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고 싶은 기억들
어린 시절 집 만들기 놀이를 그렇게 했다. 주요 재료는 우산, 이불, 의자, 책, 박스였다. 우산을 펼치고 공간을 만들거나, 이불이나 머플러 같은 것을 테이블이나 의자에 묶고 공간을 나눈다. 동생과 나는 거실에 각자의 집을 만든 다음, 할 말이 있으면 '띵동' 초인종 소리를 내고 허락을 받은 후에 서로의 공간에 들어갔다. 집을 만들고 나면 시간을 보낼 것들을 끌고 온다. 인형이나 책, 간식을 챙겨 오고 베개를 베고 누워 여유롭게 나만의 공간을 즐긴다.
좀 더 커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굳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책을 읽고, 어두운 책상 아래에 들어가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이 습관 때문에 눈이 나빠진 것 같다.
내 방이 생긴 건 아이러니하게도 집 형편이 기울고 나서였다. 새로 이사한 집은 방이 세 개로 늘었지만, 조금 많이 어둑한 편이었다. 나는 열두 살에서 열세 살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남동생과 방을 분리해야 할 때이기도 했다. 내 방은 동생방을 거쳐서만 들어갈 수 있는, 처음부터 '방'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아니었다.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곳인지 비가 오는 날이면 빗방울이 쉴 새 없이 소란스럽게 굴었다. 처음 후두두둑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던 날, 한숨도 자지 못했다. 긴 비가 몇 번 오고 나니 벽이 축축했다. 수건을 들고 젖은 벽을 닦으면서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다.
어떤 상황이든 나는 그저 내 공간이 있는 것에 충분히 만족했다. 내 공간으로 들어가서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꼈다. 웃는 것은 아무 데서나 할 수 있었지만 우는 것은 내 공간이 필요했고, 나의 슬픔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었다. 누군가가 함부로 뱉는 말들에 상처받던 시절이었다. 가난은 불행이 아니었다. 나를 불행하게 한 것은 돈의 유무로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맑은 날을 기다리며 시 같은 것을 썼고, 부치지 못할 편지를 썼다. 빼곡하게 채운 노트는 보물이라도 되는 양 책상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몇 번의 이사를 했고, 그 노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내 공간을 가진 그때가 슬픔의 한 조각이지만 난 여전히 그 시절을 붙잡고 싶다. 그때의 슬픔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