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유배생활 in Michigan
보스와 일 얘기를 하다가 reconcile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보스는 내가 영어를 못 하는 것을 알고 될 수 있으면 쉬운 말로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영어를 해주시는데
업무 이야기다 보니 미국 할아버지인 그는 자연스럽게 그 단어가 나왔다. 스펠링이 뭐냐 묻고 사전을 찾아 아 make harmony with each other?하고 되물으니 yes하고는 추가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영어를 한국 중학교 교과서처럼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단 의사소통이 되니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최근엔 덜 했다. 영어는 기백이니, 발음과 단어는 중요하지 않다니 뭐 그런 이야기들이 위안은 되었지만 성장엔 장애물이 되긴 한 것 같다.
보스의 한 단어를 듣고나서야 정신이 차려졌다. 나도 유려한 단어를 쓰고 싶다.
한국어 스피커로서의 나는 말을 못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의 단어와 문장들은 나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적확한 것들로 이루어져있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책을 많이 읽었나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사실은 아니지만 책이나 명사들의 언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해놓고 써먹긴 했다. 그런데 영어로는 불가능하다.
최근에 요정식탁을 즐겨본다. 정재형이 말하는 방식이 매우 좋다. 사람 이름은 기억 못하는데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을 높이면서 얘기하는데 그 와중에 쓰는 단어들도 저렴하지 않아서 더 좋다.
특히, 피식대학 나온 편에서 그저 웃기는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던, 그래서 그들이 쓰는 언어 또한 내 혼자만의 생각으로 알게 모르게 폄하했었던, 그들이 정재형과 만났을 때, 그 공간의 언어로 자신들의 진심과 경험과 가치관에 대해 적확한 단어들과 비유들로 잘 얘기해서 사실 별 관심없던 친구들이었는데 나는 너무 좋았다.
세월이 켜켜이 묻어서 그 사람의 얼굴이 되고 옷발이 되고 향기가 되고 언어가 된다.
여기 온지 2년차니까 나는 이제 겨우 두살의 언어를 하고 있나 보다.
발전하고 싶다.
책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