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진짜 뭘까?
마음의 소란스러움이 가라앉지 않는 듯하여 쓰기로 한다.
5월 17일의 기록.
꽤 키가 큰 아보카도 화분을 들고 평소보다 이르게 움직인다. 여러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해서 좀 더 서두른다.
오랜 지인 감님과 만나 점심을 먹고 감님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오늘 일정.
이른 점심은 맛이 좋다는 짬뽕집을 이야기하기에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짬뽕집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이 더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담백한 짬뽕과 어향가지 손으로 빚은 투박한 찐만두를 먹고 나왔다.
어제 폭우덕에 하늘은 청명하고 구름은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그야말로 좋은 날씨. 점심을 먹고 나오니 조금 더 더워지고 약간의 습기가 느껴지는 그래도 기분 좋은 날씨였다.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서 돌아가기 위해 마트로 가는 길. 골목길 담장으로 피어오르는 장미덩굴과 화려한 꽃집 앞의 작은 꽃들을 구경하며 느리게 느리게 걸음을 옮긴다. 마트에 가서 아이스크림대신 수박을 들고 나왔다.
감님은 마당이 나의 아보카도를 내려놓는다. 키가 꽤 자라고 집안에서 더 이상은 안될 듯해서 가져왔으나 감님 말로는 그저 다하기 전에 하늘이라도 맘껏 보라고 가져오라고 했단다. ㅎㅎ
마트에서 수박을 들고 왔더니 살짝 덥다.
우리는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감님은 커피를 내린다.
나는 커피는 뜨겁게 마시는 쪽이지만 이쯤에선 얼음 적은 아이스로 우선 목을 축인다.
코코아향이 나는 커피는 산미가 살짝 도는 것이 계절감이 꽤 좋았다. 산미가 있어 아이스인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조금 더위가 식고 두 번째 커피를 내린다.
두 번째 커피는 뜨겁게 산미 없는 것으로..
수박을 꺼내 자르고 참외도 함께 내주신다. 옆집에 사는 지인도 수박 먹자고 불러 4명이 작은 수다를 나누기 시작했다.
천장에서는 작은 실링팬이 돌아가고 창으로는 바람이 살짝씩 들락날락거리고 수박과 참외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폼이 딱 여름 한낮의 풍경이었다. 그렇게 한참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눈다. 실없는 이야기에 놀라고 웃고 그렇게 쉬익 시간이 간다. 마치 오늘의 목적의 전부가 그저 수다인 것처럼 말이다.
오전 11시 30분에 만나 점심을 먹고 수다를 정리하려는 시간이 한 3시 50분쯤.
"벌써 3시 50분 곧 집에 가려했던 시간이 오는데요? "
"무슨 소리야. 저녁도 먹고 가야지."
"ㅎㅎ 그런 거였어요? 암튼 우선 뭐가 문제인가요?"
오늘의 본 목적에 드디어 접근. 두 시간 정도 이리저리 문제를 해결한다.
"저녁은 뭐 먹을까? 그전에 옆집 작업 보고 가자"
"좋아요."
집을 나서는데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온다더니 오긴 오는구나.
옆집작가님 작업도 보고 저녁도 정해지고 그렇게 웃고 떠들며 하루의 일정이 마무리되려는 찰나.
문자 알림음. 최근 작업에 들어가는 작품의 PD다. 미팅일정에 변경이라도 있는 것인가 싶어 확인을 하는데 부고 알림이다.
작가의 부고소식. 급작스럽다.
쓰면서도 황망하기 그지없다. 작품에 합류했을 때 몸이 아프다 전해 들어서 나는 직접 작가를 만난 적은 없지만 20대 친구로 이 작품이 첫 작품이었기에 그저 안타깝고 안타깝다. ㅠㅠ
어찌해야 싶었다. 옷차림이 장례식장에 갈만한 차림과 거리가 있기에 살짝 망설였으나 서둘러 다녀오기로 한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어간다. 화장실에 가서 모자에 하루 종일 눌러진 머리를 대충 정리해서 깔끔하게 묶는다.
흰 국화를 올리고 인사를 한다. 참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이 애닳프다. 부디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죽음은 언제나 슬프지만 20대의 친구, 동료를 잃은 이들이 가득한 장례식장은 또 다른 느낌이다. 아... ㅠㅠ
장례식장을 나와 화장실에 들러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낌새가 이상하여 보니 부정출혈이 시작되었다.
이런 -__-;;;;;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하루다.
집까지 타이밍만 좋다면 1시간 40분 내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복잡 복잡하다.
어서 집으로 가서 쉬자.
그리고 지하철이 세정거장쯤 지났을 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이번에는 옆집작가님 아버님의 부고소식.
"오늘이 그런 날인가 봐."라는 감 님의 말.
저녁식사가 끝나는 시간에 연락이 온 모양이었다.
오늘 함께 저녁도 먹고 그래서 알려준다고 감님은 말했다.
하루에 두 번의 부고소식을 접하다니....
처음 겪어보는 이상함.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이 쏟아진다.
날씨도 그렇고 하루의 일상성도 그렇고 너무너무 이상한 하루. 그렇게 조금 지친 채 돌아오니 11시 10분.
테이블옆 스탠드를 켜자 '퍽!' 쇼트다.
얼른 콘센트를 뽑았다.
스위치를 보니 그을림이 보이는 것이 쇼트가 확실하다.
거참. 헛웃음이.
마치 이상한 하루라는 것을 각인이라도 시키듯 제대로 찍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