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tzmann’s Atom by David Lindley
볼츠만의 원자 Boltzmann’s Atom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88907498
'역지사지'는 이론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쓰기는 쉽지 않은 방법론이다.
- 지나고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 그 당시에는 결코 판단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었고,
- 타인으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그 사람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커다란 사건이었고,
-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10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묘한 일이었다.
나에게 '볼츠만의 원자'는 고전 물리학의 폭풍과 같았던 시기를,
볼츠만을 통해, 가볍게나마 역지사지해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
원자에 대한 고민은 기원전 371년 '데모크리토스'로부터 시작된다. 그 후 9세기, 13세기에도 조금씩 언급되다가,
- 1845년 존 워터스톤, '열의 기체 운동론'
- 1857년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열이라고 부르는 운동'
- 1860년 제임스 클럭 맥스웰, '원자의 속력 분포 표현식, 그래프'
- 1868년 24세 루트비히 볼츠만, '맥스웰-볼츠만 분포'
- (1903년 깁스 '통계역학' 완성)
에 이르기까지 진전된다.
볼츠만의 독창성은,
맹목적으로 원자 존재를 인정하고 확률론적 방법을 사용하면 당시 풀리지 않았던 많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천재적으로 직관해 낸 것이었는데,
기계적으로 증명을 해야만 했던 시기에 확실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확률을 도입한 것이다.
(뭔가 비유를 하고 싶은데 적당한 게 떠오르지가 않네 -ㅠ-)
말하자면 '이론물리학'의 시대를 볼츠만이 열어젖힌 것이었는데,
결국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원자가 증명되기 전까지, 끊임없이 반대파에 의해 공격받고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예를 들면 이렇게...
- 현재 드러나고 있는 여러 징후로 보아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던 원자론도 결국엔 폐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by 1882 플랑크
- 기체 운동론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훌륭한 물리학적 통찰력과 수학적인 재능(볼츠만 것)은 얻어진 결과의 성과만으로는 충분히 보상될 수 없다(쓸데없는 데 재능 낭비했다는 얘기) by 1891 플랑크
당시에 어떻게 상대를 지적으로 디스 했는지 분위기가 살짝 느껴진다 ㅎ
이런 발표를 들으면 부글부글 했겠지 :)
특히나 지독하게 볼츠만을 공격했던 에른스트 마흐(마하라고 하는 속도 단위의 그 마하 임)도 참 흥미로운 인물이다.
- 수소와 산소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수소와 산소가 물을 구성한다거나, 물이 수소와 산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은 이성의 범위를 넘어선다. by 마흐
마흐의 이 주장은 예를 들면, 어찌 보면 '확실한 것’을 병적으로 추구하는 데서 나오는데,
곰인형이 장막 뒤로 사라졌다가 다른 쪽으로 나타나면 그 곰은 이전에 사라진 곰이 아니라 새로운 곰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책에서 설명한다.
사실 '이 곰은 어떤 곰인가' 테스트는 취학 후의 성장 단계에서 자폐를 측정해보는 테스트로도 쓰이는 것인데,
현재 의학 지식으로 판단해보자면 마흐는 자폐 스펙트럼 중 하나인 아스퍼거 증후군(천재 혹은 자폐?)이 아니었을까 싶다.
돌아보면, 그 당시에는 볼츠만 보다는 마흐의 주장에 과학자들의 마음이 실리는 것도 당연하다 싶고,
(근거가 희박한 이론적 허구를 따를 수야 없잖아)
지금 평가하기에도 마흐같은 과학자들이 있었기에, 볼츠만도 계속해서 이론을 발전시켜갔을 것이기에,
마흐의 역할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어쨌거나 볼츠만은,
클라우지우스/맥스웰과 함께, 과학으로 인정받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세상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기체 운동론, 전자기학, 통계역학 등의 최초의 위대한 이론 물리학 성과를 이뤄내는 길을 닦았고,
그렇게 깔아놓은 개념이 있었기에,
이후,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이 등장했을 때, 중성미자/양전자/쿼크 같은 입자의 존재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
'그런 제안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고 마흐처럼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론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이것이 바로 볼츠만의 업적이고 마흐와 벌였던 힘든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였다.
볼츠만의 투쟁이 없었다면,
예를 들어,
우주가 11차원 세계의 초끈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정당한가 가 아니라 유용한가, 그 개념이 새로운 빛을 가져다줄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하는 지금의 환경은 더디게 마련되었을 것이다.
볼츠만은 안정과 합의 따윈 없었던 소용돌이 같은 고전 물리학이 정립되던 시대를 오롯이 겪었고,
자살은 낭만적이고 존엄한 것이라고 여기던 시기&장소에 살다 자살했고,
사후 몇십 년이 지나서야 버려져 있던 묘에서 이장되어 그의 공식 S = k log W 가 적힌 기념비도 마련되었다.
- 지금은 당연한 원리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 세상은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 그것을 하나하나 밝혀가는 걸음들이 얼마나 보람찬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
- 우리의 지금 시대도, 미래에 돌아보면 그런 시대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 지금 내 주위에서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 하… 정말 그렇군!
볼츠만이 쓴 시가 있다.
자신이 죽은 후, 천국에 올라가서 듣게 될 천사의 음악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 시라는데...
- 나는 곧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오, 순수하고 부드러운 소리여!
- 그렇지만 천사들에게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 내 귀에는 그들의 노래가 지루하게 들리기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 있는 천사라면 뛰어난 음악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볼츠만,
독창적인 그리고 피곤했던 삶을 살아낸 그 답다.
공식으로만 알았던 볼츠만, 그의 고민과 아픔과 환경을 따라 읽고 보니,
볼츠만의 공식이 그냥 공식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