는 예술 그 자체였다. 로버트 와이즈와 공동 감독으로 오스카를 수상한 제롬 로빈스의 안무는 감탄스럽다.

그 안무가 21년작에 와서는 더욱 더 스케일이 커졌다.

마치 객석에서 무대 위 뮤지컬 공연을 보는 것처럼 로우앵글로 촬영된 61년작은 공간도 한정된 세트에서 촬영된 것 같아서 무대 뮤지컬 같은 느낌이 강했다. 21년작은 영화적 기술은 물론이고 로케이션도 다양하게 구성해서 이것이야말로 뮤지컬 ‘영화’구나 싶다.

<쉰들러 리스트> 이후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의 촬영을 담당하는 야누스 카민스키는 이를 눈부시게 담아낸다. 예를 들어, America 넘버를 부를 때 원작은 한밤중에 옥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부르는 것인데, 21년작에서 로케이션을 대낮에 뉴욕 거리 곳곳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면 더더욱 감탄이 터져나오게 된다. 원작에서도 아니타 캐릭터가 가장 돋보이는 이 America 시퀀스는 21년작에서도 여전히 아니타를 위한 시퀀스로 존재한다.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 스티븐 손드하임 작사의 뮤지컬 넘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다. 이들의 음악이 없었다면 사실 이 뮤지컬은 존재할 수도 없었고, 수십년 동안 우리의 마음 속에 남지도 않았을 것이다.


토니 역의 안셀 엘고트와 마리아 역의 레이첼 지글러. 둘의 첫만남이 이뤄지는 학교 체육관 무도회 시퀀스.


 

스필버그가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리메이크 한다는 소식은 약간 놀라웠다. 헐리웃에 뮤지컬 영화가 다시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지금이지만 스필버그까지 뮤지컬 영화를 시도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는 희대의 걸작 뮤지컬 영화를 말이다. 안셀 엘고트가 성추문으로 찬물을 끼얹었을 때는 어떻게 될 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61년작과 어떤 면이 다른지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천재적 감독인 스필버그가 이 뮤지컬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재미있게 읽힌다.

사실 ‘왜’라는 이유를 찾을 것도 없이, 스필버그가 뮤지컬영화를, 그것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 또는 감독상은 이 영화에 주어질 것 같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62년 제34회 오스카 10개 부문 수상한 것으로부터 60주년이 되는 해에 리메이크 작품이 상을 받는 스토리라니, 헐리웃이 딱 좋아할 그림 아닌가. (<돈 룩 업!>에 작품상 안 줄 거라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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