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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정원 파란 Jun 23. 2021

첫 다이빙의 기록, '이제는 바다의 시간이다'


어머니 말씀으로 할머니는 제주 소섬(牛島)의 상군 해녀였다. 고무 옷, 물안경, 납덩이만 의지한 채, 테왁과 망사리를 지고 수심 20미터 물속을 한숨에 내려갔다. 할머니의 가슴팍보다 큰 다금바리, 돌돔, 벵에돔을 작살로 쏘고 소라, 오분자기, 전복을 곧잘 잡아 오셨다. 그런 할머니가 잠수병으로 오래 고생하셨다. 귀는 먹먹해 말귀를 알아먹은 지 오래고, 머리의 어지럼증이 심했다. 진통제 ‘뇌선’을 밤낮으로 달고 살았다. 나는 할머니와 대화할 때 말을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 입 모양만 보고도 할머니는 손자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아듣곤 했다. 제주 해녀의 일생은 그냥 참는 것이다. 고막이 찢어져도, 두통이 무겁게 찾아와도, 무릎 연골이 물러져도, 해녀는 잠수의 고통을 그냥 참았다. 다이빙의 기본인 ‘압력평형’만 했어도 그리 아프지 않았을 것을.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바다는 선택도 거부도 할 수 없는, 지긋지긋하지만 고마운 삶 그 자체였다. 그 바다에 당신의 손자와 아들이 들어간다.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백두대간 큰 고개인 미시령을 넘어 설악의 어깨인 공룡능선과 울산바위를 비켜서면 속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이내 고성 땅이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 포구의 아침이 긴 방파제를 따라 밝아온다. 칼바람 부는 아야진의 겨울 포구는 담백한 맛의 도루묵, 새끼줄 엮어 늘어진 뜨거운 양미리 구이와 함께 시작된다. 동해안에 찬 바닷물의 세력이 강해지면, 산란을 위해 알이 꽉 찬 양미리 떼가 연안에 몰려든다. 모래 바닥에 자리 잡은 양미리를 찾아 나선 갯것들과 또 다른 상위 포식자들이 줄줄이 입성한다. 물메기, 대구, 조피볼락, 그리고 대형문어. 아야진 사람들은 바다가 준 선물을 하나둘 세상 사람에게 열어 보이며, 이리저리 흥정을 시작한다. 분주한 포구의 아침이다.     



내 생애 첫 다이빙 장소는 바로 이곳, 아름다운 아야진이다. 아야진은 동해 제일경으로 당대의 시인들이 음미했던 청간정과 동해안 석호 중에 손꼽히는 송지호 사이에 있다. 첫 다이빙 장소는 청간정 아래 18미터 바닷속이다. ‘에코핀(eco-fin)’의 ‘에코 다이빙(eco-diving)’. 우리 팀은 에코 다이빙이란 말조차 없던 그 시절, 우리 스스로 에코핀으로 명명하고 입수를 시작한다. 육지와 똑같이 바닷속에도 언덕이 있고, 높은 산이 있으며, 계곡에는 차가운 물이 흐른다. 계곡을 따라 물결이 일고 바람도 분다. 수심과 수온, 지형에 따라 생물의 모양새가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도 같은 게 없다. 형태와 색, 움직임이 모두 제각각이다. 먹을거리 채집이나 단순한 레저활동을 넘어 그 세계를 오롯이 바라보고 싶었다. 생물학 강의실이 아니라 생명의 현장에 몸을 두고 싶었다. 바닷속 생물들이 왜 이 시기에, 이 자리에서, 왜 이러한 행동을 하느냐 궁금했다.     



잠수 중 내뱉은 공기 방울은 수면으로 떠 오르며 점점 큰 원으로 부풀어 올랐다. 허리에 차고 들어간 10kg 납덩이 벨트는 수심이 깊어질수록 헐렁해졌다. 수압이 높아지면 내 몸도 쪼그라들고, 반대로 수압이 낮아지면 내 몸은 팽창되었다. 호흡이 거칠어 허우적거리고 중성부력을 잡지 못해 오르락내리락거리기 일수였다. 성급히 수면으로 떠 오르니 콧속의 실핏줄이 살짝 터져 옅은 피가 맺혔다. ‘에코 다이빙’을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내 한 몸 챙기기조차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바다는 첫 다이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물보다 강한 것이 없다. 다리와 팔을 물살에 맡기고 순응하며 부드럽게 살펴야 한다. 물의 흐름을 알아차리고, 수압에 따른 부피와 밀도의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 몸의 변화를 차근히 돌아보며, 귀의 압착에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잠수병의 무서움을 알고 정해진 원칙에 따라야만, 물속 세계와 충격 없이 만날 수 있다. 첫 다이빙의 교훈은 자만을 버리고 침착하고 겸손해지는 것이었다. 지난 세월, 할머니의 잠수병은 바다의 수압을 온몸으로 견디면서 발생한 병이었다. 첫 다이빙으로 먹먹해진 귀는 일주일이 지나도 풀리지 않았다.      



낮의 일상, 밤의 술잔만 알고 있던 나에게 첫 다이빙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경이롭기도 또 걱정되기도 하였다. 별불가사리는 다리를 쭉 펴고 바위 위에 올라 있고, 아무르불가사리는 온 다리를 오므리고 먹이활동에 바쁘다. 바위틈 노래미는 두 눈썹을 세우고, 뿔물맞이게는 해초로 위장한다. 있는 듯 없는 듯 모래바닥의 양미리는 완전한 보호색을 띠고 낯선 다이버의 몸짓에 한 발짝씩 무리 지어 앞서 나간다. 갯녹음의 영향으로 바위의 일부는 석회조류로 덮였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보라성게는 서식지를 넓혔다. 얕은 지식으로 의문투성이 바다지만, 그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 알 수 없는 물풀들과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는 그 작은 생명. 바다는 때론 경쟁으로, 때론 조화로 서로를 의지한다. 학창 시절 빨간 양파망을 메고 조간대 하부의 해수면을 따라 담치를 따던 기억이 물속에서 떠올랐다. 들숨과 날숨, 호흡 소리만 남은 곳에서 괜한 절대 고독을 즐겼다.     


바다. 풀어야 할 숱한 난제와 의문이 공존하는 곳. 나 이제, 물속에 존재한다. 그렇다, 이제는 바다의 시간이다. 붉은 빛이 사라진 바닷속 20미터, 참 푸르기도 하다. 2004년의 12월 겨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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