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작년 12월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친할머니가 이번에 돌아가셔서 나는 짧은 미국 생활 중에 두번이나 가족의 상을 멀리서 슬퍼해야했다. 나는 상가집을 좋아하지않는다. 누가 상가집을 좋아하랴만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인사를 드리고 밥을 먹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든 행동이 소름끼치게 어색하다. 그런 나를 배려해서 할머니들은 내게 합당한 면피를 주려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장 애정하던 자식인 우리 아버지의 첫번째 아이였다. 두번째 아이인 동생은 나와 5살이 차이나니 5년 동안 경쟁자가 없고 끝이 어디인지 모를 사랑을 독차지했다. 어릴 땐 나에게 집중되던 사랑이 흩어지는 것에 대해 질투도 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랑의 힘이 지금까지 나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지탱해왔다는 것을 안다. 끝까지 나를 사랑해주시고 배려해주신 할머니라는 걸 안다.
할머니가 치매를 앓으신지 24년만에 돌아가셨다. 내가 할머니의 치매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이유는 고1 어느 겨울 우리집에 놀러오신 할머니와 마트에 장을 보러갔었다. 시간이 늦어져 푸드코트에서 끼니를 떼우려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너희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다며 과거 이야기로 눈물을 흘리셨기때문이다. 엄마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가 사기를 당해 큰 돈을 빚지게 되었는데 엄마는 도망치지않고 할머니의 빚을 갚아주었다. 엄마의 결단은 이후 할아버지 할머니께 마음의 빚이 되어있었나보다. 내가 잉태되지도 않았을 때의 이야기를 할머니는 갑자기 나에게 들려주며 사람들이 오가는 대형마트 푸드코트에서 눈물을 쏟으셨다. 할머니의 눈물을 처음보아서 기억에 진하게 남았는데 후에 짧은 과거보다 더 오래된 과거를 더 잘 기억하고,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것 자체가 치매의 초기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그 날의 일이 더 각인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치매의 시작의 냄새, 색깔, 할머니의 옷, 눈물, 손의 주름까지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다.
24년동안 진행된 할머니의 치매는 할머니의 시간을 거꾸로 만들었다. 내가 둘째를 낳고 그 아이의 첫돌쯤 할머니를 뵈었을 때는 둘이 수준이 비슷해서 같은 장난감으로 같이 놀기도 했다. 할머니를 보면서 치매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를 알게 되었다. 나조차 인식못하는 퇴화하는 나는 얼마나 괴로울까. 병으로 인한 가족의 분열과 다툼. 의도하지 않은 기억의 엇갈림. 어쩔 수 없이 겪게되는 타인의 무례함. 그리고 사라짐.
가족들은 할머니와 억지스럽게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지능이 신생아수준이 되어버린 할머니와 정서적으로 가깝게 지낼 수는 없었다. 나 또한 그렇게 할머니와 멀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고서야 겨우 이어져있는 마음이 단단하고 두껍게 끌어당겨짐을 느꼈다. 물리적인 거리가 바다건너로 멀어진 후에야. 아니다. 바다건너가 아니라 하늘을 건너 멀어진 후에야...
사돈끼리 참 친하셨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셨다. 이제 하늘에서 반갑게 재회하시어 회포푸시길. 그리고 우리 할머니 그 곳에선 모든 걸 기억하시고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