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회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며칠간 무단결근 중이다.
모두들 나에게 와서 안부를 묻고 잘 케어해주라고 한다. 급기야 오늘은 임원실에 불려가서 아내로서 남편을 잘 위로해주라는 얘기를 듣고 말았다. 내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한 가지만 떠오른다.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는 아이들을 훈육할 때 아이들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왜 나에게 미안하냐고, 너의 잘못된 행동은 나를 못나게 만들지 않는다고, 너를 못나게 만드는 것이니 나에게 미안할 필요없다고, 너 스스로에게 미안해하라고 다그친다. 훈육의 철학이나 교육 모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나에게 깔린 내 자신의 생각이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우리 엄마다.
엄마는 본인의 직업을 즐겼다. 엄마로서 소임을 못 하는 건 아니셨지만, 직장에서 더 열심히셨다. 그런 엄마는 우리에게 단 한번도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고 하지 않으셨다. 맞다. 우리 엄마는 우리를 어떻게 키웠는지 생각조차 없으셨다. 엄마의 회식 날이면 끼니를 우리끼리 해결했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설거지 당번을 정하고 우리끼리 씻고 잠들었다. '너 땜에 못산다'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의 인생에서 우리 때문에 포기하는 건 없었다.
엄마는 내 세뱃돈도 10원 하나 빼 쓰지 않으셨다. 네돈은 네 돈. 엄마 돈은 엄마 돈. 결국 엄마와 다른 생각을 가진 아빠가 그 세뱃돈은 빌려가 놓고 돌려주시지 않았지만... 성적표를 보자고 한 적도 없었다. 엄마의 성과가 중요하지 내 성적은 내가 알아서 관리하라는 것이었다. 학원도 내가 알아보고 다녔다.
하루는 엄마가 월급 통장을 보여주었다. 직장인의 월급이라고 어련히 생각해 온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찍혀있었다. 성과급을 받으셨다했다. 엄마는 엄마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보여주시면서 나에게 믿는다라고 하셨다. 그 어떤 훈육이나 가르침보다도 그 믿음이 더 크게 다가왔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멋있었다. 비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학교 앞에 데리러 오는 엄마는 부러웠지만, 길에서 만난 다른 엄마의 지인이 장선생님이라고 엄마를 부르는 게 더 뿌듯했다. 엄마가 우리 엄마로서가 아니라 엄마 자신을 잃지 않아서 너무 좋았는데, 엄마가 된 지금 생각해보니 그랬던 엄마가 더 멋있고 더 좋다.
엄마에게 배운 나는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전한다. 공부도 네 공부, 네가 번 돈도 네 돈, 너의 잘남도 못남도 모두 너의 것이라고... 엄마의 것이 아니니 너 알아서 하라고. 네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면 언제든 뒤에 있을테니 그것만 알으라고 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자신처럼 자신보다 자식을 더 아끼고, 또는 배우자를 더 아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어머니의 자랑거리는 본인이 세 자녀의 12년간 시간표를 모두 다 외운 것. 아들이 군대 갔을 때 모든 내무반원의 간식거리를 싸며 아들이 혼자 간식을 받았을 때 난처하지 않게 만든 것. 딸이 행정처리 못 할까봐 관공서는 늘 미리 다녀준 것. 그런 것들이다. 그녀 또한 그 곳에 있는 것처럼 마음을 다해 자식을 위한 것. 그 삶 또한 경이롭지만 나는 못 하겠다. 그래서 남편의 구체적인 상태를 나에게 묻고, 그에 대한 위로를 나로 부터 요구하는 이들이 나는 매우 불편하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하는 나에게 남편의 건강상태와 심리상태까지 왜 내가 신경써야하는가
각자도생의 삶이다. 그의 삶을 그들의 삶을 내가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내 삶을 살면 된다.
묻지 마세요.
그는 그가 알아서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