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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Bigstar Jan 29. 2022

영화의 의미를 지키는 관객 한 사람

장예모 감독이 <원 세컨드>로 전하는 은유적 영화의 의미

장예모의 <원 세컨드>.


영화는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움직임을 기록하는 시도로부터 마술 같은 편집과 기술이 더해지고 이야기와 연기가 화려해지면서 영화는 다양해졌다. 이와 함께 상업적인 돈벌이 수단이 되었고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선 국가, 권력, 특정 집단이 의도한 선전물로 존재하기도 한다. 영화를 뜻대로 부리려는 세력들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영화의 순수한 의미를 되새기고 기록하여 간직하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원 세컨드> 속에 등장하는 영화 '영웅아녀'와 예전 우리의 '대한뉴스'처럼 본 영화 상영 전 보여주는 국가 뉴스는 정확히 선전물이다. 문화혁명 시기, 중국의 정치, 이념을 인민에게 세뇌시키기 위한 프로파간다 필름이다. 한국전쟁 시기, 항미원조 이념으로 전쟁에 나간 군인들을 내세운 '영웅아녀'가 마을을 돌며 상영되고 사람들은 몇 번을 보여줘도 재밌고 좋다며 상영회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다. 필름의 이동을 관리하고 상영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마을의 영웅 대우를 받을 정도다. <원 세컨드>는 그 선전영화 상영을 위해 마을에서 마을로 필름통을 운반하는 과정에 틈입한 주인공 장주성과 류가녀의 필름 쟁탈전(?)과 망가진 필름을 되살려 상영에 이르는 에피소드로 채워진다. 그 과정에서 이 두 사람이 이 필름에 집착하며 쟁취하려고 하는 이유가 밝혀진다. 그런데  그 이유는 선전영화를 만든 이의 의도나 그것에 열광하는 인민의 관심과는 전혀 상관없다. 영화의 의도와 대중의 환호와 상관없지만 각자가 그 필름에서 확인하고 간직해야 할 것이 있고, 필름이 필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의 이유가 오히려 '영웅아녀'라는 선전물에 입 벌리고 순응하는 인민들의 모습보다 필름의 순수한 가치에 가까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아이러니, 이 감정이 <원 세컨드>를 보는 내내 나를 지배한다.



장예모의 <원 세컨드>는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 천국>과 비슷한 소재(영화, 극장, 필름, 영사실)를 담고 있지만 <시네마 천국>처럼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다. 영화가 국가와 정치권력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는지와 민중이 얼마나 쉽게 그 의도에 세뇌되는지 고발하는 것에 가깝다. 그런 상황에서 그 의도와 다른 목적으로 필름에 집착하고 간직하고 기억하려는 인물을 통해 은유적으로 영화의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그 지점에서 감독 장예모의 단단함이 느껴져서 감동적이다. 이런 모습으로, <붉은수수밭><인생><5일의 마중>의 장예모로 기억하고 싶은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작년 중국 국가 선전물 목적의 <장진호>가 중국 내에서 기록적 흥행을 기록하고 올해 2편이 공개되는 것으로 안다. 그 감독이 <패왕별희><현 위의 인생>의 첸 카이거와 <영웅본색><황비홍>의 서극이라는 걸 알고 기함했던 기억이다. 중국 대중문화의 현실이 이 지경이구나 싶었다. 안타깝게도 장예모의 신작으로 올해 공개될 <저격수> 역시 한국전쟁 시기, 항미원조 이념으로 나가 싸운 저격수의 이야기라고 한다. <윈 세컨드>를 만든 장예모가 그 영화 속 선전영화 '영웅아녀'같은 영화를 감독했다고 생각하니 현기증이 난다.

결국 영화의 의미를 지키는 건, 선전에 휘둘리지 않는 관객 한 사람에게 부여된 역할인가 싶다. 바로 그것이 <원 세컨드> 관객인 나의 총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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