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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오 Jun 22. 2020

소리와 빛 사이, 개구리와 반딧불이 춤춘다

[자연 WITH YOU] 여름은 살아 있다

Q: "개구리와 반딧불이는 친구가 될 수 있나요?"

A: "될 수 있습니다. 한 여름 산골 마을에 초저녁 개구리가 떼창을 합니다. 개구리 떼창이 끝나고 밤이슬이 내리면 반딧불이가 나타납니다. 반짝, 반짝. 그렇게 시골마을의 여름은 흘러갑니다."



덥다. 35도를 기록했다. 차 안은 더 덥다. 창문을 닫고 세워뒀더니 40도가 넘는다. 찌는 더위이다. 여름이 왔다. 얼마 전 어둠이 살짝 내린 시간. 바깥으로 나섰더니 어둠 속에 ‘떼창’이 들려왔다. 창문을 닫고 있을 때는 몰랐다. 창문을 여는 순간, 그 소리는 온 산을 물들였다. 온 들판을 적셨다. 개구리들의 합창이었다. 

개구리들이 나왔다는 것은 뱀도 등장한다는 신호이다. 실제 며칠 전 어머니와 아내가 바깥에 있는 수돗가에서 뱀을 발견했다. 독사였다. 독사는 사람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나, 독 품고 있다!’

꽃뱀은 도망가기 바쁜데 독사는 느긋하다. 사람이 다가오면 똬리를 더 틀고 혀를 낼름거리며 사람을 응시한다. 꼬챙이로 툭 건드리면 움찔한다. 도망가진 않는다. 전원주택에 20년 가까이 살면서 매년 우리 집을 찾은 뱀을 잡아 산에 풀어줬던 기억이 난다. 뱀과 동거는 전원에 사는 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몇 년 전에 옆집에서는 사람이 없는 사이 열어놓은 방문으로 집 안까지 뱀이 침투한 적도 있다. 그 뱀은 어쨌든 우리 아버님에게 잡혔는데 그 이후의 운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떼창’으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는 산골 마을의 상징이다. 여름이 다가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 집 정원 곳곳에는 태양광이 설치돼 있다. 어둠이 내리면 하나, 둘 자동으로 불이 켜진다. 어두울 때 켜지고 밝을 때 자동으로 꺼진다. 낮에는 충전하고 밤에는 그 힘으로 불을 밝힌다. 정원 한 켠에 산에서 주워온 나무들로 작은 아치를 만들었다. 그 아치 중간에 태양광을 하나 설치했다. 아치 양쪽으로 넝쿨 식물을 올렸다. 서쪽 하늘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왼쪽에는 피스(peace) 장미를, 오른쪽에는 인동초를 심었다. 피스 장미는 벌써 아치 꼭대기까지 뻗어갔다. 인동초도 열심히 넝쿨을 올리고 있다. 

어둠이 내리고 개구리 소리가 온 산을 울릴 때 개구리 한 마리가 태양광 바로 아래 앉아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이 녀석 또한 도망가지 않는다. 개구리가 위치한 곳은 아치 중간쯤이었다. 뱀이 절대 올라오지 못하는 곳이었다. 가끔 공기주머니를 부풀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 뱀 무서봬서 여기 있는 것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개구리는 한참이나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개구리 위로 피어있는 피스 장미에서는 장미꽃 향기가 휘날렸다. 피스 장미는 향기가 아주 강하다. 그 이튿날, 저녁을 먹고 석양이 진 뒤 다시 마당에 나섰다. 혼자는 외로워서였을까. 이번에 개구리 두 마리가 정답게 태양광 등 지지대에 앉아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다. 낮엔 뜨거운데 산 밑에 있는 집의 장점은 밤이면 시원하다는 데 있다. 산 위에서 찬 바람이 아래로 흘러들어온다. 산속의 시원한 낙엽을 씻은 바람이 한낮 더웠던 대지를 시원하게 적셔준다. 자연 바람이어서 더 상쾌하다.

개구리는 절대 손으로 만지면 안 된다. 우리 몸의 36.5도가 개구리에게는 화상을 입힐 만큼 뜨겁기 때문이다. 개구리가 문을 여는 순간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땐 손으로 잡지 않고 종이나 기타 개구리가 앉을 만한 물건을 찾아 잡는다. 이어 바깥으로 내보낸다. 우리에게는 아무렇지 않은데 개구리에겐 그 무엇보다 뜨거운 게 인간 몸이다. 

밤이 어느 정도 익어가고 밤이슬이 내릴 때쯤 이젠 낭만적 모습을 기다릴 때이다. 우리 집 뒤는 소나무가 울창하다. 작은 나무들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조금 습하다. 그래서일까. 밤이슬 내린 밤길에 반짝반짝 빛을 내뿜는다. 반딧불이다. 이때는 개구리가 앉아 있는 태양광이 방해된다. 얼른 뛰어가 태양광의 센서를 끈다. 태양광이 꺼진다. 순간 짙은 어둠이 우리 집을 감싼다. 그만큼 반딧불이 빛은 더 빛난다. 

반딧불이는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어둠 속에서 ‘반짝’

동무가 한번 반짝이면 덩달아 ‘반짝’

아무도 반짝이지 않으면 나만 ‘반짝’

처음엔 한 마리가 ‘반짝’

이어 두 마리가 ‘반짝’

다음엔 네 마리가 ‘반짝’

어느새 수없이 많은 반딧불이가 ‘반짝, 반짝, 반짝, 반짝’

어둠 속에 우주의 별빛이 태어난다. 

빅뱅의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갑자기 번쩍하더니 

어느새 온 어둠에 별빛이 박힌다.

가만히 앉아 반딧불이의 짝짓기를 보고 있으면 밤이 고요해진다. 이때는 개구리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초저녁은 개구리가 시작하고 늦은 저녁은 반딧불이가 마무리한다. 산골 마을의 여름은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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