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싸늘해지면 내 감정의 습기도 메말라져서인지 괜한 핑계로 우울해지곤 한다.
근래의 하루는 요가클래스에 갔는데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들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에 참여하는데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늦은 출근을 할 수 없으므로 한 번만 참여하니 뒤쳐지는 건 당연했다. 왜 나는 일을 해야 하며 왜 나만 가난한가. 골프를 치고 쇼핑을 하고 베이킹을 하고 여행을 하고 남는 시간에 요가를 하는 이들에게 집안일과 회사일 사이에 억지로 짜낸 시간에 요가를 하는 나는 작아짐을 느꼈다.
마음을 비우려고 생각한 요가클래스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타인을 쫓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다소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느끼지 않았던 해로운 마음이 소급적용을 하듯 한꺼번에 밀려와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그들과의 실력차이를 극복해 보려 더 열심히 했다. 마음에 큰 돌이 올려져서 경쟁심에 몸을 비트는데 그것이 좋은 동작이 될 리가 없었다. 허리를 더 꺾고 몸을 더 비틀고 고통을 참았다. 그러니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억지로 한 거다. 감정 기복이 과하지 않고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평점심을 유지해야 하는 요가에 있어서는 유난히 감정이 세차게 움직인다. 세찬 마음이 얼굴에도 드러났던지 수업을 마친 후에 선생님이 부드럽게 조언하셨다. 하긴 요가에 내 몸을 욱여넣고 있는데 선생님 눈에 안 걸릴 리가 없었다. 선생님께서 너무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생님의 스승님이 하루에 1원을 모아 1억을 만드는 것이 요가라고 했다고, 10원을 모았다고 적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1원을 모았던 스승님의 10배를 모았다고. 힘을 주셨다.
해답을 주듯 르누아르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르누아르의 그림에는 슬픔이 없다. 화사한 색감과 부드러운 표현 행복한 분위기.
그러나 그 그림을 그린 르누아르의 삶은 그림과는 상반되게 가난하고 불행했다고 한다.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다가 자신이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가게 된다. 명문 학교와 좋은 스승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나 정작 아틀리에를 마련할 돈이 없어 바지유의 아틀리에에서 얹혀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19세기에 등단한 유명 화가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빈민 출신이라고 한다. 그의 그림에는 그 간극이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부유하고 착한 친구 바지유덕에 아틀리에와 물감을 지원받아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소중한 친구 바지유를 전쟁에서 잃고 만다. 이후 모네 시슬리 등과 함께 연 첫 인상파 전시회에서 마찬가지로 비판을 받았다. 그때에도 그의 그림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자신이 처한 불행에 별 관심이 없었던 르누아르는 삶의 대한 태도가 매우 긍정적이었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타인에 대해 포용적이다. 내가 잘 나서 단단한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린아이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는다.
르누아르도 그랬다.
대중이 인상파의 손을 들어주고 르누아르도 인정을 받게 되었을 50대 즈음에는 그에게 또 다른 불행이 찾아왔다. 류머티즘 관절염. 지금처럼 약도 치료도 할 수 없는 그 시절, 르누아르는 손의 고통을 참고 붓을 손에 붕대로 묶어 그림을 계속 그렸다고 한다.
말년에서는 손가락의 관절이 이미 다 틀어지고 어깨에 유착이 와서 그림을 그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그의 그림에는 전혀 그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모델로 자주 볼 수 있는 아내 알린만을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아내와 이룬 가정에도 매우 충실한 것으로 알려진 르누아르인데, 두 아들이 전쟁에서 큰 부상을 당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고도 그 자신은 큰 슬픔에 빠졌을지언정 그의 그림은 우울해지지 않았다.
르누아르의 그림에는 화가와 모델 간의 행복과 불운의 간극이나 화가가 그들을 볼 때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은 없다. 르누아르는 '그림이란 즐겁고 행복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은데 우울감에 빠져 허덕이길래 르누아르의 긍정을 떠올려보았다.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행복대로 관망하면 되고 나는 나의 것에 집중하면 된다.
그렇게 고통스러운데도 왜 그림을 그리냐는 물음에 르누아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고통은 지나간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