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건의 가을

슬기로운 유배생활 in Michigan

by 마이너리거

8월 중순에 접어들면서부터 미시건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좋은 여름날을 거쳐 좋은 가을날로 변해가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보통 저녁 8시쯤 잘 준비를 해서 잠자리에 각자의 책을 들고 드는데, 창문을 열어놓으면 선선한 바람이 귀뚜라미 소리를 몰고 와 가을이 곁에 있음을 실감한다. 눈썰매를 탈 수 있어서 미시건의 겨울이 제일 좋다는 둘째가 귀뚜라미 소리에 평온한 가을 저녁을 체험하고는 "엄마 나는 좋은 계절이 하나 더해졌어. 바로 가을. 지금이야." 한다.


작년 오늘 우리는 미시건에 도착했다. 반겨주는 사람들에게 반해 우리는 우울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떻게 학교를 가고, 장을 보고, 식당엘 가는지 심지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게 어떻게 인사해야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미시건 살이를 시작했다. 한두달은 울면서 지나갔고 한두달은 아프면서 지나갔다. 원래도 겨울을 싫어하는 나인데 미시건의 겨울은 더 지독했다. 해가 뜨지 않고 눈이 자주오고 눈이 오면 학교는 노스쿨 통보를 했다. 아이들이랑 집에서 싸우고, 회사 업무는 밀리고. 신랑은 지쳤고. 이 겨울이 끝이 나긴 하는 걸까. 시간은 가고 있긴 한 걸까... 그렇게 지리했던 겨울을 지나니 우리가족에게도 봄이 왔다. 갑자기 큰 아이의 말문이 트여 학교 생활이 훨 수월해졌고, 캠프라는 좋은 제도를 알게 되어 돈을 지불하면 회사에 나갈 수 있었다. 뭐 지출과 수입이 상쇄되긴 하지만 아이들과 덜 부딫히고 회사일도 밀리지 않았다. 날씨가 좋아지니 미시간 사람들은 밖으로 나왔다. 우리도 공원으로 야외로 나갔더랬다.


대구에서 온 우리가 미시건에서 덥지 않은 여름을 겪고나니 미시건이 좀 좋아졌다. 이제는 한번 겪어봤다고 겨울이 조금 덜 두렵다.


일요일에 늘 하듯이 도서관을 가는 길에 늘 하듯이 잔디를 깎고 낙엽을 청소하는 동네 사람들을 보았다. 늘 거기있듯이 펼쳐진 파란 하늘과. 일상이구나. 이것이 내가 가진 일상이구나. 1년을 체득한 덕에 감사한 일상을 얻었음이 느껴졌다.


우리는 여기에 얼마나 더 머무를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같은 말로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지금 또 다른 일상을 감사하며 누리며 살아야지. 좋은 미시건의 가을 날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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