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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Jan 15. 2020

입사 3개월, 얻은 병 3가지

취업 일기1

 입사한 지 3개월. 작년 10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글을 올리며 나와 나의 일을 소개하고 싶었으나 바쁜 환경 탓을 하며 병가를 얻은 지금에야 두 번째 글을 쓴다.

원하던 기업에 입사하였지만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최근이었다. 신규직원임을 어필하게 만드는 업무과중, 한 시간 간격으로 실적을 묻는 부지런한 상사 그리고 구시대적인 발언과 시스템을 구축한 회사 체계 등. 마냥 즐거운 환경은 아니지만 이 회사를 애증의 관계로 오래오래 만나보려 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가 ‘얻은 병’이라니. 


12월 중순, 많은 부서가 업적 보고서를 이미 다 쓰고(혹은 미루며) 쉬고 있을 그 시기, 우리 팀은 이제 막 시동을 켠 자동차처럼 부릉부릉 대야 했다. 업무시간에는, 주어진 업무를 하면서도 신규직원 업무능력 강화를 위한 자체 교육을 받고 저녁에는 수당 없이 선임의 일을 도왔다. 평소와 다르지 않던 그날도 지열난방을 하는 사무실에서 꽁꽁 언 손으로 업무를 본 후,  자체 교육을 위해 영하 10도의 추위에서 해발 850m 산속을 90분간 헤맸다. 발이 잘려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수차례 들고 ‘더 이상을 밖에 못 있겠다, 죽을 것 같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즈음 교육이 끝났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직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10시가 넘도록 수당 없고 난방도 없는 야근을 하였다. 그때도 ‘발이 시리다 못해 아프다’며 호소했지만 누구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그날 밤, 거칠고 시커멓게 변한 발가락을 보았다. 미지근한 물이 닿기만 해도 간지러운 발을 보고도 특별히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조차도 관심 갖지 않던 나의 발가락에 시선을 둔 사람은 아빠였다. 거무튀튀 퉁퉁한 발가락을 아빠가 보더니 간지럽지 않냐고 물으신다.

그렇게 발견된 나의 병 1, 동상. 추위에 노출되면 더 악화된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병가를 1.5일 사용하였다.


병가를 마치고 돌아온 횡성은 폭설이었다. 직원들은 지급받은 고가의 장갑을 끼고는 제설하려 나간다. 조심조심 신발이 젖지 않도록 조심하며, 발바닥에 핫팩을 넣은 채 치워도, 치워도 쌓이는 눈을 산속으로 옮긴다. 겨울왕국과 군대가 아이러니하게 오버랩되는 이곳. 눈삽을 바짝 잡고 무거운 눈덩이를 수레에 퍼 담는다. 가득 찬 수레는 산속으로 간다. 수십 차례의 반복,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모르겠어’다. 알 수 없는 예쁘고 포근한 쓰레기를 치우다 보니 허리에 통증이 온다. 산재가 가까이 오는 것만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병 2, 몇 달 전 다른 근무지에서 발생한 요방형근 파열이 다시 움찔거린다.


다양한 생활과 연령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흥미를 사로잡는 언변을 구사하며 지식(그 이상의 가치)을 전하는 직업. 교사도 아니고 레크 강사나 청소년지도사도 아니지만 그들의 능력을 탑재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접촉은 불가피하다. 어디서 옮았을까, 독감. 나의 병 3, 요즘 유행하는 a형 독감에 걸렸다. 결벽처럼 손을 씻는 내가 독감에 걸렸다. 심한 인후통과 두통, 다리 저림이 있었지만 열은 나지 않았기에 단순 인후염이나 후비루일 것으로 생각했다. 반면 밥 먹는데도 땀범벅이 되는 몸살 난 동료를 독감이라 확신했다. 같이 병원을 방문해 콧속을 후비는 검사를 마치고 나니 믿기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내 이름이 적힌 키트에 선명하게 나온 두 줄, 단순 감기는 내가 아닌 모두가 독감이라 확신한 동료였다. 항체가 있어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며 더 이상 이견이 없으시다는 의사 선생님은 5일 격리조치를 내리셨다.



'승부욕', '의지', '정신력', '깡'이란 단어를 빼면 시체인 내가 약 3개월간 7일의 병가를 쓰게 되었다. 어쩌면 이 단어들로 인해 병을 얻을 거일 수도 있겠다. 발이 얼어 괴로울 때 더 이상 힘들다고, 못하겠다고 했다면, 제설 시에 몸을 사려 적당히 했다면, 괜한 친근감과 도움 주는 것 없이 접촉을 피했더라면, 진작에 병원에 갔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을 거고 높이 평가받을 만한 병도 아니지만 바보 같았던 나를 쓰담이며 이 글을 마친다. 5일의 병가 후엔 어떤 업무가 기다리고 있을까?

P.S. 손 비누로 깨끗이! 10초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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