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옹이버스 Apr 09. 2020

바른 마음 - 조너선 하이트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나의 옮음과 그들의 옮음은 왜 다른가'

정말 세상의 진리와 같은 발제 아닌가. 거창한 낚시와도 같은 발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충실하게 대답을 해주는 책이었다.


아래는 내용 정리.


1.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

코끼리위에 기수가 올라탄 모습이고 기수는 코끼리를 시중드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선천적, 후천적, 혹은 경험에 의해 합리적으로 '도덕'을 구축해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합리란 없다.

오히려 합리적 추론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필요하고, 머리는 가슴없이는 일을 해내지 못한다.

오래토록 플라톤(이성 만세)의 논리를 당연시 해왔고, 제퍼슨(이성과 감정은 파트너)의 논리로 한발짝 발전했지만, 사실은 흄(이성이 열정의 하인)이 정답이다.

이성을 신봉하는 것은 있지도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판단(보이는 대로 인지과정)과 정당화(이유를 찾는 인지과정)는 별개이고, 판단은 직관(코끼리)이 하고 이성(기수)이 그 판단을 정당화하려고 애를 쓴다. (우리는 알지도 못한 새)

따라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싶으면 상대방 안의 코끼리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갈등과 관련한 성공의 비결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데 있다. 공감이야말로 서로가 바르다는 확신을 녹이는 해독제다.

코끼리가 기수에게 귀를 기울일 때는 주로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환경변화)을 통해서이다. 스스로도 방향을 틀 방법이 있는데, 결정전에 대기하는 것이다. 기수에게 시간을 주면 코끼리를 통제하기도 한다.


다만, 추론(기수의 역할)에도 두종류 - 탐구적(곰곰생각) 사고 & 확증적(합리화) 사고 - 가 있는데, 우리는 특별한 조건이 아닐 경우는 거의 확증적 추론을 한다. 올바른 사람이 되기보다는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

그럼, 왜 우리는 판사나 과학자가 아닌 변호사를 발전 시킨 걸까. (왜 우리의 이성은 변호사밖에 안하고있나) 그 이유는, 생존에 중요한 것은 진실보다는 평판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윤리적 사회를 건설하는데 가장 효율적 방법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평판을 목숨걸고 관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2.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바른 마음은 여섯가지 미각수용체와 같다

철학과 체계, WEIRD 권에 치우쳐 있다. 사실 이 세상은 더 많은 카테고리의 도덕을 가지고 있다.

슈웨더는 도덕을 자율성-공동체-신성함으로 확장했으나, 저자는 더 나아가 6가지로 확대하고자 한다.

저자의 제안은 - 배려/피해 , 공평성/부정 , 충성심/배신 , 권위/전복 , 고귀함/추함 , 자유/압제 - 이다.

다만, 도덕 매트릭스는 사람들을 묶어주지만 다른 논리를 못보게 하는 면이 있으므로 이 안에 몰입되어 있으면 안된다.


가장 잘 떠오르는 도덕의 측면인 '공평성' 사실은 성향에 따라 둘로 나뉜다. 좌파의 공평성은 평등의 의미이고, 우파의 공평성은 비례의 원칙이다.

도덕 매트릭스에 있어, 좌파는 배려-공평성 기반에 주로 기대는 반면, 우파는 충성심-권위-고귀함까지 다섯가지 기반을 모두 활용한다. 즉, 유권자 접근법도 더 풍부하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우파가 좌파를 이해하는 것보다 좌파가 우파를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뜻도 된다.


시골과 노동계층은 공화당의 농락에 넘어가서가 아니라, 사실은 자신들의 도덕적 이해에 따라 투표하고 있는 것이다.



3.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

인간은 90퍼센트는 침팬지이고 나머지 10퍼센트는 벌과 같다

우리는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곧잘 이'집단'적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성인(훌륭한사람)은 못되어도 훌륭한 팀플레이어가 될 수는 있다.


인간의 집단 형성 능력은 사회적본능 + 호혜성 + 동료들의 칭찬과 책망 + 의무나 원칙을 신성시하는 능력에서 왔다.

다윈은 도덕성이 적응으로 부터 생겼다고 하면서, 개인적-집단 차원(다차원선택)에 동시에 작용했다고 했고, 윌리엄스, 도킨스는 집단선택으로는 무임승차가 해결안된다고 했으나,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이 다차원 선택 개념을 가져와야 인간의 이기적 & 이집단적인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차원 선택이 맞다는 증거는 (1)진화상의 변화, (2)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리기(공통된 의도파악),  (3)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 (4)진화는 빠른 속도로 일어날수 있음에 있다.


'이집단적' 인 사람으로 변신하게 하는 '군집스위치'가 켜지면, 성스러운 영역에 빠져들게 된다. 시의적절하게 켜지면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

군집스위치를 켜는 방법엔 (1)자연에 대한 경외심, (2)환각제, (3)레이브 파티 가 있다


'군집'의 맥락에서, 회사는 어쩌면 수많은 개인의 무리를 개인으로 인정한 사례이고, 이제 국가를 제외하면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왔다. 곧 국가도 통제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는 믿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믿음-소속감-행위(뒤르켐주의 모델) 세 요소를 한꺼번에 살펴야 하며, 그렇게 접근할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종교적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신무신론(종교의 종말,만들어진 신, 주문을 깨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 : 초고감도 동인 감지장치의 부산물 + 복잡한 증명으로 주장함)은 '신' 에 포커싱하는데, 이는 럭비공의 움직임을 보고 대학 럭비 시합의 영속성과 열정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실제로 종교는 집단의 단결력 높이고, 무임승차 문제 해결하고, 집단차원 생존경쟁에서 승리를 도왔다. 

관련해서, 집단에서 희생(규율, 봉사 등)이 더 요구될수록 집단은 더 많이 더 오래 생존하는 놀라운 사실도 발견됬다.

종교가 이루는 선행은 '동료 종교인과 얼마나 단단히 얽혔나' 와만 연관성이 있다. 이웃을 사랑하는데 중요한 것은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종교적 소속감'이었다.


한 개인이 진보와 보수로 갈라지는 단계는 (1)유전자, (2)특성에 따라 다른 길을 걷는 아동기, (3)삶의 서사이다. 진보와 보수의 삶의 서사는 각각 매우 호소력이 있으나 서로 이해가 안되는게 당연할 정도로 다르다.

보수의 핵심은 최상의 사회를 만드는 것, 3가지 생각 - (1)인간은 불완전하므로 제제가 필요, (2)이성적 추론 능력은 결함 투성이므로 이성으로만 이론 세우면 안됨, (3)제도는 존경과 신성함이 더해져야 더 효과적 - 을 바탕으로 한다. 보수, 나쁘지 않다.

진보는 적정선을 넘는 경향이 있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바꾸려하고, 도덕적 자본(가치, 미덕, 규범, 관습, 정체성, 제도, 첨단기술, 이와 맞물린 심리기제을 말하며,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여 협동적 사회가 만들어지게 함)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보수는 도덕적 자본은 잘 지켜내지만, 특정 계층의 희생자를 못보고, 모종의 이해관계로 인한 약탈을 제어 못하고, 시대 변화에 맞춰 제도를 고칠 줄 모른다.

보수건 진보건 자칫해서는 상대에 대해 눈이 머는 것은 마찬가지, 상대가 신성시 하는 것을 따라가보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


서로 잘 지낼 수 있게 함께 노력해보자.

우리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잖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2019년 독서 결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