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온 걸까...

슬기로운 유배생활 in Michigan

by 마이너리거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완성하지 못한 글들을 한가득 저장해두었는데 하나의 큰 파도가 일자 모래알에 씌여진 잔잔한 일상들은 다 쓸려가 버렸다.


처음부터 미국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던 둘째의 학교 생활을 알아버렸다. 유일하게 반에 한 명 있는 한국인 친구가 전학을 가게 되어 "친구 전학 가면 어쩌지?"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아이에게 전했더니 "괜찮아 이제 나한테 아무도 말 안 걸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 심지어 그 한국인 친구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단 사실조차 함구하고 있었던 아들.


3개월이 지나는 동안 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니 다그치려고 하다가 그동안 엄마인 나는 무얼 했는가 아찔한 반성이 들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기질이 내성적이고 불안이 높은 아이임은 알고 있었지만 곧 나아지겠지라고만 생각했던 무던한 내가 원망스럽다.


언젠가 금쪽이에서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아이를 보았다. 어릴 적 엄마 아빠를 따라 영국에 갔다가 한국으로 복귀한 금쪽이는 학교에서 입을 꾹 닫아버렸다. 융통성이 없고 승부에 집착하고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으면 오히려 미리 포기하는 모습까지 둘째가 겪고 있는 느낌과 매우 유사했다. 금쪽이에게 언어는 큰 장벽이었을 터 영어도 모국어도 스스로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소통의 물꼬를 트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우리 아이의 성향과 매우 비슷한 아이를 다시 곱씹으 보는데 머리가 지끈거린다.


미국에 올 때 아이들이 가질 장점을 생각 안 한 건 아니지만 이유는 전적으로 나였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일시정지든 새로운 시작이든 지금 재생되고 있는 내 삶을 도피하고 싶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있는 것이 나았다. 물론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매우 딸렸고 힘들었지만 우울하다거나 돌아가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 들었다 아침에 눈 뜨고 자기 전까지 집안일 회사일을 쳐내야 하는 내게 우울감 따위는 사치였다. 아이들이 같이 와서 그런 생각을 못하는 게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의 마음은 간과하고 있었나 보다. 나 때문에 아이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시리다.


융통성이 없는 둘째는 학교에 안 가고 친구들과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보다 오히려 스쿨버스 놓치는 것이 더 무섭다. 학교를 가는 것도 안 가는 것도 불안한 아이는 그래서 귀도 닫고 입도 닫았나 보다. 그래서 힘들다는 말도 가기 싫다는 말도 하지 않아 무심한 어미는 그 녀석의 힘듦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이 생활을 버티고만 있는 너.

영어를 못 하고 돌아가게 되더라도 괜찮고

친구를 사귀지 않아도 괜찮고

네가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으니

마음 아픈 일이 있으면 제발 엄마에게 얘기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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