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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오 Aug 21. 2018

지구는 중환자이다

[기후변화 WITH YOU]북극 해빙은 기후변화를 알고 있다

2015년 9월 아라온 호를 타고 북극을 취재했다. 당시에도 해빙은 많이 줄어든 모습이었다.


지난해 의료분야를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면서 병원을 대상으로 취재했습니다. 아픈 분들도 많고 이들은 지원해 주는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017년 4월은 면역항암제인 ‘입랜스’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던 때입니다. 한 분이 저에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당시 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방암 진단받았을 때 아이가 겨우 5살이었다. 진단을 받은 후 머릿속은 온통 아들 생각뿐이었다. 남겨두고 가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진통제에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타이레놀 한 알 사용하지 못한 채 11시간 긴 수술과 회복, 8차례 항암 치료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만이라도 옆에 있어주길 바라며 버텼다. 재발과 전이에 대한 두려움은 늘 발목을 잡았다. 다행히 효과가 좋은 신약이 개발됐는데 보통 사람인 우리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약값이었고 우리를 무릎 꿇게 만들고 만다."

당시 이들을 ‘무릎 꿇게’ 만든 것은 입랜스 가격 때문이었습니다. 한 알에 21만 원, 한 달에 500만~550만 원의 약값이 들어가는 고가 치료제였습니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일 ‘입랜스 논란’에 대한 기사를 다뤘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는데 약값 때문에 포기한다면 이는 잘못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 6개월 동안 기획취재는 이어졌고 마침내 2017년 11월1일 유방암 치료제인 '입랜스'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달 평균 500만 원으로 이른바 '미친 약값' 논란을 빚은 '입랜스'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면서 한 달 약 15만 원 부담으로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많은 분들이 환호했고 기사를 써온 저도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치료제가 있는데 돈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다면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지금 지구가 이런 모양새입니다. 지구는 지금 중환자입니다. 입원 치료는 물론 집중 관리가 필요한데 마땅한 주치의가 없는 상태입니다. 모두 방기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구를 돌본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데 그렇지 못합니다. 지구촌 지도자와 각국은 자신의 이익만을 좇으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치료제를 찾고 필요하다면 돈을 들여 ‘죽어가는 지구’를 살려야 하는데 그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북극 해빙은 기후변화를 알고 있다   

  

더 넓은 바다. 북극해는 1년 내내 얼음으로 덮여 있습니다. 북극은 땅이 없습니다. 바다로 이뤄져 있습니다. 매년 3월에 해빙(바다 얼음)이 가장 많고 9월에 가장 적은 규모를 보입니다. 최근 북극의 해빙 규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얼음이 줄어든다고 뭐가 그리 대수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북극 얼음이 줄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구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여름은 여름답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북극 영구동토층이 지구 온난화로 녹으면서 호수 곳곳에서 기포가 발생하고 있다. 품고 있던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로 방출되고 있다.[사진제공=NASA]


즉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워야 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매년 1월에 되면 많은 분들이 자신의 올해 1년 운세는 어떤지 읽어보기도 합니다. 관련 운세를 보면 “7~8월엔 물을 조심하고 11~12월에는 불을 주의해야 한다 '는 대목이 있습니다. 당연하지 않을까요. 뜨거운 7~8월에는 아무래도 물을 자주 접해야 하고, 추운 12월에는 불을 가까이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죠. 

‘여름은 여름답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 말속에는 적당한 더위와 추위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덥고, 적당히 추워야 한다는 바람이 들어가 있는 것이죠. 문제는 앞으로 갈수록 이 같은 ‘여름답다’ ‘겨울답다’는 말이 사라질 것이란 데 있습니다. 올해 여름을 겪어 본 많은 이들이 ‘숨 막힌다’ ‘폭염이다’ ‘가마솥 더위’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여름답다’는 말이 아니라 견디기 힘들 정도의 폭염으로 움직이기조차 버겁다는 것이죠. 갈수록 올해 같은 폭염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여름은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가을이 다가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코스모스가 지나는 차량에 흔들립니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옵니다. 이제 우리는 ‘폭염’을 지나 ‘한파’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2015년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까지 북극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 펴낸 책 ‘사라지는 섬’에도 그때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1980년 이후 매년 9월 북극 해빙이 줄어들고 있다. [자료제공=NSIDC/NASA]


이제 북반구 중위도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 북미 등은 ‘겨울 한파’를 걱정해야 합니다. 북극의 얼음은 1980년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인공위성 데이터를 보면 1980년 9월 북극 해빙 규모는 790만㎢였습니다. 계속 줄어들어 2017년은 480만㎢로 줄었습니다. 1980~2017년까지 9월 북극의 가장 적은 해빙 규모는 2012년이었는데 340만㎢에 불과했습니다. 1980년보다 50% 이상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아직 그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는데 지금과 같은 지구 온난화가 이어진다면 역대 가장 최소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올 겨울 한파 온다     


북극의 해빙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북극이 따뜻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 현상이 날씨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북극에는 제트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해빙이 많을 때는 이 제트기류가 강합니다. 즉 북극의 찬 공기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위도에 있는 곳으로 내려오는 것을 막습니다. 얼음이 적으면 제트기류가 약해집니다. 특히 겨울철에 제트기류가 약화되면 북극의 찬 공기가 이 틈을 타 중위도 지역까지 내려오기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추운 겨울에다 북극의 찬 공기까지 더해져 수은주가 영하 20도 아래까지 떨어지는 한파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올해 폭염에 이어 겨울 한파까지 걱정해야 하는 시간 속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북극은 만년빙과 단년빙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는 만년빙이 녹고 있고 일 년에 얼었다 녹았다 하는 1년빙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진단됐습니다. 이는 그만큼 얼음이 적어지고 짙푸른 바다가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지구 온난화의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즉 얼음은 태양빛을 반사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얼음은 바닷물보다 반사율이 높습니다. 바닷물은 얼음과 달리 태양빛을 흡수합니다. 이렇게 되면 바닷물이 따뜻해집니다. 따뜻해진 바닷물은 다시 얼음을 녹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북극의 얼음이 줄어든다는 것은 ‘겨울 한파’와 ‘온난화 악순환’을 의미합니다.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 증가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8월19일(현지 시간) NASA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북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영상은 조그마한 북극 근처 호수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관련 영상 보기

https://youtu.be/ujwfgKvSVPk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NASA 측은 “21세기 중반에 이르면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가 대기권으로 배출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토양 미생물 등이 유기물을 먹으면서 온실가스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앤소니(Katey Walter Anthony) 알래스카대학 교수는 “북극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대규모 탄소가 배출될 것이란 것은 200~300년 뒤에 찾아오는 일이 아니다”라며 “내가 죽기 전에,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할 거이고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몇십 년 안에 최고치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수 세기 동안 북극 영구동토층은 대규모 탄소를 저장하고 있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탄소 저장고가 분출하는 시기에 우리 지구는 지금 직면해 있습니다. 

인류는 그동안 지구를 괴롭혀 왔습니다. 야금야금 자원을 빼먹고 울창한 숲을 없애 지구가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지구는 지금 중환자입니다. 병원에 눕혀 집중 치료를 해도 모자랄 판에 여전히 인류는 지구를 괴롭히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구촌 전체가 나서야 합니다. 이대로 둔다면 지구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호흡을 중단할지도 모릅니다. 

                                   

2015년 9월 북위 77에서 찍은 해빙. 북극 얼음 규모가 줄어들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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