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수용
겨울이 되면 숲은 본모습을 아주 잘 내보인다.
겨울 숲이 황량하다고는 하지만 그 덕에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존재들이 있는지 완연히 드러난다. 큰 나무에 가려 보지 못했던 키 작은 친구들도 보이고 그 여백을 누리는 새들도 더 돋보이는 시기. 어떻게 그들이 살아왔는지, 봄여름가을 생긋한 꽃들과 무성한 잎과 탐스런 열매에 가려 보지 못했던 가지, 그들의 민낯을 보게 되는 시기다.
사람도 추워지면서 본인이 살아온 환경에 물든 습성들이 명백히 드러나는듯하다. 날이 춥든 마음이 춥든. 그들을 감싸던 여유나 장식거리들이 잠깐은 흩어지고 본모습이 고이고이. 혹은 나의 여유가 줄어들면서 그들의 모습이 더 적나라하게 보이는 걸 수도 있겠지. 각자의 특징이 참 잘 보이는 요즘이다.
태움을 일삼던 문화가 배인 팀장은 늘 본인의 생각과 어긋나는 사소한 일이 생기면 색출하는 것에 혈안이 된다. 중요치 않은, 굳이 누구인지 알지 않아도 되는 일에도 팀원들을 긴장시키고 심지어는 모멸감을 주는 말과 태도로 압도한다. 팀의 분위기를 암담하게 혹은 평온하게 좌지우지하는 그녀를 보며 문득 안쓰럽다. 수십 년 전의 기억이 그녀의 말과 행동을 지배할 정도라는 걸 테니.
앞서 말한 대로 추위는 민낯을 보게 한다. 그리고 그 추위를 같이 지켜보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 또한 그 추위에 잠식되는 것, 또는 서로의 본모습을 그저 받아들이고 공감해 주는 것이다. 후자가 조금 더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날이 추우니 수용이라는 따뜻함으로 다가가보자. 그들도 나도 녹다 꽃피는 날이 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