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낙엽을 주워야죠

붙잡고 싶은 기억들

by 초록테이블

가을이 오니 매일 지나는 길도 새롭게 보인다. '나 오늘 조금 꾸며봤어!' 하며 눈웃음을 흘리는 다정한 친구의 모습 같다. 빨갛게 노랗게 다른 색을 입은 이파리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내려온다. 떨어진 낙엽들은 산책길을 레드카펫으로 만들었다.


가을은 눈도 손도 바빠지는 계절이다.

낙엽을 줍는 일은 어린 시절부터 꾸준하게, 어쩌면 취미라고 부를 수도 있을만한 일이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끔 옛날에 보던 책을 무심히 펼쳐보면 그 안에 바래진 낙엽이 고이 누워있다. 남들보다 걸음이 빠른 편이라 '무슨 급한 일 있어?'라는 질문을 자주 듣지만, 가을이 오면 걸음이 느려진다. 화려한 나무와 높은 하늘을 올려다봐야 하고, 길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도 살펴야 한다.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다고 중얼거린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작은 낙엽을 주워 책 사이에 아니면 노트 사이에 끼워둔다. 원래 외출할 때마다 책과 노트는 항상 챙기긴 하지만, 특히 가을에는 필수품이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 중에서 좀 뚱뚱하다 싶으면 가을에 읽은 책이다. 뭘 이렇게나 많이 주웠나 싶어 웃음도 나지만, 책장을 펼쳐 잘 말려진 낙엽을 발견하면 그때의 가을이 보이는 것 같다.



19년 10월, 현충원에 가서 주워 온 것들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하얀 A4용지를 펴고 낙엽과 열매와 솔방울을 여기저기 놓는다. 작은 나무 한그루가 되었다. 엄청 뿌듯해하며 사진을 남겼다. 이런 걸 좋아하는 내가 너무 철이 없나 싶다가도, 자연을 사랑하고 가을을 좋아하기 때문인 거 아닌가 하며 으쓱한다. 이 사진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현충원에 다녀와 만든 나의 작품


몇 년 전 가을, 가족과 손을 잡고 남산으로 향했다. 온 세상이 환한 빛으로 가득 차 눈이 부시다. 나와 아이는 천천히 걷다가 어느새 쪼그려 앉는다. 거의 오리걸음으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여보, 뭐 해?" 남편이 묻는다.

"낙엽 보고 있는데?"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핀잔 섞인 대답을 한다.

"엄마, 이거 봐. 엄청 예쁘지?"

아이는 이미 정신이 팔린 지 오래다. 예쁜 게 너무 많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어느새 아이의 책이 두툼해진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출근한 남편은 동료들과 단풍놀이 다녀온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리고 푸념 같은 남편의 말에 동료들이 웃었단다.

"저희 집은요, 남산에 가면 이동을 못해요. 한걸음 걷다가 주저앉고 또 한걸음 걷다가 주저앉고 그래요."


아이가 주워 온 가을의 흔적들


아이에게 가을을 한 아름 받은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어린이집 하원길, 아이가 상기된 목소리로 종알거린다.

"엄마, 내가 엄마 주려고 꽃을 많이 가져왔어!"

무슨 꽃을 가져왔다는 건지 궁금해하는 나를 보며 아이가 당당한 자세로 어린이집 가방의 지퍼를 연다. 가방 안에는 온갖 낙엽이 한가득이다. 본인 몸뚱이만 한 플라타너스 낙엽까지 챙겨 왔다. 순간 많이 당황했고, 많이 행복했다. 그래. 낙엽은 가을에 만나는 꽃이지.


누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늘 봄과 가을 중에서 고민하곤 했다. 싱그럽고 소란스러운 봄도 예쁘고, 조용하고 여유로운 가을도 좋다. 일단 오늘은 가을이다. 오늘 주워온 낙엽은 노트 사이에 끼워 꾹 눌러두었다. 내일은 가을에 읽기 좋은 책을 들고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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