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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Bigstar Sep 11. 2022

<수리남> 낙원의 문이 모두에게 열렸을 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


낙원은 존재한다. 문제는 그 낙원으로 난 길이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낙원에 입성한 모두가 낙원이 아닌 그곳에서처럼 다시 뒤엉킬 때 결국 그곳도 지옥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윤종빈의 6부작 미니시리즈 <수리남>은 각자의 이유로 낙원의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뒤엉키는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 지옥 풍경은 더욱 처참하게 느껴진다.


2009년, 40대 중반의 강인구(하정우)는 동두천에서 단란주점과 카센터를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린다. 베이비붐 세대의 끄트머리쯤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난했던 부모의 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는 일찌감치 세상 이치를 온몸으로 터득한다. 오로지 바라는 건 가족의 행복이라지만 가족과 함께 외식 한번 하지 못할 정도로 일만 하는 하루의 끝에 남는 건 그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공허함이다. 더럽고 치사한 인간 말종들을 상대하는 것에도 염증을 느낄 무렵,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에 인생역전의 기회가 있다는 친구 응식(현봉식)의 제안에 동한 인구는 그렇게 수리남에 입성한다. 그는 꿈꾸던 낙원을 만나게 될까.


사실, 꿈이 야무졌다. 강인구가 30년 가까이 세상 밑바닥에서부터 터득한 방법이 수리남에서 먹혀들지 않게 된 것이다. 처음엔 뭔가 통하는 듯했지만, 결정적인 한계에 봉착한다. 목사 전요환(황정민)과 얽히면서부터다.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언변으로 수리남에서 한인교회를 부흥시킨 전요환은 사실 마약 밀매와 마약 중독을 미끼로 사기행각을 벌였던 사기꾼이었다. 국정원이 주시하는 요주의 인물일 정도로 대형 사기를 겁도 없이 저지르던 그였지만, 언제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은 있고, 그것은 악의 세계일수록 징글징글하다. 자신의 사기 행각과 호의호식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에 숨이 막혀올 때쯤, 우연히 신문에 소개된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을 발견한다. 한국과 범죄자 인도 조약도 체결되어 있지 않고 마약 생산, 유통, 수요로 볼 때도 최적인 수리남이 요환에겐 낙원처럼 보였을 것이다. 돈 좀 벌겠다고 수리남에 들어왔다가 중국 갱에 린치를 당한 강인구가 그에겐 이용해먹기 좋은 대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강인구와 얽히면서 그의 낙원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강인구와 전요환의 얽힘은 한국의 국정원이 미국, 브라질 수사단과 국제적인 공조를 진행시켜야 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을 만든다. 각자의 이유와 목적으로 수리남에 모인 사람들이 얽히며, 살기 위해 속이고 돈을 위해 죽이는 지리멸렬하고 숨 막히고 처참하고 처절한 기록이 <수리남>이다.

<수리남>은 윤종빈의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좁디좁은 나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 각종 치트키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돈의 주인이 되어버리면 그 수단이 사기든 범죄든 무용담으로 승화되어버리는 어떤 뒤틀린 풍경이 존재하는 세상, 그 안에서 숨 쉬는 사람들의 켜켜이 쌓인 이야기가 윤종빈이 즐겨 바라보고 주의 깊게 다루고 싶은 오늘인 것 같다.



강인구와 전요환은 원하는 것이 뚜렷하다. 둘 다 돈을 버는 기회에 혈안이 되어있다. 다만 누구의 것이 악의 영역까지 선을 넘어버리는지가 관건이다. 강인구의 기지와 국정원의 전술로 입지에 위기가 닥칠수록 전요환은 생존하기 위해 끝내 선을 더 심하게 넘는다. 그에게도 일말의 의리나 진심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정당화하거나 동정할 순 없다. 이 시리즈는 강인구에겐 자신의 사정을 스스로 소개할 권한을 부여하지만 전요환에겐 스스로의 사정을 소개할 기회를 끝까지 주지 않는다. 선을 넘는 악인에게 해명할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이야기꾼 윤종빈의 선택이었다면 기꺼이 지지하고 싶다.


강인구와 전요환의 대립 구도를 더욱 팽팽하게 만드는 캐릭터의 활용도 인상적이다. 중국 갱의 두목으로 시종 위협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첸진(장첸), 국정원 요원으로 강인구에게 협조를 요청하며 위장 수사를 하는 최창호(박해수), 첸진을 배신하고 강인구의 오른팔이 된 변기태(조우진), 느끼하고 꿍꿍이가 있어 보이나 브레인으로 전요환의 신임을 얻은 데이빗(유연석), 목사 전요환을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상준(김민귀)까지 각자 제 몫을 해냈다.


다만 6부작 총 370분보다 팽팽하게 4부작 미니시리즈나 3시간 남짓의 영화 한 편으로 만들어졌다면 좀 더 임팩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첩보 스토리 면에서 충분히 의심스러운 강인구의 행각을 몇 번이나 믿고 넘겨버리는 전요환의 판단도 맥을 좀 풀리게 한다.


<수리남>은 과연 <오징어 게임>만큼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을 수 있을까? 한국판 <나르코스>로 호평을 받을 수 있을까? 반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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