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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오 Jul 07. 2021

그 많던 벌과 나비는 어디로 갔을까

[기후변화 WITH YOU] 지구 가열화로 벌과 나비 급감

제가 사는 곳은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입니다. 경기도 여주시입니다. 서울에서 그나마 떨어져 있다 보니 공기는 맑고, 산과 들판에는 초록으로 가득합니다. 겨울지나 봄 오면 개구리 소리가 밤새 시끄럽고, 봄 가고 여름 오면 짙은 수목이 우거지는 곳입니다. 여름 가고 가을 오면 코스모스와 누른 들판이 이어지고, 가을 가고 겨울 오면 앙상한 나뭇가지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곳입니다. 창문이 액자가 돼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담아냅니다. 사계절의 변화하는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2000년 내려왔으니 벌써 21년이 지났습니다. 봄이 오면 온갖 꽃들이 피어납니다. 꽃이 있으니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몇 년 전에는 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였습니다. 수천,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윙~윙~’하는 소리를 내면 귀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우리 집에는 커다란 헛개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벌들은 특히 헛개나무 꽃을 좋아합니다. 덕분에 매년 우리는 수북한 헛개나무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벌과 나비가 마당에 많았는데 최근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눈에 띄게 많이 줄었습니다. 벌은 그나마 볼 수 있는데 나비는 한 마리 정도만 날아다니거나 아예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 많던 나비와 벌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 달라진 모습은 우연일까요? 아니면 우연을 지나 이제 추세와 흐름이 되는 것일까요?


나비와 벌이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지구 가열화(heating)로 곤충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서를 앞다퉈 내놓고 있습니다.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곳은 생태계입니다. 이미 여러 보고서에서도 언급되듯 우리나라 수목 한계선도 점점 북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재배하던 사과나무 등이 점점 북상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젠 경기도에서도 사과나무를 재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심지어 열대 과일인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도 우리나라에도 대량 재배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평균온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온 변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기온 상승으로 특정 생물의 암수 균형이 무너져 결국에는 해당 종이 멸종할 것이란 분석 보고서도 있습니다. 2세를 번식할 때 암수 균형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균형으로 대를 이어 번식하고 생물종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죠. 최근 보고서는 절망감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기후변화 측이 연구한 것을 보면 암컷 바다거북이 새끼를 낳으면 둥지를 트는 해변 모래 온도 정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둥지의 모래 온도가 섭씨 31.1도이면 암컷 녹색 바다거북만 부화하고 섭씨 27.8도 이하에서는 수컷만 부화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지구 평균온도가 높아지면서 해변 모래 온도도 치솟고 있습니다. 수컷이 부족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모든 게 적당하고 정상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바다거북의 성별 균형을 무너트리고 있는 것이죠. 특정 성별만 태어난다면 해당 종은 더는 번식이 어려워 끝내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2021년 3월 과학 매체 사이언스에는 미국 네바다대학의 포리스터(M. L. Forister) 생물학부 교수 등이 쓴 ‘미국 서부에서 나비 개체 수가 줄었다(논문명: Fewer butterflies seen by community scientists across the warming and drying landscapes of the American West)’는 논문을 실었습니다. 논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서부에서 건조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나비가 줄었다는 내용입니다. 같은 날에 사이언스 지는 ‘따뜻해진 가을, 더 적은 나비들(Warming autumns, fewer butterflies)’이란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지구 가열화로 전 세계 나비와 벌 급감


사이언스지에 실린 관련 논문과 기사를 보면 미국 서부 지역에서 나비 개체 수가 연간 1.6%씩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온도가 높아진 지역에서 나비 개체 수가 줄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온도 상승이 나비에게 생리적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발달과 동면 준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비는 온도변화에 민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조그마한 온도변화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이 때문에 번식과 생육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앞서 2015년 과학 매체인 네이처 지에는 ‘기후변화가 벌 개체 수를 무너트린다(논문명: Climate change crushes bee populations)’는 논문을 실었습니다. 캐나다 오타와대학의 생물다양성 연구원 제레미 커(Jeremy Kerr) 박사는 논문에서 “유럽과 북미 전역의 호박벌 종은 대륙 규모로 감소하고 있다”며 “분석한 데이터를 종합해 보면 기후위기가 이 추세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제레미 커 박사는 ‘대륙 규모로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특정 지역에서 우연히, 아주 특별하게 발생하는 게 아니라 전 대륙에 걸쳐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벌과 나비가 사라진다고 인류에 큰 영향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벌과 나비가 멸종되면 인류에게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벌과 나비가 완전히 사라지면 인류도 멸종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벌은 꽃가루 목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꽃잎 속에 파고들어 수술의 화분을 잔뜩 묻혀 암술머리에 붙입니다. 꽃에 들어갔다 나온 벌은 온몸이 수술의 꽃가루로 범벅입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벌 한 마리가 꽃가루에 들어가 이곳저곳 훑고 지나갑니다. 그 벌에는 온갖 꽃가루가 묻어 암술머리에 붙입니다. ‘꽃가루 목욕’을 실컷 즐기는 벌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통해 벌은 이른바 가루받이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벌의 가루받이(수분)로 식물은 열매를 맺고 인류에게 맛있는 열매를 공급합니다. 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참외농장 등에서 ‘꿀벌 수정’이란 문구를 본 적이 많을 겁니다. 꿀벌은 이처럼 농부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일꾼’입니다. 꽃은 수정이 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벌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나비와 벌 등 곤충과 동물의 개체 수 급감에 대해 살충제를 많이 사용해서, 천적이 많아져서, 환경이 변해서 등의 여러 이유를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유로 벌과 나비가 줄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엔 이 같은 배경과 함께 지구 가열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유엔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2016년 유럽에서 벌과 나비 종 가운데 9%가 멸종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인간이 먹는 작물의 63%가 꿀벌을 통해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들어 야생벌 약 2만종에서 40%인 8천여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2017년 5월 20일, 유엔은 이날을 세계 꿀벌의 날(World Bee Day)로 정했습니다. 특정한 날을 정할 만큼 벌 개체 수가 전 세계적으로 급감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또 어떤 곤충의 날을 기념해야 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무슨 무슨 날을 지정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닙니다. 멸종위기에 있는 동식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입니다.        

지구 가열화는 동물과 곤충 개체 수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벌과 나비가 사라지면 작물의 수분에 영향을 미쳐 세계 식량 공급에도 부작용이 일어날 것은 눈에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인간 활동으로 빚어지고 있는 지구 가열화가 동물과 곤충, 식물에 영향을 미치고 이제는 그 부작용이 다시 인간에게로 고스란히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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