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고 싶은 기억들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는 몇몇 친구를 보며 열패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하루는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는 친구를 보러 간 일이 있다. 시급이 1500원 정도라고 했다. 간단한 간식을 시켜놓고 구석에 앉아서 음료를 따르고 박스를 정리하는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친구는 이미 어른이고 나만 청소년에 머물러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부러웠지만 용기는 없었다. 부모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을 용기도 없고, 공부할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할 자신도 없었다. 그 친구가 흥미로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경제적인 이유였는지 그때 물어보지는 못했다.
나도 스무 살이 되고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교내 근로장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학과사무실에서 사무보조를 하는 일이었다. 오전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학교에 가서 수업에 필요한 빔프로젝트를 설치하고 칠판과 분필을 정리했고, 학과 사무장님의 모닝커피를 탔다. 공강시간에는 복사를 하거나 교수님께 서류를 전달하는 등의 심부름을 했다. 학교에 있는 시간 중간중간에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운 데다가 학과소식을 빠르게 알 수 있고 선배들 얼굴도 익힐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힘들었던 건 단 하나, 점심식사 할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서 일주일에 세 번은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김밥을 먹어야 했던 거다. 그 와중에 건강을 생각한다고 육개장 대신 사리곰탕면을 먹었다. 그때 하도 많이 먹어서 지금은 안 먹는다.
주말에는 카페와 식당에서 일을 했다. 처음 일해본 카페는 코지한 느낌의, 이름이 코지인 2층 카페였다. 주방에는 너무나 능숙한 이십 대 후반의 언니가 있었고, 언니의 눈치를 보며 이쁨을 받기 위해 애쓰며 일했다. 이쁨을 받고 싶었던 이유는 커피를 만들어보고 싶어서였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커피를 만들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다. 커피는 전문적인 영역이라고 언니가 꼭 직접 만들었고 나는 커피를 제외한 모든 음료를 만들었다. 열심히 휘저어야 하거나(아이스티) 열심히 흔들어야 하는(휘핑크림 만들기) 것들은 내가 다 했는데, 가끔 파르페를 주문하는 손님이 여러 명 오는 날이면 꽝꽝 언 아이스크림을 푼다고 다음날까지도 어깨가 뻐근했다. 그런 날에는 언니의 모습이 더 우아해 보였다.
냉면 전문점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순전히 냉면을 많이 먹고 싶다는 이유였다. 하루 열 시간을 일하면 두세 번 정도 식사를 하게 되는데 정말 원 없이 냉면을 먹었다. 직원을 위한 밥을 따로 해주셨지만 나는 일 년이 넘도록 매끼 냉면만 먹었다. 질리지 않은 것을 보니 정말 맛집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사장님은 정직원이 있었지만 나에게 은행 업무를 보게 했고 직영점 매니저를 해보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고 느낀 시간이었다. 난 여전히 냉면을 좋아한다.
엄마가 아르바이트를 왜 이렇게 많이 하는지 물어보면 '재미있어서'라고 대답했다. 재미도 있긴 했지만 사실 돈이 넉넉하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토익수업도 듣고 싶었고 중국어학원도 다니고 싶었다. 책도 사보고 싶고 친구들이 같이 피자를 시켜 먹자고 하면 1/N도 해야 했다. 엄마에게 돈이 부족하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난 청소년이 아니고 성인이니까.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한 덕분에 돈도 모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즐겁게 배웠다. 하고 싶은 것을 내 힘으로 한다는 것은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바빴던 스무 살의 나는 단 한순간도 지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연애를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