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유배생활 in Michigan
3개월 쯤 전에 요가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 춤도 추고 수영도 찔끔 헬스장도 찔끔 다녀본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운동이 요가였다. 어지러울 정도로 힘은 드는데 도통 운동같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서 헉헉대야만 운동같고 그랬었나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아, 이건 운동이 아니라 수련이구나.!'
운동신경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유연하지도 않고 딱히 운동을 꾸준히 하지도 않았다. 미국에 있다보니 내 몸을 위해 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뭘 대단한 걸 한 건 아니었는데... 아 내 몸에게 나쁜 짓은 많이했다. 만취할 때까지 술마시기, 숙취해소 안 하고 애들이랑 또 어디 체험을 가서 몸을 혹사 시키고, 밤되서 술 깨면 또 밤새 TV보고, 그 다음 날 또 애들이랑 혹사... 뭐 그것마저 할 수가 없으니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나보다.
여기서 테니스, 골프 등 한국보다 저렴하게 한국에서 유행하는 고오급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나 또한 그런 것들 위주로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다 보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 정보방에 올려놓은 한국인 선생님이 하시는 요가 클래스 광고를 보게 되었다. 가능한 건 요가 밖에 없었다. '그래 뭐 이거라도 해보자 안되면 그만두지 뭐.' Like a monkey's paw. 이것이 운명.
나보다 젊은 한국 선생님과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우들과 처음 시작한 요가 클래스는 죽음이었다. 나의 몸 구석구석 몇년동안 방치된 근육들이 왜 깨우냐고 난리였다. 겨우 몇 동작 했을 뿐, 그것도 남들하는 걸 힐긋보면서 흉내만 냈을 뿐인데 안 아픈데가 없었다. 그 다음 날은 더 아팠고, 그 다음 날은 더더 아팠다. 온몸을 감싼 근육통이 나을 때쯤 다음 클래스가 시작되었다. 정신이 혼미해서 선생님이 뭐라 하시는지 들리지 않았다. 몸이 뭐 이렇게 생겨먹었나. 나이드신 분들도 다 되는 이딴 동작도 나는 왜 되지 않나.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면 내 몸뚱아리만 이상한 동작을 하고 있었다.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내 몸이. '그만둘까? 돈 냈으니 4번만 해보자.' 하고 4번을 하고나니 변했다. 요가를 안 가면 몸이 찌뿌둥했다. 웃기는데, 할 때는 죽을 것같고 뼈가 부서지는 건 아닐까 이러다 허리가 나가는 건 아닐까 하는데 마치고 나면 오히려 자극된 허리가 시원했고 뼈마디가 펴지는 것 같았다. 7번을 수업을 거치자 할라아사나가 가능해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8번 수업을 들으니 머리서기를 하며 발을 땅에서 뗄 수 있었다. 요가가 재미있어졌다.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지고 있다.
마흔을 2년째 살고 있다.
미국 오기 전에 단테의 신곡 첫 구절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더랬다.
'우리네 인생 여정의 중반에 나는 어두운 숲에서 갈 길을 잃고 말았다'
몸이 늙어감을 인지하게 되자
더이상 성장하지 않고 노쇠해가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이대로 늙어감에 안주하면 되는건지. 안주는 도태를 말하는 것인지.
도태되지 않으려면 성장해야하는데, 성장을 위해 변화를 선택해야하는지.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
요가를 시작하면서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행동하냐에 따라 몸이 아직도 성장하고 나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안되던 동작들이 되고,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몸이 내 마음이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 몸은 정직하다고 하던데 정말 정직하게 그간의 노력들을 알아주었다. 선생님은 항상 할라아사나나 머리서기는 마지막 수련과정으로 두는데, 앞선 90분동안 그것을 만들어내기위해 호흡을 안정시키고 온몸의 근육들을 깨우는 작업을 한다. 내 몸의 변화는 그저 머리서기를 성공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앞선 여덟번의 90분에서 오는 것임을 내 몸이 먼저 안다. 주중에 혼자서 수련을 안 했다면 몸이 기똥차게 알고 되던 동작들이 안된다. 그래서 오늘도 내 스스로에게 채찍을 든다.
얼마 전 이효리가 보컬수업을 받는다고 해 화제가 되었다. 지금쯤 노력해서 10살차이 나는 언니들 나이가 되면 얼마나 더 성장해있을까 기대된다고 했다. 요가를 수련한 사람다운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지웅이 아프고 나서 요가를 하는 이유를 적어놓은 글을 보고 굉장히 감명을 받았는데 감명을 받아도 내가 요가를 입문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보니 그 꼭지의 모든 단어가 내 경험처럼 뼈에 꽂힌다. 모든 구절이 와닿지만 그 중 마지막 부분을 인용해 글을 마친다.
서른 살 이후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걸 시도해 본 기억이 없다면
대개 그렇다.
음악도 들었던 것만 듣고 운동도 했던 것만 하며 사람도 만나던 사람만 만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열심히 했다. 요가는 해보지 않았던 것이고 잘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내게 요가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만둘 수 없었고, 그래서 열심히 한다. 이길 때의 기분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다시 시작할 때다.
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